문화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영화 ‘검은 사제들’

김경희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입력일 2015-11-10 수정일 2015-11-10 발행일 2015-11-15 제 2969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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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감 보다는 듬직한 희망
영화 ‘검은 사제들’ 포스터.
영화 ‘검은 사제들’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엑소시즘을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공포영화 팬이라면 익숙한 장르 오컬트 무비(Occult movies)는 흔히 살인마나 귀신, 괴물이 등장하는 공포영화들과는 달리 종교적인 요소를 통해 인간 내면의 어둠과 두려움을 표출하고 구원에 대한 본능을 자극하는 영화들이다. 인간에게 잠입한 악령을 쫓아내는 퇴마사인 엑소시스트의 활약은 오컬트영화의 대표 선수라고 할 수 있겠다.

최초의 엑소시즘 영화로 악령 들린 소녀를 통해 온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엑소시스트’(1974)는 끔찍하고 무서운 장면을 쏟아내며 이 분야의 걸작으로 꼽힌다. 악마의 저주가 세상을 지배하는 ‘오멘’ 시리즈 또한 악명이 높다. 악마가 등장하는 영화는 여러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대표작으로는 파우스트적인 욕망으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인간의 파멸을 그린 ‘엔젤하트’(1987), 인간의 허영과 탐욕 속에 깃들인 악마의 본성을 섬뜩하게 다룬 ‘데블스 에드버킷’(1997),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악마들로부터 인간을 지키는 평신도 퇴마사 이야기 ‘콘스탄틴’(2005), 사람들로 하여금 악마의 존재를 깨닫게 하기 위해 악령을 품고 살았던 여성의 실화인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2005), 신과 악마의 존재를 의심하던 한 사제가 구마의식을 통해 악마의 실체를 확인하고 엑소시스트가 되었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더 라이트: 악마는 있다’(2010) 등이 있다.

‘검은 사제들’은 이러한 계보를 이으면서도 한국 가톨릭교회 분위기와 유쾌한 국산영화의 매력을 잘 살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작년에 가톨릭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던 장재현 감독의 단편영화 ‘열두 번째 보조사제’를 장편화한 것으로, 원작은 엑소시즘을 통해 악령이 드러낸 어둠의 세계를 직면한 주인공이 자신의 영혼을 사로잡은 어두운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빛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줄거리다. ‘검은 사제들’은 한 발 더 들어가서 한 소녀를 구하려는 사제들의 열의와 더불어 세상을 위해 그들 각자가 치르는 희생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래서인지 꽤 긴 시간 무서운 구마의식을 지켜보았는데도 극장을 나올 때의 느낌은 공포감보다 듬직한 희망 같은 것이었다.

검은 수단을 입은 두 성직자가 “가장 위험한 곳으로 갈 준비가 되었습니다”라는 다짐으로 서 있는 이 영화의 포스터는 세상이 우리 교회에 전하는 하나의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오로지 ‘돈’만을 섬기는 우상과 죄악이 판을 치는 세상 한복판에서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몫을 맡은 이들이 누구인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회는 야전병원 같은 곳이 되어야 한다”고 하신 말씀처럼 말이다.

이 영화를 통해 천주교와 성직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 비록 한 번 보고 잊혀질 영화일지라도 ‘검은 사제들’을 통해 본 멋진 성직자들의 모습을 실제로도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김경희 수녀는 철학과 미디어교육을 전공, 인천가톨릭대와 수원가톨릭대 등에서 매스컴을 강의했고, 대중매체의 사목적 활용방안을 연구 기획한다.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이며 현재 광주 바오로딸미디어 책임을 맡고 있다.

김경희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