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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봉헌생활] (7) 수도회 고유 카리스마

국춘심 수녀(성삼의 딸 수녀회)
입력일 2015-07-08 수정일 2015-07-08 발행일 2015-07-12 제 2952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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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 ‘해석과 식별’ 통해 오늘의 삶에 적용해야
각 수도회 고유 카리스마 시대 필요에 따른 성령의 선물
해석학적-영적 연구 통해 오늘날 보편적 선익에 기여해야
은사에 따른 쇄신 궁극 목적 세상·인간에 대한 사랑
자기 자신 아닌 타인 위한 사랑과 구원 도구로 살아야
“은사는 증류수병이 아니다”

“은사(카리스마)는 증류수를 담는 병이 아닙니다. 은사는 문화적으로 다시 읽어내면서 힘차게 살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서 실수를 저지르고, 오류를 범할 위험이 있지요. 위험합니다.… 우리는 늘 실수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를 멈추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다가 더 큰 오류를 범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은사를 장소와 시대와 사람들에 따라” 살아가면서 인류와 교회의 삶 안에서 토착화해야 함을 강조하고자 교종 프란치스코가 2013년 11월 세계남자 수도회 총장들에게 한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말은 요한 바오로 2세의 권고 「봉헌 생활」 37항에서 “창의적 충실성”이라는 제목으로 권위있게 말해진 “역동적 충실성”이라는 표현의 해설쯤 되겠다. 프란치스코는 계속해서 말한다. “은사를 토착화한다는 것은 근본적이며, 이는 결코 은사를 상대화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은사를 경직되고 획일적인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문화를 획일화할 때, 우리는 은사를 죽입니다.” 은사가 무엇이기에 죽이고 살리고 하는 것일까? 축성생활 단체의 여러 형태 중 수도회의 은사에 한하여 살펴보자.

은사, 세상과 교회의 필요에 대한 성령의 응답

수도생활 쇄신 교령(Perfectae Caritatis) 2항에 따르면 수도회의 창립은사는 수도회가 쇄신을 위해 복음의 그리스도 다음으로 돌아가야 할 원천이다. 수도생활에 관한 공의회 이후 교회의 가르침은 모든 수도회가 자신의 은사를, 곧 수도회의 성격, 목적, 영적 유산, 건전한 전통을 분명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일관되게 가르친다.

사도 바오로는 그의 서간들(특히 1코린 14장)에서 은사를 체계화하고 명료화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이 주제를 깊이 논의하였지만 수도생활과 관련해서는 명시적으로 ‘은사’라는 용어가 나타나지 않는다. 바오로 6세는 1969년 교도권 차원에서 처음으로 “창립자의 은사”라는 용어를 도입하였고, 교도권 문헌에서는 처음으로 1971년 교종 권고 「복음의 증거」에 “창립자의 은사”라는 말과 “수도회의 은사”라는 말이 쓰였다. 이후 ‘창립자의 은사’, ‘창립은사’, ‘수도회의 은사’ 등의 표현들이 교종 연설과 공적 문서에서 쓰이기 시작하며, 요한 바오로 2세는 「봉헌 생활」에서 은사 관련 용어를 150번 이상 사용하면서 창립은사에 대한 창의적 충실성을 강조한다.

‘은사’의 바오로적 의미는 교회의 공동 유익을 위하여 신앙인에게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베푸시는 성령의 선물’로, 수도회에 적용할 경우 대체로 세 가지로 말해진다.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 수도회를 세우시고자 창립자에게 주시는 성령의 선물로서, 창립자의 성령 체험을 가리키는 ‘창립자의 은사’, 창립자와 첫 제자들에게 주어진 영적 선물의 총체를 가리키는 ‘창립은사’, 이것이 그 제자들에게 전해져 교회와 조화를 이루며 역사를 통해 그들에 의해 살아지고, 심화되고, 발전해 온 내용인 ‘수도회의 은사’ 가 그것이다. 이 셋은 밀접히 연결되면서도 엄밀하게는 구별된다.

수도회의 은사는 그 회의 존재 목적, 사명, 영성, 정신 모두를 포함하는 복합적인 개념으로서 그 수도회가 복음을 사는 나름의 방법이요, ‘공동체의 삶의 총체적 계획’이다. 이 은사는 세월이 가면서 창립 당시의 모습과는 아주 달리 표현될 수 있다. 이 둘 사이에는 씨앗과 나무의 관계처럼 본질적인 연속성이 있는 것은 물론이다. 씨앗 안에 나무가 들어 있지만 씨앗 자체에서 나무를 발견할 수는 없다. 창립자의 은사 안에 수도회의 은사가 들어 있지만 역사 안의 여러 상황에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발전하고 표현되는 것이다. 수도회의 은사는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여러 상황에서, 다양한 문화 안에서 살고 체험한 창립자의 은사, 곧 창립자 은사의 집단적 체험이다.

창립은사는 세상과 교회의 필요에 대한 성령의 응답이요 창립자는 성령의 도구이다. 로마제국이 이민족의 침입으로 무너지면서 교회가 위기에 처하고 유럽이 민족 간의 갈등으로 고통 받을 때, 성 베네딕토를 일으키시어 여러 민족 출신의 수도자들을 수도원에 받아들임으로써 민족 간 갈등을 극복하고 유럽 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증진하면서 교회를 구하신 분은 성령이시다. 프로테스탄트 개혁으로 사람들이 가톨릭교회와 교종을 떠날 때 이냐시오에게 이 둘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게 하신 분은 성령이시다. 산업혁명으로 기존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경제가치가 강조되며 시골에서 도시로 온 많은 청소년들이 사회문제가 되었을 때 돈 보스코를 일으키신 분은 성령이시다.

지난 2월 2일 봉헌생활의 날을 맞아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된 미사에서 수도자들이 촛불을 들고 입장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은사는 장소와 시대와 사람들에 따라 살아가면서 인류와 교회의 삶 안에서 토착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NS 자료사진】

은사는 무덤이 아니라 요람: 오늘을 위한 해석학적 연구

역사 안에서 창립 은사의 제도화는 필연적인 과정으로서 이는 공동체가 실제로 살고 있는 은사의 근본적 내용을 구조로 옮기는 중요한 과정이지만 한편으로는 여러 형태로 은사가 변질될 위험이 따라온다.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창립 은사’의 정확한 해석모델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공의회 이후 창립은사와 그 ‘발전’의 식별과 해석에 대한 논의가 여러 수도회 안에 일어났는데, 세 가지 접근방식이 대표적이다.

먼저 창립자와 첫 세대의 삶과 활동을 모델로 삼아 미래의 세대에 전해주려고 하는 ‘근본주의적-역사적 접근’으로서 창립자와 그의 초기 추종자들의 역사적·우연적 요소를 절대화하고 영구화하려 한다. 그 결과는 창립은사의 박제화로서 이는 은사를 “증류수 병”으로 만드는 보수적 전통주의라 하겠다. 반대로 현재의 삶과 사명에서 출발하는 ‘체험적 접근방식’에서는 회원들의 현실적 소망, 기대, 동기들, 특별히 교회와 인류의 필요가 강조되어 심하면 창립자 및 과거와의 결별이 될 수도 있다. 곧 시대정신을 절대화하여, 수도회의 정체성을 상실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교종 프란치스코가 말하는 은사의 토착화를 가능케 하는 세 번째 방식은 창립자의 성령체험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하여 몇 단계를 거치는 ‘해석학적-영적 접근방식’이다. 이는 창립자와 초기회원들의 체험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통해 그 시대를 넘어서는 창립자의 의도와 선택을 규명한 후 당시의 문화적 구조로부터 그것들을 분리시켜 현재에 실현하는 일련의 역동적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는 해석과 식별이 기본적인 요소이며, 각 세대 회원들의 노력과 연구가 필수적이다. 해석학적 연구는 오늘을 위한 은사연구이다.

은사는 무덤이 아니라 요람이다. 곧 은사연구는 역사적 기원을 알고 나서 거기 머물러 죽자는 것이 아니며, 우리로 하여금 오늘을, 미래를 향하게 하는 연구여야 한다. 은사는 그것을 사는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고 발전한다. 아기 손이 귀엽고 예쁘다고 해서 성장하지 못하도록 묶어 놓을 수는 없다. 몸이 크면서 손도 커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손가락이 다섯 개인 것이 변하지는 않는다. 시어진 포도주는 새 포도주로 바뀌어야지 사과쥬스로 바뀌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각 세대가 수도회를 쇄신할 때 모든 것을 바꾸어 갈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도 해석학적 연구가 필요하다.

수도회의 은사는 교회의 한 부분이며, 이를 해석하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교회정신’이 우선이다. 한국에서 지난 삼십여 년의 쇄신작업에 대한 성찰에서 늘 한국사회와 교회의 필요에 따른 사도직을 하는 수도회들의 은사적 고유성의 결핍을 지적해 왔다. 그러나 수도회의 은사적 고유성은 늘 시대상황에 따른 사회와 교회의 필요를 위해 성령께서 주신 선물이다. 이 선물은 사회와 교회의 보편적 선익을 위한 것이지 수도회의 우월성이나 개성을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다.

은사에 충실하려면 창립자를 떠나라?

지리산 천왕봉에 가려는 등산객이 천왕봉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보고 감동하여 그것을 끌어안고 거기 머물러 버린다면 천왕봉에 도착하지 못한다. 그 표지판을 떠나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야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다. 창립자는 그 표지판이요, ‘목적지는 그리스도 추종, 복음을 철저히 살기’이다. 또 창립자는 달이 아니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곧 수도자들은 창립자를 따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인 것이다.

결국 은사 연구의 본질적인 두 순간은 ‘접근하기-멀어지기’의 변증법이다. 창립자의 은사를 알았는가? 그럼 그것을 미련 없이 떠나라. 창립자가 가리키는 길로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오늘의 현실에서 복음을 살고 전하기 위해! “수도생활의 근본적 규범은 복음에 제시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수도생활 교령 2)이기 때문이다. 창립자는 복음의 실존적 주석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세상을 향한 개방성이 필요하다. 수도회의 은사는 세상의 생명과 구원을 위해 주어진 것이며 은사에 따른 쇄신의 궁극적이고 유일한 목적은 세상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평신도들이 수도회의 은사에 참여하는 길은 다양하다. 제3회의 형식으로 직접 그 은사를 살아갈 수도 있고 협력자로서, 여러 형태의 후원자로서 간접적인 참여의 길도 열려 있다. 수도회의 은사만이 아니라 개인과 단체가 받은 모든 은사는 교회 전체의 선익과 사명을 위한 것임을 기억하고, 존중하고 보호하며 무엇보다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한 사랑과 구원의 도구’로 살아져야 한다.

국춘심 수녀는 로마 그레고리오대학에서 교의신학 석사 학위, 글라레띠아눔에서 축성생활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국춘심 수녀(성삼의 딸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