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쉽게 풀어쓰는 영신수련] (29) 사랑의 완성

유시찬 신부(예수회)
입력일 2015-07-14 수정일 2015-07-14 발행일 2015-07-19 제 2953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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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영신수련의 마지막 기도에 도달했습니다. 바로 ‘사랑을 얻기 위한 관상’입니다. 이것으로 우린 영신수련의 모든 여정을 갈무리하게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으며 그 사랑에 힘입어 우리 삶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 나가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은 깊고 넓어졌으며 섬세하고 예민해졌습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람을 비롯한 존재하는 모든 것들 안에서 그리고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 상황들 안에서 하느님이 계심과 하느님 친히 활동하고 계심을 읽어 들이고 알아듣는 것입니다. 마치 눈을 뜨고 있으니 저절로 사물이 보이고 귀를 열고 있으니 소리들이 자연스레 들리는 것과 같습니다. 굳이 용을 쓰고 애를 쓰며 노력하는 가운데 보고 듣는 것이 아닙니다. 절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처럼 절로 하느님이 감지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이 감지되는 가운데 하느님의 사랑을 깊게 알아듣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낳으셔서 지금껏 온갖 좋은 것들로 채우시며 보살피시고 구원해 주신 사랑을 보게 되며, 동물과 식물과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을 존재하게 하시며 그들을 완성시켜 나가시는 수고로움을 알아듣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참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움과 선함과 좋은 것들이 하나같이 위로부터, 하느님으로부터 내려오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하늘로부터 내려옵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지 않으면 우리는 단 한 가지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말할 것도 없고, 사물을 이해하는 힘도, 사람과 사물을 사랑하는 의지도, 새로운 것을 창작해내는 지혜도, 그 어떤 것도 하늘로부터 내려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들 안에서 하느님을 읽어 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숨 쉬는 것 안에서, 먹고 자는 것 안에서, 움직이며 공부하고 일하는 것 안에서 하느님을 뵙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내 것이라곤 하나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또한 그 모든 것을 다 가졌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 친히 우리 안에 계신 까닭입니다. 하느님 것이 모두 내 것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 당신 자신이 우리에게 당신의 것 모두를 내어 주셨고 우리는 참으로 부자가 되었기에 우리는 맘껏 방탕을 누리며 탐욕을 부리겠습니까. 오히려 하느님의 그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을 알아듣고 봤기에 우리 자신의 것이라고 감히 이름 붙여 놓은 그 모든 것들을 온전히 하느님께 되돌려 드리고자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에서 우리의 봉헌이 이뤄지지 않겠습니까. 성모님의 모형을 보며 불러 일으키기 시작했던 봉헌이 그리스도의 나라를 묵상하며 심화되었다가, 바로 이 지점에 와서 완성됩니다. 하여 우리의 자유와 기억과 지성과 의지를 포함한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리고 하느님 뜻대로 하시길 원하게 됩니다.

이 봉헌의 완성은 바로 우리 자신이 에고(자아)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음을 의미합니다. 나를 완전히 벗어 놓는 가운데 하느님과의 온전한 합일에 들어갔음을 의미합니다. 이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그동안 우리는 지난한 영적 투쟁을 벌여 왔던 것입니다. 좁쌀보다 작은 나를 놓아 버림으로써 우주보다 더 큰 전체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를 옭아매는 그 어떤 구속도 없습니다. 자유와 평화와 기쁨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이 모든 경지가 여러분에게 어떻게 다가옵니까? 영신수련의 전 과정을 마치면 절로 우리에게 이 경지가 주어지겠습니까? 오히려 아득함 앞에서 눈물 흘리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면 하느님 친히 우리를 팔에 안고 이 경지에로 들어 높여 올라가실 것입니다.

유시찬 신부(예수회)

1997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수원 말씀의 집 원장, 서강대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순천 예수회영성센터 피정지도 사제로 활동 중이다.

유시찬 신부(예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