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군인주일 특집] 레바논 동명부대서 사목 펼치는 유현상 신부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사진 유현상 신부
입력일 2015-09-23 수정일 2015-09-23 발행일 2015-09-27 제 2963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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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 한 알, 위로의 말 한마디에 장병들 ‘힘이 불끈’
진한 동료애·형제애 함께 나누며
이역만리 타국에서 부대원 격려
주민 의료지원·태권도 교실 등
인도적 활동으로 평화 정착 기여
“군종신부 사명 다시금 깨달아”
레바논에서 유엔평화유지군으로 임무 수행 중인 동명부대 장병들과 함께한 유현상 신부(왼쪽에서 다섯 번째).
아직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5시, 군종교구 유현상 신부의 일과가 시작된다. 새벽미사를 드리기 위해 제의를 갖춰 입는 것이 아니라 절도 있게 군복을 입고 손수 커피와 녹차를 탄다. 사탕도 듬뿍 챙긴다. 레바논에서 유엔 평화유지군 활동을 펼치고 있는 동명부대 16진 장병들을 위문하기 위해서다. 초소와 위병소 근무자들, 정찰팀원들은 어둠을 뚫고 다가오는 유 신부가 반갑기만 하다. 이른 새벽 건네는 따뜻한 차 한 잔과 사탕 한 알, 위로의 말 한마디에서 하루를 살아갈 힘이 나온다. 유 신부와 마주치는 장병들마다 잠시 긴장을 풀고 “신부님,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넨다.

유 신부는 올 4월 7일 한국에서 비행기로 12시간이나 걸리는 이역만리 레바논 동명부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신부들 가운데서도 군종신부의 삶은 하고 싶어서 하고 하기 싫어서 안 하는 임무는 없습니다. 레바논 동명부대 역시 저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일념에서 오게 됐습니다.”

유 신부는 ‘레바논 파병도 한 번쯤은 가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로부터 동명부대에서 사목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단번에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답한 유 신부는 올 2월 초 2주간 평화유지군(PKO) 교육을 받기 시작해 3월에는 파병 준비단에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군종신부로서의 직무는 물론 전투부대인 동명부대 구성원이 되기 위한 군사교육도 받았다.

“동명부대는 2007년 7월 레바논에 파병된 후 지금까지 8년 동안 남부 레바논 티르 지역에서 불법 무장세력의 활동을 억제하고 불법무기 반입을 통제하는 감시와 정찰활동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저도 군종신부이자 군인으로 매주 수요일마다 책임지역 내에 불법 무장세력과 무기 반입을 차단하는 고정감시 작전에 투입됩니다.”

유 신부와 함께 작전 수행을 하는 장병들은 천주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를 떠나 진한 동료애와 형제애를 나눈다. “초소에서 장병들과 나란히 경계 근무를 서면서 한 명 한 명씩 면담과 고충상담을 하고 격려를 하다보면 사제인 나를 필요로 하는 장병들이 이 먼 곳에도 있다는 사실에서 군종신부의 사명감을 다시금 깨닫곤 합니다.”

매일 오후 부대원들과 부대 안 울타리를 따라 10km가량 걷기 운동을 하고 저녁에는 테니스를 치는 것도 체력 단련을 넘어 부대원들과 끈끈한 친화력을 쌓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동명부대 성당에서는 매주 주일 오전 10시30분과 수요일 오후 7시30분에 미사를 봉헌한다. 미사 참례 인원은 15명이 약간 넘는 정도다. 전체 부대원 300여 명에 비하면 천주교 신자 장병은 적은 편이다. 10월부터는 동명부대 작전지역 안에 있는 가톨릭계 카드무스학교 가톨릭 학생, 교직원들과 연합 미사를 자주 봉헌할 계획이다.

“현재 동명부대에 군종장교는 저만 파견돼 있습니다. 개신교 신자들은 레바논 현지 한국인 선교사 목사님과 함께 주일과 수요일에 부대에서 예배를 드리고 불교 신자들은 법사가 없어 불당에서 스스로 예불을 드립니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12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인 데다 군부대라는 특성상 고충도 많다. “「매일미사」 책을 서울 군종교구청에서 매달 소포로 보내주는데 한 달 정도 기다려야 받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일미사」의 절반은 이미 지난 내용이 돼버리지요. 그래서 인터넷을 이용해 독서와 전례문 등을 출력해 참고합니다만 이마저도 인터넷 속도가 워낙 느려서 인내심을 갖고 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명부대에 파견된 지 이제 다섯 달이 넘었고 12월 중순 파견 기간이 끝나면 한국에 돌아온다.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레바논의 기후는 유 신부에게도 뚜렷한 인상을 남겨줬다. “4월에 레바논에 와서 9월까지 여름을 나면서 비가 오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4~9월까지 뜨겁고 건조한 여름을 나면 비와 우박이 자주 내리는 겨울이 온다고 합니다. 겨울 날씨가 기대됩니다.”

이국적인 날씨만큼이나 동명부대원에게 레바논은 낯선 나라일 수 있다. 그러나 유 신부는 동명부대가 레바논에서 ‘진정한 친구이자 가족’, ‘신이 내린 선물’이라는 극찬을 듣고 있다고 소개했다. “동명부대는 전투 작전과 별도로 현지 주민들을 대상으로 의료지원 활동, 한글·태권도 교실 운영 등의 인도적 민군작전을 시행하며 레바논 주민들의 ‘친한화’에도 톡톡히 기여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맞이하는 군인주일에 동명부대 장병들에게 어떤 선물을 할지 유 신부는 고민 중이다. 공교롭게도 10월 4일 카드무스학교 학생들이 동명부대를 방문해 부대 장병들과 함께 군일주일 미사를 봉헌하기로 했다. 유 신부는 “동생 같은 학생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가 동명부대 신자 장병들에게 의미 있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면서 “국군의 날과 군인주일을 기념해 부대원 전체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유 신부는 해외 파병 장병들을 위해 가톨릭신자들이 우선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저도 군인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나라 군인들은 정말 힘든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외국의 다른 군인들과 비교해도 그렇고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비교해도 그렇습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군인들에게 진심 어린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저 역시 동명부대에 와서 장병들을 위하는 사제의 마음을 새롭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 레바논 동명부대는…

동명(東明)부대는 2007년 6월 창설돼 그해 7월 레바논에 파견된 유엔(UN) 평화유지군 소속 부대다. ‘동명’은 ‘레바논의 동쪽에서 온 밝은 빛’이라는 뜻으로 레바논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동방에서 온 부대를 상징한다.

레바논 유엔 평화유지군은 1976년에 일어난 레바논 내전을 진정시키려는 목적으로 1978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이때 병력 규모는 3000여 명 정도였다가 2006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사이의 무력 충돌로 민간인 1000여 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유엔은 평화유지군 규모를 1만5000명 선으로 증강시켰다. 이 과정에서 유엔은 회원국에 병력 지원을 요청했고 대한민국도 2006년 11월 국무회의 의결과 12월 국회 동의를 거쳐 이듬해 6월 350명 규모의 동명부대를 창설, 레바논에 파병하게 됐다.

동명부대는 대한민국이 외국에 파견한 평화유지군으로는 다섯 번째 부대이면서 전투부대로는 동티모르 상록수부대에 이어 두 번째다. 현재 레바논 동명부대는 16진이 활동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의 유엔 평화유지군 파병 역사상 최장기 파병기록을 세워나가고 있다.

동명부대 지휘관은 육군 대령이 맡고 있으며 부대원은 특전사, 공병, 통신, 의무, 헌병, 수송, 정비 등의 주특기로 구성돼 있다. 평화유지 활동 이외에 지역민을 위한 의료봉사와 태권도 보급 등 국위선양에도 힘을 기울인다.

유현상 신부(오른쪽)가 이른 새벽 차와 커피를 장병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유현상 신부(오른쪽)가 작전에 투입되는 동명부대 장병들 안전을 기원하며 기도하고 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사진 유현상 신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