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TH

[조재연 신부의 청사진] (74) 한국에서의 WYD(세계청소년대회)를 위한 제안 ⑩ 교구 대회(DID)를 위한 제안 (1)

조재연 신부
입력일 2015-10-13 수정일 2015-10-13 발행일 2015-10-18 제 2965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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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WYD라고 하면 적게는 수십만 명, 많게는 수백만 명에 이르는 젊은이들이 WYD의 주관 교구 지역에 대규모로 함께 모여 전례 및 각종 행사에 참여하는 ‘본대회’(Main Program)의 모습만을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사실 ‘교구 대회’(DID: Days in the Dioceses) 또한 WYD의 핵심 축으로서 그 목적을 향해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본대회가 대규모 이벤트의 효과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가톨릭교회의 힘과 활력을 증거한다면, 교구 대회는 소규모 공동체 안에서의 진심 어린 만남과 우정의 관계 맺음을 통해 그 여정에 함께하는 사람들을 회심으로 초대하여 신앙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다.

WYD는 이 두 가지가 함께 균형을 이루고 있기에 더욱 의미 있는 것이며, 이를 위해 본대회가 이루어지는 주관 교구와 더불어 해당 국가의 모든 교구가 함께 협력함으로써 은총의 열매를 나눌 수 있는 여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WYD를 개최하게 된다면, 한국 교회 모두가 본대회 준비뿐만 아니라 교구 대회를 잘 준비하여 치르는 데에도 관심과 지지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겠다.

다른 WYD의 교구 대회 사례를 참조해볼 때, 한국에서의 교구 대회를 위한 핵심 준비로 우선적인 것은 일단 한국 교회 내 각 교구별로 교구 대회의 의미와 목적을 공유하는 것이다. 대규모의 전례나 화려한 축제 행사는 본대회에서 충분히 이루어진다는 점, 교구 대회에서는 소규모의 만남과 대화, 우정 어린 관계 맺음을 통한 ‘구체적인 신앙 공동체 체험’이 초점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청소년·청년 사목에서는 이를 ‘프로그램이 아니라 관계 중심’(Not Program But Relationship) 원칙이라고 하여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사목의 핵심은 그 육화(肉化)의 순간에서부터 만남과 관계 맺음에 있었음을 되새기며 실천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물론 심사숙고의 과정을 통해 합리적으로 잘 구성된 프로그램, 창의적이고 흥미 가득한 이벤트는 만남과 관계 맺음을 활성화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그 행사나 프로그램에 갇혀 본질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이러한 초점을 기억하면서, 한국 방문이 처음일지도 모를 WYD 청년 참여자들이 각 교구가 지닌 한국 교회의 가톨릭 신앙 문화를 잘 ‘체험’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 다녀간 많은 외국인들이 흔히 언급하듯, 따스한 정(情)이 넘치는 공동체의 분위기, 손님들을 자기 가족·친지처럼 맞아들이는 환대의 문화를 교구마다의 색채로 표현할 수 있으리라 본다. 더불어 콘텐츠 측면에서 한국 교회 내 각 교구별로 갖고 있는 신앙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그 전통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이 때 그 문화유산은 교구 내 주류의 문화, 잘 알려지고 인기 있는 부분만 보여주기보다는 다소 허름하고 부족해 보이더라도 그 교구 지역 내의 변방 문화, 즉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포함할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신앙 안에서의 만남이란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진솔하게 드러낼 때 이루어지기 때문이며, 교구 대회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신앙 체험은 짜임새 있게 준비된 문화 행사에서뿐만 아니라, 어느 가난한 지역 양로원에서 WYD 참여자들을 만난 기쁨에 웃음 짓는 할머니와의 만남에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각 교구, 각 본당 공동체 안에서 오랜 시간 신앙을 살아온 선조들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 그 신앙을 각자의 자리에서 이어가고 있는 소박한 이야기들이 따뜻하고 친근하게 나누어지고, 그 나눔들과 함께 단순하지만 깊이 있는 가톨릭 전통의 기도를 참여적인 방식으로 함께 드릴 수 있다면 교구 대회의 의도가 잘 살아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다음 호에 계속)

조재연 신부는 서울 면목동본당 주임으로 사목하고 있으며, 햇살청소년사목센터 소장,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청소년사목위원회 전문위원, 한국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조재연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