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TV

김은영(TV칼럼니스트),
입력일 2015-10-06 수정일 2015-10-06 발행일 2015-10-11 제 2964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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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오와 중식이, 절망의 상품화?
‘슈퍼스타K7’ 한 장면. Mnet 제공
실제상황의 관찰을 전제로 한 ‘리얼 예능’은 음악인들이 TV에 소개되는 양상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늘씬한 외모를 뽐내며 사랑의 환상을 노래하는 연예기획사 출신 아이돌 스타뿐 아니라, 변두리의 관점에서 소박한 창법과 가사로 일상을 노래하는 인디(독립) 음악인 또는 밴드들도 팬들의 입소문과 예능 작가의 섭외를 거쳐 TV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다. 기존 인기가요에 없던 색다른 감성, 밴드 멤버들 특유의 우정, 스스로 작사 작곡 공연을 해내고 궁핍한 살림 속에서도 자급자족하는 주체성이 이들의 매력이다.

‘무한도전’의 ‘혁오’와 ‘슈퍼스타k’의 ‘중식이’는 그 가운데 최근 방송에 소개된 두 팀이다. 뉴스에선 제3자의 일로 다뤄지고 드라마에선 실종된 청년들의 절망을, 그들은 나와 우리의 이야기로 노래한다. “사람들 북적대는 출근길의 지하철엔 좀처럼 카드 찍고 타볼 일이 전혀 없죠”(혁오, ‘위잉위잉’). “아기를 낳고 싶다니, 그 무슨 말이 그러니? 너 요즘 추세 모르니? 너랑 나 지금도 먹고 살기 힘들어”(중식이, ‘아기를 낳고 싶다니’). 카메라가 담은 밴드 멤버들의 생활도 가사와 비슷하다. 오혁은 비좁은 옥탑방에 살며 밤새 음악 작업을 하고, 정중식은 음식 배달로 생활비를 벌며 몇 천 원짜리 옷을 입고 무대에 선다.

노래의 배경인 고용 없는 성장, 실업과 N포 세대 현상은 신문과 시사주간지, 교황 문헌과 주교 시노드 의안집도 계속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일반화, 추상화된 글보다는 사람 목소리와 운율에 얹힌 일상 묘사가 가슴에 더 와닿기에, 청년들은 방송에 소개된 노래들을 SNS에 실어 나르며 공감을 표한다.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려는 계산에서 비롯됐다 할지라도, 예능의 인디밴드 사랑은 순기능이 있다. 정상급 가수들과 손잡고 추진하는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밴드는 대중음악의 여러 장르를 공평하고 다양하게 소개하는 창구가 된다. ‘슈퍼스타k’에 출연한 밴드들은 가수의 미덕이 가창력만이 아니라 독창성과 진정성에도 존재함을 알려준다.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가 입시 지상주의를 고발했듯이, 오늘의 인디밴드들은 열심히 살았는데도 잉여인간 취급을 당하는 청년들의 현실을 토로한다. 음악을 소재로 한 예능이 새로운 것을 찾고 찾다 비주류의 노래들을 발굴해 인기가요 반열에 올려놓았으니, ‘보이지 않는 손’이 대중문화의 균형을 찾아준 셈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불가피한 부작용도 존재한다. 방송인들의 의도가 불순해서가 아니다.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대중매체의 생리 탓이다. 혁오와 중식이의 노래가 참신하고 희소한 문화 콘텐츠로 주목받으면서, 청춘의 절망은 트렌드(유행) 상품으로 변질되고 만다. 출근 행렬에 낄 수 없고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한탄이 유흥가의 배경음악이 되고 방송사에 광고수입을 안겨주는 역설은 그렇게 탄생한다. 대중이 인디밴드의 노래가 청춘을 온전히 대변한다고 믿으며 유행을 소비하는 사이, 고통을 호소할 엄두조차 못 내는 청년들의 절망적인 현실은 계속된다.

김은영(TV칼럼니스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경향잡지 기자를 거쳐 미디어부에서 언론홍보를 담당한다. 2008년 <매거진T> 비평 공모전에 당선된 뒤 <무비위크>, <10아시아> 등에 TV 비평을 썼고, 2011년에 단행본 <예능은 힘이 세다>를 냈다.

김은영(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