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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성월 특집] 서울 성지순례길을 소개합니다

김진영 기자
입력일 2015-09-01 수정일 2015-09-01 발행일 2015-09-06 제 2960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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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에서 만나는 순교자들의 신앙 발자취
올해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복자의 첫 축일을 맞은 해이자, 성 김대건 신부 서품 170주년이다.

복자 주문모 신부를 기억하기 위해 중국에서 한국을 찾아온 순례자들도 있고, 먼 이국땅에서 순교한 자국의 성인들을 기억하고자 프랑스에서 찾아온 신자들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이후 해외에서 오는 순례자들이 늘었고, 지방에서도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와 관련된 성지를 찾아 순례하는 이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그냥 지나쳐버렸던 우리 근방의 성지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확인해보자.

명동주교좌성당

한국천주교 공동체 처음 탄생한 곳

지하 묘역에 아홉 순교자 유해 안치

한국천주교회의 상징인 서울대교구 명동주교좌성당.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한국천주교회의 상징이자 심장과 같은 명동주교좌성당은 미사가 없는 시간에도 늘 순례자들로 발길이 붐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와서 구경할 만큼 아름다운 건물 외형 외에도 아늑하고 엄숙한 분위기 역시 찾아온 이들에게 특별한 기억을 선사해준다.

1898년에 지어진 명동주교좌성당은 한국 천주교회가 완전한 신앙의 자유를 얻었음을 상징하는 장소로 한국 천주교회 공동체가 처음으로 탄생한 곳이다.

명동대성당의 지하 소성당 묘역은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시기 위해 설계 때부터 계획된 시설로, 각지에서 발굴된 순교자들의 유해가 1900년부터 옮겨져 안치됐다. 성당 지하에는 순교 성인 다섯 분과 순교자 네 분 등 모두 아홉 분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또한 명동주교좌성당은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성지이기도 하다. 1976년 3.1 민주 구국선언이 발표된 장소이자, 6월 항쟁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미사들이 봉헌됐고, 통일열사로 알려진 조성만 열사가 투신한 곳이기도 하다.

인근에는 1784년 말 신앙 집회가 열렸던 김범우의 집터와 북경에서 한국 최초로 영세하고 돌아온 이승훈 베드로의 집터, 수많은 순교자들이 잡혀가 순교한 좌포도청 터 등이 있다.

서소문 역사공원·순교성지

초기 대표 평신도 지도자 처형터

성인 44위, 복자 27위 순교한 곳

서소문 역사공원 내 순교자 현양탑. 성인 44위, 복자 27위가 순교한 현장이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으로 널리 알려진 서소문 역사공원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최창현 요한, 강완숙 골룸바 등 초기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평신도 지도자들이 순교한 장소이다. 이곳에서 103위의 성인 중 44위가 서소문에서 순교했고, 124위 복자 중 27위가 순교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근에는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선교사인 복자 주문모 신부가 첫 미사를 집전한 장소인 가회동성당을 비롯해 신앙선조들이 압송돼 문초와 모진 고문을 받았던 형조 터, 한국 천주교회의 마지막 순교자들을 탄생시킨 우포도청 터 등이 있다.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는 중림동약현본당에서 관할하고 있다. 성당 내에 있는 전시관에는 초기 한국 천주교회의 4대 박해 당시 순교한 신자들이 사용하던 교리서, 신심서적 등이 있고, 서소문 순교자인 강완숙의 가계도, 프랑스 선교사들의 문서류도 전시하고 있다.

새남터 순교성지

김대건 성인 등 성직자 11명 순교

기념관에 형구 체험실 등 마련

김대건 성인 등 성직자들이 대거 순교한 새남터 순교성지.

서소문 순교성지가 교회를 위해 목숨 바친 평신도들의 순교지라면 새남터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를 비롯한 성직자들의 순교터다. 새남터는 조선시대 초기부터 중죄인의 처형장으로 사용되던 곳으로, 1801년 신유박해 때 복자 주문모 신부가 순교한 뒤 기해·병오·병인박해를 거치며 김대건 성인을 비롯해 성직자 11명과 교회지도자 3명이 순교했다.

순교성지 새남터 기념성당 앞에는 주문모 신부의 흉상과 척화비가 있고, 바로 옆에 기념관 입구가 위치한다. 기념관에는 새남터에서 순교한 9위와 타 지역에서 순교한 5위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또한 형구 체험실과 영상실 등이 마련돼 있어 가족들이 함께 왔다면 들려볼만한 가치가 있다.

새남터 성지 인근에는 당고개 성지와 왜고개 성지가 위치해있고, 가까이에 한강 자전거도로와 용산구 공공자전거 대여소가 있어 자전거를 이용한 성지순례에도 용이하다.

당고개 순교성지·왜고개 성지

당고개, 세 번째로 많은 순교성인 배출

왜고개, 김대건 신부 매장됐던 곳

당고개 순교성지 성모자상. 어린 자식이 있는 세 어머니가 처형돼 이곳을 ‘어머니의 성지’라 부른다.

당고개 순교성지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많은 순교성인을 배출한 성지다. 1839년 기해박해의 막바지에 아직 남아 있는 교인 다수를 서소문 밖 네거리 광장에서 처형하기로 했다. 그러나 설 대목장을 앞둔 서소문 근처 상인들이 처형장소를 옮겨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따라 당고개가 처형장이 됐다. 이때 처형된 교인 가운데 어린 자식을 거느린 세 어머니가 있어 이곳을 ‘어머니의 성지’라 부르기도 한다.

성지 곳곳에는 성화작가 심순화(가타리나)씨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심 작가는 성지 전체 디자인과 세부 단장 등을 맡았고, 성지 전체에서 어머니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타 교구에서 당고개 성지를 찾아오는 경우, 서울 지하철 4호선 당고개역 근처라 생각하고 찾아가는 경우가 있지만 ‘당고개 순교성지’는 서울 용산구 신계동 용산전자상가와 구 용산구청 사이에 자리한다. 신계역사공원으로 검색하면 보다 쉽게 찾을 수 있다.

도심 한 가운데에서 조용히 기도하고 싶다면 왜고개 성지를 추천한다. 현재 국군중앙주교좌성당이 자리하고 있는 왜고개 성지는 와현, 와서현 또는 왜고개로 불리던 곳으로 기와와 벽돌을 공급하던 와서가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기록에 따르면 병오박해 때 순교한 성 김대건 신부가 이곳에 묻혔고, 박해가 진정된 뒤에 미리내로 이장됐다. 또한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 베르뇌 주교를 비롯한 일곱 분의 순교자가 33년간 묻힌 곳이자,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순교한 두 분의 성인이 43년 동안 매장됐던 유서 깊은 곳이다.

절두산 순교성지

수많은 선조들 참수된 데서 이름 유래

한국교회 발자취 볼 수 있는 자료 전시

절두산 순교성지 내 순교기념비. 절두산이란 이름은 수많은 신앙선조들이 목이 잘려 죽은 것에서 유래됐다.

‘절두산’은 수많은 신앙선조들이 ‘목이 잘려 죽은 곳’이라 불린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절두산기념관은 순례성당, 순교 성인 27위와 1위 무명 순교자의 성해를 모신 지하묘소, 한국교회 발자취를 볼 수 있는 자료와 유물 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한국인 최초의 주교이자 25년간 서울대교구장을 역임했던 노기남 대주교의 유품도 볼 수 있다.

병인박해 100주년 기념성당은 한국의 전통적인 미를 살리고자 설계됐고, 갓 모양의 지붕이 인상적이다. 성당 제대 아래 마련된 성인유해실은 한국순교성인들을 가장 많이 모시고 있는 곳으로 기해박해 순교자 9위, 병오박해 순교자 1위, 병인박해 순교자 17위의 순교성인들과 1위의 무명순교자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절두산순교성지에는 리델 주교가 쓴 「옥중기」를 토대로 조선시대 형벌들을 고증해 재현해 놓은 형구형틀 체험관이 있다. 의자형틀, 주릿대, 십자형틀, 곤, 추(나무수갑), 차꼬 등 다양한 형구들은 학생들에게 순교자들의 삶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함과 동시에 역사 공부에도 효과적이다.

김진영 기자 (nicolao@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