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이슈토론] 성지순례 중 친교의 시간 가져도 될까요?

입력일 2015-09-16 수정일 2015-09-16 발행일 2015-09-20 제 296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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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상 아주 좋은 계절 ‘가을’, 많은 신자들이 전세버스나 승합차를 이용해 단체로 전국의 성지를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순교자의 신심을 본받는 동시에 함께한 이들과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성지순례.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전해주고, 일상의 활력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면에 상처받는 이들도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찬반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 찬성합니다

모처럼 서로 나누고 소통하는 기회

요즘은 거의 볼 수 없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고속도로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전세버스를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결혼식, 야유회 등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벌어지는 음주가무는 일종의 문화가 되어버렸던 적이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갈 때는 적막감이 흐릅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버스는 목적과 상관없이 위태한 모습들입니다. 많은 이들이 목격했고, 그 현장에 한 번쯤은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 기억으론 성지순례 가는 버스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이들과 버스에 탄 목적만 다를 뿐, 함께하고 싶은 좋은 사람들과 있고, 준비해간 음식이 남아서, 버리기에는 아깝고….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리가 만들어졌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모처럼 교우들이 친밀하게 서로를 나누고, 소통하는 기회로 나쁘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제 개인적인 생각은 함께할 무언가가 없어서, 관례적으로 버스 안에서의 음주가무나 식사 자리에서 다소 지나친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오랜만에 친한 이웃 신자들과 떠난 성지순례에서 아무 말 없이 하루를 같이 보낸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성지순례를 가보면 해설봉사자나 전문해설사가 있는 곳이라면 성지와 관련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설사가 없거나 집중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제대로 순례도 못 하고 올 때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모습을 볼 때 한 가지 제안하고 싶습니다. 그저 성지를 둘러보는 방식의 성지순례와는 다르게 조를 나눠 함께 작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됐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떠난 모두와는 친교를 나누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같은 조에 편성된 이들만큼은 확실히 친교를 나누고 친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또 순례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프로그램은 자연스럽게 알찬 성지순례를 만들어 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짧게는 한 두시간, 길게는 세 네시간 버스를 타고 간 성지에서 함께간 이들과 무작정 성지를 돌아보고 준비해간 음식을 먹고 돌아온다면, 성지에 가서 제대로 한 것이 없으니 당연히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주일학교 신앙학교만 생각해도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춘 다양한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매주 일정을 소화합니다.

본당이나 단체가 성지순례 기획단계에서부터 순례자들의 연령대와 성향 등을 파악하여 눈높이에 맞는 성지순례 프로그램을 준비해보면 어떨까요? 한 예로 TV 예능 방송에서 하는 방식을 빌려 조별 미션을 한다든지, 공동체 작업을 마련한다면 순례에 참가한 신자들로부터 상당한 호응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외에도 참고할 사항들은 무궁무진합니다.

성지를 찾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받을 몫이 크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왕 바쁜시간을 쪼개서 참가한 성지순례가 알차고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준비하고 마련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준비가 됐을때 순례자들은 기획한 봉사자들을 잘 따라야 할 것이며, 능동적으로 움직일 때 모두가 즐거운 순례가 될 것입니다. 아멘.

김영훈(안드레아)

■ 반대합니다

본래 목적에 충실했으면 좋겠습니다

세례 받은 지 얼마 안 된 신자입니다. 올해 초 따뜻한 봄날에 난생 처음으로 성지순례 갔을 때의 기억이 떠올라 몇 자 적어보려 합니다.

아침 일찍 성당에 모여 버스에 몸을 실었을 때만 해도 무척 기분이 좋았습니다. 반갑게 서로 인사를 나누고 버스 안에 나란히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저 역시 성당이라는 공동체 일원이 된 것 같은 소속감도 들었죠. 거기다 교우촌이라는, 말만 들어본 성스러운 곳을 직접 방문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버스는 출발했고 묵주기도를 봉헌하며 목적지를 향했습니다. 도착 후 성지를 둘러보고 미사를 봉헌할 때만 해도 ‘정말 잘 왔구나, 자주 와야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영혼이 정화되는 시간, 그때까지의 성지순례는 제게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늦은 점심과 함께 간단한 반주가 오갈 때에도 여행지에서 그럴 수 있다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버스 안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술자리는 성당에 돌아와서까지 이어졌습니다. 묵주기도 ‘한 단 더’를 봉헌하던 사람들이 초점 흐린 눈으로 ‘한 잔 더’를 외치는 모습은 솔직히 충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성당 어르신들은 ‘친교를 위한 뒤풀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하지만 무엇을 위한 친교인지 가늠하기 힘들었습니다. 오고가는 술잔 속에 친교를 쌓기 위한 것이 목적이라면 굳이 성지순례를 떠나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등산을 한다고 힘겹게 산 정상에 올라서는 만취 상태가 되어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과 성지순례 후의 모습이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 것은, 제가 예민해서 일까요?

주객전도. 첫 성지순례 후 제가 받은 느낌입니다. 성지를 방문하는 것이 주 목적이라면 경건한 시간들로 채워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하영(hythecreator@naver.com)

‘성지 순례’ 무엇을 위한 자리인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는 말, 나는 성지순례를 갈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갈 때는 다들 묵주를 들고 누구보다 열심히 기도를 한다. 그런데 성지를 등지고 떠나오면 마치 다른 사람들인 양 태도들이 돌변한다. 기도할 때에는 잘 들리지도 않던 목소리들이 커지고, 거칠 것 없이 남 욕도 하고 술을 권하는 자세도 강압적이다.

혼자 성지순례를 가봤는가? 오롯이 성지순례만이 목적인 발걸음을 끝내고 돌아오면, 돌아오는 그 길에 마음에 절로 영성이 차오른다. 순교자들의 목소리가 곁에서 들리는 듯한 그 느낌은 집에 가서도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하지만 본당에서 함께 성지순례를 다녀오면 그런 기분은 없다. 묵상을 깨부수려 작정한 듯 오가는 술잔과 거절에 대한 불편함이 있을 뿐이다. 과연 성지순례가 여행의 목적이기는 한 것일까? 그저 술자리를 갖기 위한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함께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정재훈(요한)

■ 네티즌 생각

· 모처럼 떠나는 성지순례인데…, 지나치지만 않다면 충분히 친교의 시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또한 공동체를 위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김 로사)

· 본연의 의미 잊어버린 성지순례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친교보다는 성지를 알아가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gogo4456@naver.com)

· 성지를 찾은 다른 신자들을 생각한다면 눈살 찌푸리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정민 카타리나)

· “친교의 시간을 가져도 된다, 안된다.” 논하기 앞서, 많은 신자들이 성지를 찾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말이면 백화점과 유명 쇼핑점은 차들로 꽉꽉 들어찬 반면, 전국에 유수히 많은 아름다운 성지를 찾는 우리는 과연 몇명이나 될지….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성지순례 다녀오면 좋겠습니다. (agnuesdei@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