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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특별기획] 가정사목과 복음화 12. 가정과 교회법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5-09-16 수정일 2015-09-16 발행일 2015-09-20 제 2962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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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원칙… 영성생활과 접목 필요
신자 생활과 가장 밀접하면서도
복잡하고 어려운 부분이 혼인법
고통받는 가정 위한 배려 차원
혼인 무효화 절차 간소화 등 추진
“이제 곧 결혼식을 하는데요, 신랑 될 사람이 조당에 걸려 있습니다. 재미교포이고 한국의 호적에는 미혼으로 돼 있고, 미국서 결혼식을 올렸지요. 조당을 풀려고 서류를 준비해서 법원에 제출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하네요. 결혼식 전까지 조당을 풀어야 할텐데….”

“잘 아는 분이 자살을 했어요.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요? 교회법상으로 자살을 한 사람은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할 수 없다고 들었는데요….”

“파문을 당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한참을 방황하다가 다시 성당에 나가려고 하는데, 대죄를 많이 지어서… 혹시 파문에 해당되는 죄를 지었으면 어쩌나 고민이 됩니다.”

“성체모독은 어떤 행동을 말하는 것인지요? 독성죄를 범하고 나서 성체를 모시면 그것도 성체모독인가요? 공복재를 지키지 않은 채 영성체를 하면 그것도 성체모독인가요? 알려주세요.”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그리고 조금 더 열심히 신앙생활에 충실하다 보면 이처럼 신앙과 교회 생활에 관해 궁금한 것들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러한 궁금증들에 대해서 대부분의 경우 교회법은 관련 규정들을 담고 있다. 법은 사회와 국가,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고 공동선을 증진하기 위해 마련된 최소한의 규범임을 생각할 때, 교회 안에도 법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정작 신자들은 교회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물론 다 알 필요도 없다. 다만, 신앙생활을 영위해 나갈 때에, 신자로서의 최소한의 의무와 원칙을 알고, 그것이 영성생활과 구세사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명확하게 아는 것은 필요하다. 교회법 안에서 신자 생활과 관련되는 내용은 우선적으로는 개인의 충실한 신앙생활의 외적 지침과 규정들이고, 실제로 신자 생활에 가장 많이 언급되고 관련되는 것은 혼인과 가정에 관한 내용들이다.

교회법에 규정된 신자의 의무

교회법 안에는 다음과 같은, 신자들의 기본적인 의무에 대한 규정이 담겨 있다.

■ 주일미사 참례

“신자들은 주일과 그밖의 의무 축일에 미사에 참여할 의무가 있다.”(1247조)

이는 십계명에서도 명확하게 밝히고 있는 기본적인 의무이며 교회법적 규정이다. 이는 가장 중요한 의무이지만 상황에 따라 면제가 된다. 즉,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주일미사를 빠져야 할 경우 말씀의 전례에 참여하거나 그도 어려울 때에는 합당한 시간 동안의 기도가 권장된다.

■ 속죄 행위

신자들은 금육과 단식으로(1251조)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고 하느님께 희생을 바치며 절약된 재화를 가난한 이웃과 나눠야 한다(1249조). 단식재를 겸한 금육재는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에 지켜야 한다.(1251조)

금육재는 만14세부터 죽을 때까지 연중 대축일과 겹치지 않는 한 모든 금요일마다 지켜야 하며(1251조), 여행할 때나 외식 할 때는 면제된다. 금식재는 만21세부터 60세까지의 모든 성년 신자들이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에 지켜야 한다.

■ 고해성사

“모든 신자는 사리를 분별할 나이에 이른 후에는 매년 적어도 한 번 자기의 중죄를 성실히 고백할 의무가 있다.”(교회법 제989조)

부활절을 준비하는 사순시기나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시기 동안에 고해성사를 받는데 이를 판공성사라고 한다. 신자로서 일 년에 이 시기 중 한 번은 판공성사를 받아야 한다.

■ 영성체

“모든 신자는 지성한 성찬을 영하기 시작한 다음에는 매년 적어도 한 번 성체를 영할 의무가 있다. 이 계명은 부활시기에 이행하여야 한다. 다만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연내 다른 시기에 수행하여야 한다.”(교회법 920조)

교회는 신자들이 가능한 한 자주 영성체하도록 권고하지만(897, 899, 918조 참조) 특별히 부활시기에 반드시 성체를 영할 것을 요구한다. 대죄 중에 있는 사람은 먼저 고해성사를 받지 않고서는 영성체할 수 없으나 중대한 이유가 있고 고해성사를 받을 기회가 없었다면 완전한 통회를 한 다음 되도록 빨리 고해성사를 받겠다는 마음으로 영성체할 수 있다.(916조)

■ 교회 유지를 위한 경제적 의무

“교회는 그 고유한 목적에 필요한 것을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요구할 타고난 권리가 있다.”(교회법 1260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교회가 하느님 경배, 사도직과 애덕의 사업 및 교역자들의 합당한 생활비에 필요한 것을 구비하도록 교회의 필요를 지원할 의무가 있다.”(222조)

교회는 신자들의 교회이다. 따라서 신자들은 자신의 힘으로 교회를 유지 발전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신자들은 현재 교무금과 헌금으로 이 의무를 수행한다.

■ 혼인법을 지킬 의무

“영세자들 사이에서는 그 자체로 성사가 아닌 유효한 혼인 계약은 있을 수 없다.”(교회법 1055조)

신자들의 혼인은 성사이므로 신자들은 교회 안에서 유효하고 은혜로운 혼인을 성립시키기 위해 혼인법을 지켜야 한다.

혼인과 관련된 교회법 규정들

사실상 신자들의 생활과 관련된 교회법적 규정은 혼인과 가정에 관한 규정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신자들이 많이 혼란을 일으키고 궁금해하면서 상담을 청해오는 내용들도 거의 대부분 이에 해당한다. 혼인과 관련된 교회법 규정들은 교회법 제4권 교회의 성화 임무 제7장 혼인(1055~1165조) 부분에 집중돼 실려 있다.

성사들 중에서, 혼인성사는 두 남녀의 혼인 서약으로써 스스로가 성사를 이룬다. “따라서 영세자들 사이에서는 그 자체로 성사가 아닌 유효한 혼인 계약은 있을 수 없다.”(1055조)

혼인에 관한 교회 가르침의 핵심은 혼인의 불가해소성, 둘만의 유일한 계약으로서의 단일성, 그리고 신성성과 영속성, 신비성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혼인의 불가해소성이 강조된다. 거룩하고 신비하고 신성한 혼인은 신자와 비신자를 막론하고 교회법상 유효하게 혼인한 사람은 남편, 혹은 아내가 살아있는 한 다른 사람과 재혼할 수 없다.

“성립되고 완결된 혼인은 사망 이외에는 어떠한 인간 권력으로나 어떠한 이유로도 해소될 수 없다.”(1141조)

“혼인의 본질적 특성은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이다. 이러한 특성은 그리스도교인 혼인에서는 성사의 이유로 특별한 견고성을 가진다.”(1056조)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교회법은 혼인에 관련된 사목적 배려와 선행 사항들, 무효 장애, 혼인 합의, 혼인 거행의 형식, 혼종 혼인, 혼인의 효과, 혼인 유대의 해소, 혼인의 유효화 등에 대한 조항들을 다룬다.

가정에 관한 주교대의원회의와 혼인 무효 소송 절차의 간소화

교회는 지난 해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3차 임시총회에 이어 오는 10월 제14차 정기총회에서도 가정과 가정사목을 주제로 삼고 있다. 두 차례의 연이어 열리는 주교대의원회의의 동기와 정신은,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한 가정들을 성찰하고 하느님의 자비에 바탕을 두고 그 고통에 동행하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교대의원회의 개막을 앞두고, 또한 ‘자비의 희년’ 개막을 앞두고 교회법상 혼인 무효화 절차를 간소하게 개혁한 자의교서를 발표했다. 1년여에 걸친 검토 끝에 나온 이 교서는 혼인생활에 실패해 고통을 겪고 있는 신자들로 하여금 불필요하게 장기간에 걸친 복잡한 과정으로 인해 더 큰 고통을 겪지 않도록 혼인 무효화 소송의 절차를 현실화, 간소화한 것이다. 이 교서는 따라서 교회법적 조항의 개정을 요청한다. 교서로써 교회법의 ‘혼인의 무효 선언 소송’에 해당되는 1671~1691조가 바뀌게 된다.

교회법 제1056조는 “혼인의 본질적 특성은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이다. 이러한 특성은 그리스도교인 혼인에서는 성사의 이유로 특별한 견고성을 가진다”고 밝히고 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