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박준양 신부 특별기고] 아시아교회의 현재와 미래

박준양 신부
입력일 2015-06-02 수정일 2015-06-02 발행일 2015-06-07 제 2947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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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주민 문제 고려한 새로운 복음화 필요
쇄신 과제 안은 세계교회 역동적인 아시아에 주목
교황 방문 후 기대 커져
경제적 양극화로 인한 인간 존엄성 훼손 심각
빈곤 문제로 난민 발생
고통 피하려 인신매매도
아시아인이 겪는 고통에 기도와 관심 모아져야
이주민 위한 배려는 교회적 친교 계기 될 것
2014~2015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스리랑카, 필리핀 등 아시아 방문이 있었다.

아시아의 대표적 교회지도자로 알려진 필리핀의 마닐라대교구장 루이스 타글레 추기경은 지난 3월 세계교회 기구인 가톨릭성서연합(CBF) 신임의장으로, 또 5월에는 국제 카리타스 신임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이제 세계교회 안에서 아시아교회의 비중과 역할이 점점 증대된다.

지난 5월 태국 방콕대교구 사목연수센터에서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가 주최하고 FABC 신학위원회가 주관한 제5차 신학 컨퍼런스에 FABC 전문신학위원의 자격으로 다녀온 박준양 신부에게 아시아교회의 현재와 미래 전망에 대해 들어본다.

세계교회는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출 이후 변화의 흐름 속에 있다. 그동안 여러 문제들로 인해 차가운 시선으로 교회를 바라보던 사람들도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인해 가톨릭교회의 역할에 대해 새로운 기대를 걸게 되었다. 세계교회가 내적 쇄신과 새 복음화의 사명이라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한 상황에서, 그 잠재적 역동성으로 인해 아시아교회의 역할이 주목되기에 이른다. 필리핀의 타글레 추기경은 그 상징적 인물로 세계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 이제 아시아교회의 현재와 미래의 전망에 대한 성찰이 보다 깊게 이루어져야 할 때이다.

아시아 대륙의 고유성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 권고 「아시아 교회」(1999)가 말하듯이, 아시아는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거주하는 가장 큰 대륙이며, “고대 문화와 종교 그리고 고대 전통들의 계승자들인 그 민족들의 다양성”, 즉 “인류 가족의 유산과 역사의 본질적 부분을 구성하는 수많은 문화, 언어, 믿음과 전통들의 서로 혼합되고 어우러진 복합성”(6항)을 그 주요 특성으로 드러낸다. 또한 경제사회적 현실에서도 아시아 대륙은 다양한 복합성을 지닌다. 동북아시아처럼 고도의 경제 발전을 이룩한 나라들이 있는 반면에, 여전히 절망적 가난의 상태에 머무는 나라들도 있다. 그런데 한 나라 안에서나 아시아 전체적으로 볼 때나 심각한 경제적 양극화를 통한 인간 소외 현상이 발견된다. 나아가, 경제 개발 과정에서 물질주의와 세속주의가 확산되며 아시아의 전통적인 사회, 문화, 종교적 가치들을 손상시킨다(7항 참조). 이처럼 다층적이며 복합적인 아시아의 맥락에서 새 복음화의 사명을 수행할 때, 우리는 복음의 씨앗이 자라게 될 아시아적 토양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 복합적인 종교문화성뿐 아니라 구체적 삶의 현실에서도 서구교회의 시각과는 다른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정의 위기라는 현상을 두고서 전혀 다른 근원을 보게 된다. 2014년 10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임시총회에서 타글레 추기경은 현대 가정의 위기, 즉 가족들이 헤어지는 현상이 서구에서는 서로 사랑하지 않기에 발생하지만, 아시아에서는 오히려 서로 사랑하기에 발생한다고 말해서 서구 언론을 놀라게 했다. 사실,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가난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겨두고 돈벌이를 위해 한국, 일본으로 건너오는 이주민들이 많다. 한국에서도 조기유학을 위해 가족들이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과정 속에 문제가 생기고 가정의 위기가 찾아오기도 하지만, 애당초 그들은 자녀에 대한 사랑 때문에 서로 헤어져 살게 된 것이다.

한편,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인신매매의 경우에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 아시아 카리타스 의장이자 일본 카리타스 의장인 니가타교구장 이사오 키쿠치 주교에 따르면, 현재 아시아 카리타스는 아시아 전역의 인신매매에 대항해 싸우지만 역부족이다. 불법 이주의 과정에서 인신매매의 희생자들이 다수 발생하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해상 강제노역을 위해, 여성들은 성매매를 위해, 그리고 아동들은 소아성애자들을 위해 혹은 인체장기 적출을 위한 노예로 전락되어 착취된다. 서구의 인신매매는 납치에 의한 것이지만, 아시아 일부에서는 극심한 빈곤 때문에 어차피 기아와 병고로 죽을 것이 예상되기에 자의반타의반으로 아동들이 매매되기도 한다. 가난을 악용하는 범죄조직들이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난과 복합적 종교성이란 측면에서 서구와는 다른 아시아적 상황 속에서, 우리는 아시아 고유의 새 복음화 전망을 수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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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새 복음화의 전망

현재 서구 지중해 연안에는 목숨을 건 아프리카 난민들의 유입이 계속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방문지는 이탈리아 남단 람페두사 섬이었는데, 이는 지중해를 건너온 아프리카 난민들을 수용하는 곳이다. 그런데 현재 아시아 말레이 반도 좌측의 안다만 해에서도 2만여 명의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난민들이 죽음의 항해를 하고 있다. 그들은 극심한 빈곤과 종교적 탄압으로 인해 동남아시아 행을 꿈꾸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주변국들의 정책 때문에 해상 표류 중인 것이다. 이러한 이주민의 발생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며,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뒤에 있는 빈곤과 양극화의 근원적 문제를 보아야 한다.

신앙의 눈으로 이를 바라본다면,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 8,20 루카 9,58) 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주민들의 아픔을 참으로 잘 아실 것이라 믿는다. 공생활 동안 예수님 스스로 이주민처럼 이곳저곳 다니며 사셨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천상 예루살렘을 향해 이 세상에서 ‘잠시 여행하며 지나가는 이주민’(homo viator)이다. 또 FABC 신학위원회 의장인 타글레 추기경의 말처럼, 오늘날 디지털화된 세상 안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digital native kids)에 비하면, 기성세대는 새로운 과학기술 현실에 적응 못하는, 디지털 세계의 이주민(digital migrants)이다. 내가 다른 곳으로 떠난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세상 자체가 바뀌면서 이방인이 된 것이다.

나자렛 예수님의 집은 어디인가? 그 마음과 사명 안에서 진정한 집이 발견된다. 하느님 나라가 곧 그분의 위격과 사명 안에서 실현되기 때문이다. 그 집(예수성심) 안에서는 어떤 사람도 이방인이 아니며,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하며 허덕이는 사람들이 모두 안식을 얻는다(마태 11,28-29 참조). 그러기에 교회는 이주민을 비롯해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환대의 집, 「복음의 기쁨」이 말하듯 “언제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아버지의 집”(47항)이 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방인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으니, 이방인의 심정을 알지 않느냐?”(탈출 23,9)는 성경 말씀에 귀기울여야 한다. 따라서 이주민의 현상을 골치 아픈 문제로만 간주하지 말고 하나의 선물로 받아들여야 한다. 더 이상 ‘보내는 교회’와 ‘받는 교회’를 엄격히 구분하지 말아야 한다. 이주민에 대한 교회의 사목적 배려는 일방적 시혜가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교회적 친교와 나눔의 계기가 되며, 이를 통해 성령의 신비로운 활동과 그 아름다운 열매들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가 아시아의 새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고 투신해야 한다. 아시아인들의 꿈과 희망, 또 그 고통과 절망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특히, 인간 존엄성의 훼손으로 울며 탄식하는 아시아 하느님 백성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시아의 종교성은 새 복음화 작업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아시아의 모든 믿는 이들이 인간 존엄성의 회복을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해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안에서 이루지는 진정한 인간 존엄성의 실현을 우리는 힘차게 선포하고 증언할 것이다.

박준양 신부

{{img2}}1992년 사제로 서품, 로마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교의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로 봉직하고 있으며,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총무,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전문신학위원,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박준양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