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봉헌생활의 해 르포 ‘봉헌된 삶’ - 한국외방선교회

이지연 기자
입력일 2015-10-20 수정일 2015-10-20 발행일 2015-10-25 제 2966호 20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밀림 정글 헤쳐가며 복음 선포… 오지 곳곳 가난한 이들의 벗이 되다
멕시코 지부장을 맡고 있는 양금주 신부가 과달루페성모상 앞에서 현지 신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2014년 현재 전 세계 76개국에 900여 명의 해외선교사들을 파견, 온 세상에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해외선교를 시작한 지 40년 만에 이룬 성과다. 그 중심에는 한국외방선교회(총장 김용재 신부, 이하 선교회)가 있다.

선교회는 1975년 주교회의의 인준을 받아 설립된 한국교회 최초의 자국 선교회다. 한국교회 해외선교 역사와 맥을 같이 하는 선교회는 세계교회가 우리에게 보여준 형제적 도움과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와 보은의 정신으로 파푸아뉴기니, 캄보디아, 멕시코 등 8개국에 말씀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모든 것을 내어놓고 선교지에서 평생 현지인들과 함께 그들의 가족으로서 살아가는 선교회 선교사들의 삶 안으로 들어가 본다.

선교사들이 사는 세상

박영주 신부는 13년째 파푸아뉴기니 마당대교구에서 선교사로 살고 있다. 파푸아뉴기니는 한국교회 첫 해외선교사 4명이 파견된 곳이다. 이곳에서 구삽(Gusap)본당과 본당 소속 두 개의 학교를 관할하는 박 신부는 한국의 본당 사제와 마찬가지로 아침미사를 봉헌하고 단체 모임 참석, 봉성체, 공소방문 등의 소임을 수행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도움을 주는 직원이 없어 본당 사제가 사무 업무와 성당 관리, 식사 준비 등을 직접 하고 있다.

그래도 지금의 생활은 정글에 위치한 전임 본당보다는 나은 편이다. 정글 본당에서의 가장 큰 소임은 정글에서 생활하는 신자들을 방문하는 일이었다. 박 신부는 항상 배낭에 미사도구와 성사 집행에 필요한 물건들, 여벌의 옷과 비상시 약품, 간단한 먹을거리를 넣고 신자들을 찾아 나섰다. 한 번은 상류에서 내린 비로 계곡이 불어나 신자 마을에 가지 못하고 정글에서 야영을 하게 된 적이 있다. 비에 젖은 비스킷을 식사 대용으로 먹으면서 사람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검은 모기와 사투를 벌이는 그 앞에 작은 불빛들이 모여들었다. 방문한다던 신부가 아직 도착하지 않자 걱정돼 나온 신자들이었다. 박 신부는 아직도 당시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걱정하지 말고 마을로 되돌아가라’는 제 말에 신자들은 대답 대신 묵주기도를 바치더군요. 그때 경험으로 알았어요. 진심은 마음과 마음으로 전달되고 그 마음을 존중할 때 선교사의 존재가 인정받는다는 것을요.”

캄보디아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인 프레이벵(Preyveng)에서 10년 동안 선교하고 있는 김주헌 신부는 대부분의 시간을 학생들과 함께 보낸다. 김 신부가 있는 프레이벵본당에는 유치원과 고등학교가 위치하고 있어 본당 사목과 학교 사목 모두 그의 몫이다. 학생 14명이 거주하고 있는 기숙사까지 본당에서 운영하고 있는 탓에 김 신부는 사생활도 없이 학생들과 모든 것을 공유한다. 하지만 그는 학생들과 더불어 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폐허에서 다시 일어나는 캄보디아의 어린 학생들이 희망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김 신부가 최근 교육 사업에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본당과 공소에서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고, 재작년에는 은인의 도움으로 고등학교에 도서관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꿈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져 제 개인적으로는 매우 기쁜 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올해 멕시코 지부장을 맡은 양금주 신부는 12년차 선교사다. 지난해 멕시코로 파견된 양 신부는 현재 한국인 선교사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지부 건물 신축과 스페인어 공부에 여념이 없다. 그러면서도 현지인들과 소통을 이어가면서 그들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느끼고 체험하고 있다.

“예전 한국 시골본당 할머니들처럼 이곳 할머님들께서도 신부 손에 뭐라도 들려주려는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한 끼를 걱정하기에도 여유가 없을 텐데, 멀리 타국에서 온 선교 사제에게 감사해하는 그분들의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아요.”

비움의 삶을 사는 선교사

선교사들은 가난한 삶을 산다. 후원자들의 성금에 의해 운영되는 선교회가 선교사들에게 지원할 수 있는 것은 생활비가 전부다. 배낭 하나 분량의 짐을 전 재산이라고 여기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난’은 오히려 현지인들에게 다가가는 매개체다. 스스로가 가난하기 때문에 더 가난한 지역으로 찾아가 더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한다. 죽는 순간까지 이방인이 아닌 현지인들과 동화돼 하나의 가족으로 산다.

고향이 아닌 타국에서 ‘현지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에는 어려움도 있다. 낯선 환경, 언어, 문화, 풍토병 등에 적응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것보다 선교사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비움’이다. 인간적인 욕심으로 현지에서 다양한 사업을 펼치는 일도 있지만, 이는 선교사의 삶이 아닌 NGO의 역할이다. 선교회 회원들은 선교사가 그저 자신을 비우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느끼고 그것을 함께 사는 이들과 나누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양금주 신부는 “내가 선교하는 기간에 어떤 일을 얼마나 했는가하는 생각이 스스로를 조급하게 만들고 불안하게 한다”면서 “선교사는 단지 그리스도와 함께 삶의 여유를 갖고 주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람이다”라고 강조했다.

박영주 신부는 마당대교구에 있는 성직자 묘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묘지 대부분이 선교사의 묘로, 3.3㎡(1평)도 되지 않는 작은 공간에 묻힌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 번 선교사는 영원한 선교사’라는 말을 항상 떠올린다고 했다.

박 신부는 “누군가 있어야 할 곳에 가서 자신의 소명을 다한 선교사의 삶은 행복이자 큰 은총이다”며 “우리 선교회 회원들은 선교사로 파견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다들 선교지에 파견되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말했다.

해외선교 40년, 온 세상에 기쁜 소식을

한국외방선교회는 설립과 동시에 한국교회 해외선교 역사를 이끌었다. 첫 해외선교 사제를 배출했고,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 한국교회의 지평을 새롭게 열었다. 복음의 불모지인 한국 땅에서 헌신적으로 살아온 해외선교사들의 사랑과 도움에 감사와 보은의 마음으로, 현재까지 회원 71명 중 50명이 전 세계 곳곳에서 한국교회의 이름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있다.

사무처장 장호창 신부는 “선교를 왜 하냐고 묻는 것은 왜 밥을 먹고 살아야 하느냐와 같은 질문이다”며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 선교이고, 우리는 죽을 때까지 복음을 선포했던 순교자 정신을 따라 복음 선포의 사명을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선교회는 올해 설립 40주년을 맞아 선교회 사명 수행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2012년 열린 제5차 총회에서 결정된 사안에 따라 아시아 선교에 집중하는 동시에 각 지부에서 진행되는 연례 피정에 본부 ‘사제 피정팀’을 파견하고 선교사들의 내적 성장을 돕고 있다.

또한 오는 12월 5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성북구 성북로9길 한국외방선교회 본부에서 총재 염수정 추기경(서울대교구장) 주례로 감사미사를 봉헌한다. 같은 날 열리는 학술발표회에서는 오기백 신부(성골롬반외방선교회)와 김병수 신부(한국외방선교회)가 선교회의 역사와 전망을 짚어보는 시간이 마련된다.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아이들에게 강복하고 있는 캄보디아 지부 김주헌 신부.
파푸아뉴기니 마당대교구에서 13년째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박영주 신부가 아이의 머리를 깎아주고 있다. 한국외방선교회 제공
파푸아뉴기니 어린이들. 선교사들은 죽는 순간까지 이방인이 아닌 현지인들과 동화돼 가족으로 살아간다. 한국외방선교회 제공

이지연 기자 (mar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