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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성월 특집] 기고 / 죽음보다 더 강한 희망

김정우 신부(대구가톨릭대 윤리신학교수)
입력일 2015-10-27 수정일 2015-10-27 발행일 2015-11-01 제 2967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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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죽음, 영원한 삶으로 나아가는 관문
희망의 종결 아닌 ‘과정’
삶에 ‘이미 벌써’ 내재해 있어
올바른 ‘죽음’ 인식할 때
일상이 선물임을 깨닫고
영원한 생명 참여할 수 있어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희망의 종결이 아닌 희망의 계속적 과정 중의 한 사건이며, 영원한 삶 자체이신 하느님과의 일치와 만남을 위한 것이다. 사진은 경북 칠곡군 석적읍 천주교 창마묘지의 한 비석.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삶이 영원히 주어져 있는 시간인 듯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 발길 아래로 뒹구는 낙엽은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추사이망(追思已亡)의 때를 알리며, 고달픈 삶의 일손을 잠시 멈추고 사색의 시간 안에 머물게 한다.

정신분석가 미트쉐어리히(A. Mit scherlich)는 “인간의 출생과 죽음은 세상 모든 이에게 주어진 불가항력적인 현존의 두 기둥”이라 했다. 태어나고 싶을 때, 태어나고 싶은 곳에서, 원하는 부모에 의해 삶이 시작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살고 싶을 만큼 장수하고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없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출생과 죽음이라는 두 한계 앞에서 자신의 무능함을 분명하게 체험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죽음은 자기의 현실 생명의 끝이기에 누구에게든 출생보다는 죽음에 대한 인식이 더 뚜렷하고, 더 강한 영향력을 가진다. 더욱이 죽음은 단순히 생리적 현상으로서의 죽음만이 아니라 실존적 체험으로 극복해야 될 지금의 삶과 미지의 삶의 분계점이므로 죽음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삶의 과제이며,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동시에 마지막 부분이다. 또한 사람은 자기의 죽음을 직감할 때, 자신이 누구이며 어떠한 사람인지를 거짓 없이 깨닫게 되고, 자기 실존의 깊이를 깨닫게 되므로, 이런 의미에서 죽음은 실존의 거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문명의 발달과 사회구조의 변화는 이와 같은 죽음의 인식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과학문명은 생명의 무한한 연장을 통해 죽음이란 단어를 삶에서 지우려하고 있고, 사회구조는 맹목적인 삶에서 죽음의 영역을 제거해버리려 한다. 마치 죽음이 죄인이 된 채 삶의 거처에서 내어 몰리는 세상이다. 예전에는 객사(客死)가 허락되지 않았다. 임종의 시간이 가까워지면 집안에서 죽음을 맞이했지만 이제는 그 반대가 되었다. 편리성과 유효성의 이유로 삶의 거처였던 집 밖으로, 가족의 품 밖으로 죽음이 내어 쫓기다시피 하고 있다. 그러니 죽음의 흔적이나마 찾을 수 있는 곳은 삶의 그늘진 자락이나 장례식장 정도가 되어버렸다. 죽음에 대한 무조건적인 혐오와 기피, 죽음은 나와 상관없다는 “아직 아니”라는 착시현상만이 만연해 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진정 사랑한다면 한 번 되돌아보자. 철학자 하이데거(M. Heidegger)는 실존의 삶 안에 죽음은 “아직 아니”가 아닌 “이미 벌써”로 내재해 있다고 했다. 삶에 분주한 오늘의 인간이 죽음의 문제를 아무리 외면하고 거부한다 할지라도, 죽음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문제를 던져오는 이유는 바로 “아직 아니”가 아닌 “이미 벌써” 내 안에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살아가고 있는 것은 이미 죽어가고 있는 것이며, 이미 죽어가고 있는 것이 살아가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가 삶으로서의 죽음, 그 삶의 문제인 죽음이란 화두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삶의 중심에 “이미 벌써” 버티고 있는 죽음의 문제는 우리 삶의 시간이 하느님의 선물이며 매일의 삶, 그 충실함 속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희망과 사랑과 믿음으로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있을 때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죽음은 유한한 인간 생명이 영원한 삶을 향한 하느님 생명에로의 참여이며, 이 영원성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 인간이 하느님에 의해 현양됨이라는 것을. 이를 통해 죽음은 희망과 구원, 곧 영원한 삶으로 나아가는 관문임을 고백할 수 있고, 이 고백으로 죽음보다 더 강한 희망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제 삶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희망의 종결이 아닌 희망의 계속적 과정 중의 한 사건이며, 영원한 삶 자체이신 하느님과의 일치와 만남을 위한 것임을 고백하고, 죽음이 참 삶을 발견하고 자기를 완성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가자.

김정우 신부는 1983년 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제로 서품됐으며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에서 윤리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2대, 5대 대구관구 대신학원장을 역임했다.

김정우 신부(대구가톨릭대 윤리신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