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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토론] ‘이혼 후 재혼자 영성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입력일 2015-10-20 수정일 2015-10-20 발행일 2015-10-25 제 2966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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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이슈토론 주제는 ‘이혼 후 재혼자 영성체’ 입니다. 사별이 아닌 이혼한 이가 재혼했다면 교회법에 따라 ‘혼인 장애’로 영성체를 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독자들의 의견은 어떤지 들어봤습니다.
■ 찬성합니다

진심으로 속죄한다면 허용해줘야

이혼 후 재혼한 신자에게 성사를 허락하지 않는 것은 가혹하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혼 후 재혼한 신자들을 모두 중죄인으로 간주해서 기본적인 성사생활을 박탈하고, 그럼으로써 오히려 교회의 울타리 밖으로 쫓아내다시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혼과 이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풍조가 현대 사회에는 있다. 하지만 이런 세태의 변화가 단지 성사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는 징벌적 성격의 접근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오히려 혼인과 가정생활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일깨워주고, 실제로 부부가 원만하고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각종 상담과 지원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사실 가톨릭 신자로서 신앙생활의 가장 핵심인 영성체를 하지 못한다면 자연스럽게 미사에 참례하는 기쁨을 느끼지 못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스스로 자괴감과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급기야는 교회를 떠나게 될 것이다.

또한, 이혼이 자기 자신의 도덕적 해이함 때문인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사실상 많은 경우에 이혼은 어느 부부도 바라지 않을 것이고 나름대로 현실적으로 겪는 어려움과 고통 끝에 내리게 되는 비극적이고 불행한 결단인 경우이기도 하다. 때로는 자기 자신의 탓이라기보다는, 교회법적으로는 받아들여지지는 않지만 스스로에게는 더 이상 결혼 생활을 견딜 수 없는, 환경과 배우자의 탓일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그런 경우에는 본인에게 벌을 가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감싸 안아주고, 교회의 품에서 위로와 위안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이혼은 부부들에게는 깊은 상처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자비의 희년을 기념하고 있다. 참회와 속죄의 과정을 거쳐서, 고해성사를 보듯이 다시는 실수와 실패를 하지 않도록 충실한 노력을 하겠다는 다짐과 원의가 있다면, 이혼 후 재혼 신자들에게도 예수님의 몸인 성체를 받아모실 수 있도록 허용을 해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김미정(세실리아)

■ 반대합니다

필요한 경우 혼인무효소송 제기해야

혼인의 불가해소성은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 낙태는 살인인 것과 마찬가지로, 하느님 앞에서 서약을 하고 부부로 평생을 살아가겠다고 하는 약속은 결코 인간이 해소할 수 없는 신성한 계약이다.

물론 살아가다보면, 도저히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상대방을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그런 피치 못할 상황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느님 앞에서 해로하기로 한 거룩한 약속을 쉽게 팽개쳐서는 안될 일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서구 사회의 바람직하지 못한 풍조를 따라가고 있다. 아니 오히려 서구 사회들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고, 자녀 출산에 있어서도 더 심각한 지경으로 2세를 기피하는 추세이다.

때로는 헤어질 수 밖에 없는 딱한 사정의 부부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처럼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있기 때문에 교회는 첫번째의 혼인이 결함을 가진 것에 대해서 무효 판결을 내려주는 혼인무효소송 제도가 있다. 꼭 필요한 경우에는 이 제도를 이용하면 억울하거나 부당하게 영성체를 못하는 경우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 교황님께서는 자비의 희년을 앞두고 혼인무효소송 절차를 간소하게 하고 비용도 줄여주는 특별한 조치를 하신 것으로 안다. 교황님의 이러한 배려를 통해서 기존에 어렵고 오래 걸리던 혼인무효소송 절차를 좀 더 쉽게 이용할 수 있다면 굳이 윤리적으로 죄악에 해당하고, 신자들에게 이혼을 쉽게 여길 수 있는 빌미가 될 일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느님 앞에서 한 혼인의 맹세를 깨는 일은 중대한 죄악이다. 이는 성경에서도 교회의 전통 안에서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교회의 가르침이다. 자비의 해를 맞아 하느님의 자비를 더 깊이 성찰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자비는 반드시 정의와 진리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큰 죄에 대해서 교회법에 분명하게 규정되고 지켜져 온 교회의 규율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박창재(강원도 강릉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