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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봉헌생활] (9) 수도성소

이지연 기자
입력일 2015-10-06 수정일 2015-10-06 발행일 2015-10-11 제 2964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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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잠에서 깨우는 예언자적 소명에 응답하다
수도성소는 무엇일까? 그 의미는 봉헌생활이 탄생한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봉헌생활의 창시자인 성 안토니오(251-356)는 그리스도를 철저히 따르려는 열망으로 이집트 사막 깊숙이 들어가 철저히 고행을 하면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았다. 이후 로마제국이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승인하고, 숨어서 신앙생활을 하던 신자들에게 자유가 주어졌지만 오히려 사막으로 들어가 봉헌생활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증가했다. 고행을 하면서 박해를 체험하고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기 위해서였다.

즉, 수도자들은 복음을 보다 철저하게 살아가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준 청빈, 정결, 순명의 삶을 실천하고 교회의 본질적 차원과 사명을 드러내는 이들이다. 또한 수도성소는 이러한 삶을 선택하도록 부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현대의 봉헌생활’에서는 ‘수도성소’의 의미에 대해 살펴본다.

교회 안에서의 수도성소

성소는 그리스도인 모두가 세례성사를 통해 거룩함으로 부르심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다같이 하느님의 백성인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는 각자 고귀한 성소와 신원 안에서 자신의 사명과 역할을 수행한다.

평신도들이 가정을 이루고, 하느님 안에서 거룩하게 생활하도록 불림 받은 것은 ‘혼인성소’라고 한다. 교황 권고 「가정 공동체」(1981년)는 “가정은 하느님 나라에 봉헌된 생활을 위한 성소의 일차적이고 가장 훌륭한 못자리”(53항)라고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결혼은 마치 사제성소나 수도성소처럼 하나의 부르심”이라고 강조했다.

사제성소(교구 사제)는 그리스도를 대신해 본당을 책임지고 봉사하는 사목자로의 소명이며, 수도성소는 세상의 가치를 포기하고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내며 복음적 권고(청빈, 정결, 순명)를 살아가는 성소이기에 ‘실존적 성소’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도성소를 가장 잘 설명한 문헌은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인류의 빛」과 수도생활 쇄신과 적응에 관한 교령 「완전한 사랑」이다. 「인류의 빛」은 봉헌생활에 관해, “수도자 신분은 성자께서 성부의 뜻을 이루시려고 세상에 오시어 받아들이셨던 생활양식,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제시하신 그 생활양식을 더 철저히 본받고 교회 안에 영구히 재현한다”(44항)고 설명한다. 「완전한 사랑」에서는 “복음에 제시된대로 그리스도를 따르고 하느님과 일치하게 하는 것”(2항)이라고 언급돼 있다.

두 문헌에 제시된 내용을 정리하면 수도성소는 ‘복음의 가치로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따르며 교회에 봉사하는 부르심’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부르심은 내 자신이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불림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서 시작된다. 하지만 성소는 일방적인 것만은 아니다. 부르심에 대한 ‘응답’은 성소자들의 자유로운 결정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김영훈 신부(예수회)는 “예수님의 관대한 부르심과 내 자신의 자유로운 응답이 예수님과 나의 관계이며 이 관계를 지속적으로 깊게 만들어 나갈 때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인격적인 준비와 자신이 기쁘게 살 수 있는 수도회 카리스마를 찾는 노력이 더해져야 성소에 올바르게 응답할 수 있다. 조수만 신부(작은형제회)는 “인격적으로 준비돼 있지 않다면, 공동체로부터 상처 받고 공동체에 상처를 주게 된다”면서 “수도회 카리스마를 살기 위해 요구되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그 생활에서 기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길 때 분명한 응답을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현대의 수도성소

현대교회 안에서 수도성소는 ‘하느님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삶’이라는 전통적 의미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물질문명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청빈, 정결, 순명의 삶을 살아가는 봉헌생활이 더 이상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함은순 수녀(인보성체수도회)는 “세속적 가치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수도성소를 느끼고 수도자가 돼 그 삶의 고리를 벗어내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오늘날 수도성소는 물질주의와 세속주의에서는 얻을 수 없는 가치를 우리에게 전해 준다. 많은 수도회의 성소 담당자들은 수도성소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라는 원천에 뿌리를 내리고, 창립자의 은사에 더 충실하며, 현실이라는 삶과 대화하면서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 중심에 ‘예언자적 소명’이 있다.

「인류의 빛」은 수도성소가 “이미 이 세상에 있는 천상 보화를 모든 신자에게 보여주고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얻은 새롭고 영원한 생명의 증거를 드러내며 미래의 부활과 하늘나라의 영광을 예고해 준다”고 전한다.

이와 함께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탁월하고 위대한 힘과 교회 안에서 기묘히 활동하시는 성령의 무한한 능력을 모든 사람에게 드러내 보여준다”(44항)고 덧붙여 말한다. 이는 수도성소가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내고 복음의 가치를 세상에 증거하는 예언자적 삶에 대한 부르심이라는 의미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봉헌생활의 해를 맞아 모든 봉헌 생활자에게 보내는 교서」를 통해 이러한 점을 강조했다. 교황은 “저는 여러분이 ‘세상을 잠에서 깨우기’를 믿는다”며 “봉헌생활의 뚜렷한 표징은 예언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영훈 신부는 “신자유주의로 양극화와 빈곤의 확산 속에서 수도성소를 통해서 세상에 복음적 가치를 따르는 삶이 가능하고, 수도자들은 그 삶이 기쁨을 주는 삶임을 증거하는 예언자적 소명을 부여받았다”고 말했다.

수도성소에 담긴 예언자적 소명을 젊은이들에게 알리는 데 있어서 가장 선행돼야 할 일은 ‘하느님 체험’이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수반되고 봉헌생활을 통해 행복을 느낄 때, 비로소 성소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쁨으로 봉헌생활을 살아가는 많은 수도자들과 젊은이들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

이영준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는 “한국 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를 비롯해 많은 수도회들은 수동적이고 기도만 하는 기존의 수도회 이미지를 쇄신하고 청년들이 봉헌생활을 체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02-776-3189)는 수도생활을 고민하는 젊은이들이 다양한 수도회와 카리스마를 접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고 있으며, 각 수도회에서 주최한 성소모임과 청년 프로그램을 통해서 젊은이들이 수도성소에 올바른 응답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지연 기자 (mar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