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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원 신부 - 향적 스님, 부처님 오신 날 기념 대담

이지연 기자 (mary@catimes.kr),오혜민 기자
입력일 2015-05-19 수정일 2015-05-19 발행일 2015-05-24 제 2945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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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 실현, 이웃에 어머니 같은 사랑 베푸는 것”
“이웃 종교 배울수록 자신의 종교 본질에 접근”
“자비 실천 방법은 이웃과 우정 나누고 눈높이 맞춰 사는 것”
“배려는 자비의 다른 이름. 세월호 참사, 배려 사라진 한국사회 그늘진 단면”
“모든 이 구원 강조하는 대승불교 가르침 그리스도교와 일치”
“용서 없이 미래도 없어. 서로에게 용서 구하는 일 종교인들 앞장서야 할 때”
가야산 해인사에 출가, 교를 배우고 선을 참구했다. 월간지 「해인」을 창간하고 초대 편집장을 지낸 후, 프랑스 가톨릭 수도원 삐에르-끼-비에서 불교와의 수행방법을 비교하고 돌아와 저서 「프랑스 수도원의 고행」을 발간했다. 이후 조계종 교육원 초대 교육부장직을 수행하면서 승가 교육을 체계화했다. 해인사 성보박물관 초대 관장을 맡았고, 조계종 기관지 ‘불교신문’ 사장을 역임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을 지냈으며, 현재 해인사 지족암에서 주석하고 있다. 최근 「깨달음에는 국경이 없다」 프랑스어판을 출간하고 프랑스에서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1953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출생, 의사가 되기 위해 프랑스 보르도로 떠나 의학을 공부하던 중 1979년 예수회에 입회했다. 1985년 한국에 파견됐고 1992년 프랑스 파리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깊었던 서 신부는 한국불교를 탐구했고, 2004년 프랑스 파리 7-드니 디드로 대학교 동양학과에서 「퇴옹성철 선사의 생애 및 전서」 주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5년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래 ‘불교의 이해’ ‘불교 강독’ ‘선불교 입문’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등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저서 「가야산 호랑이의 체취를 맡았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사제는 불교를 탐구했고, 스님은 수도원에 갔다.

석가탄신일을 맞은 5월의 어느 봄날, 다른 듯하지만 서로를 꼭 빼닮은 사제와 스님이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마주 앉았다. 서명원 신부(Bernard Senecal, 예수회)와 향적 스님(香寂, 해인사 지족암)이 벗으로 지내온 지도 20여 년. 서로의 종교를 경험하니 자신의 종교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졌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마주한 이 자리가 더없이 소중한 이유다.

향적 스님과 서명원 신부가 손을 맞잡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

▲향적 스님 :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자비의 희년’을 선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교황께서는 지금 이 시대에 자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비를 아무나 실천할 수 없는 추상적 개념이라고 여깁니다. 수도자나 성직자들만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죠. 하지만 그 의미를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자비(慈悲)는 ‘마이트리-카루나’라고 합니다. 이 말은 벗, 친구, 우정, 진실함, 비폭력 등을 뜻합니다. 정리하자면, 우정을 나누고, 선행을 베풀고, 비폭력적이고, 비공격적인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자비’를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비는 상대방과 거리를 두고서는 결코 실천할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를 교화하기 위해서는 어린아이가 돼야 하고, 재소자들을 교화하려면 재소자들과 눈높이를 맞춰야 합니다. 이것이 불교에서 바라보는 자비입니다.

△서명원 신부(이하 서 신부) : 자비는 현실의 본질입니다. 현실 자체가 순수한 자비라는 의미입니다. 티베트 불교 경전 「사자(死者)의 서(書)」를 읽어보면, 사람은 죽은 후 49일 동안 자기 현실을 직면하고 깨달음을 얻는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생전에 열심히 살았던 만큼 깨달음을 성취하고, 수행이 부족하면 그 깨달음을 얻을 수 없지만 현실의 본질인 자비는 수행이 부족했던 이들조차 끝까지 구원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49재에 관한 부분은 가톨릭의 ‘연옥’ 의미와도 비슷합니다. 연옥에 머무는 이들은 자신의 죄업이 얼마나 큰지 느끼고 주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향적 스님 : 흔히 불교를 ‘자비의 종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자비는 모든 고등 종교의 근본이고, 인류를 성장시키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자비심으로 45년간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설법을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몸소 자비가 종교의 본질이자 깨달음이고 구원이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혼자 구원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나와 상대를 하나의 몸처럼 여기는 ‘동체대비’(同體大悲)가 필요합니다. 어머니가 조건 없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처럼 이웃에게 차별 없는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우리가 자비를 실천할 때, 이 사회가 지탱될 수 있습니다. 저는 자비를, 길을 잃은 등산객들의 길잡이가 돼 주는 북극성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는 ‘자비’라는 별을 바라보며 살아가려고 노력해야합니다.

△서 신부 : 스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대승불교는 인류 모두가 열반에 들어야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잃어버린 양의 비유’를 통해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한 마리의 양을 포기하고 아흔아홉 마리의 양떼를 돌볼 거예요. 그런데 그리스도교는 잃어버린 양이 양떼보다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한 마리를 찾지 못한다면, 나머지 양들이 외양간에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가도 의미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피조물을 하나라도 잃고 싶어 하지 않으십니다. 마치 죄지은 자식이라도 끝까지 사랑하는 부모와 같은 마음을 갖고 계십니다. 불교에서는 중생이 지옥에 가면 오래 머물기는 하지만 영원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저는 지옥에 가도 거기에 아무도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창조주께서는 자신의 피조물이 하나라도 지옥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향적 스님 : 자비의 또 다른 이름은 ‘배려’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배려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세월호 참사’도 그런 배경에서 터져 나온 우리 사회의 그늘진 단면입니다. 수명을 다한 배의 운행 기간 연장을 허가하고, 객실증축을 위해 개조하고, 화물을 더 많이 싣기 위해 위법을 하는 등 한국의 문제들을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일차적으로 정부와 관료들에게 책임이 있지만, 우리 모두가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선진국은 그저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강한 나라가 아닙니다. 제가 프랑스에서 생활하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그들의 ‘감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저녁식사를 할 때, 어머니가 자녀의 접시에 음식을 덜어주면 아이는 매번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사회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제2의 세월호 참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법을 강화하기 전에 먼저 이웃을 배려하는 기본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 신부 : 세월호 참사가 있고 얼마 후에 제 사무실로 한 학생이 찾아와서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추천서를 작성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학생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추천서를 쓰더라도 이건 진짜일 수 없다”면서 반려했고, 재차 부탁하는 학생과 30분 넘게 실랑이를 벌여야 했습니다. 제가 전혀 모르는 학생을 추천하고, 그 학생이 의학대학원에 들어가서 추천한 수준을 맞추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같은 맥락에서 세월호 참사는 한 사람이 잘못을 했다고 벌어진 사고가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일을 소홀히 했고 모두가 조금씩 잘못했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잘못됐다고 사회를 지적하기 전에 스스로를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향적 스님 : 미국인 지인이 한국에서 운전면허증을 따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데, 막상 실전에서는 그때 배운 내용에 따라 운전하는 사람들을 보기 힘들다고 지적하더군요. 법적으로 이륜차를 인도에서 탈 수 없는데 버젓이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이 있고, 깜박이 신호를 켜지 않고 끼어드는 운전자들도 많습니다.

준법정신과 올바른 가치관 확립이 필요할 것 같아요. 자기중심주의와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배려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줍니다.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이 과연 종교인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습니다. 우리 모두가 책임지고, 반성해야 합니다. 제2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노력하고 의식을 바꿔야 합니다.

△서 신부 : 종교인들이 본보기가 되고, 더 좋은 사람들이 돼야 합니다. 먼저 제 자신부터 변화돼야 겠지요.

종교의 핵심은 ‘구도’에 있습니다. 즉, 온 정신, 온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한다는 말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려면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지만요.

▲향적 스님 : 말로만 “이렇게 해야 해, 저렇게 해야 해”라고 해서는 사람들에게 와 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성철 스님 등 80~90년대 종교 지도자들은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되셨습니다. 삶으로 직접 ‘자비’를 보여주신 분들이었죠.

프랑스 아베 피에르(Abbe Pierre, Henri Marie Joseph Groues) 신부님이 떠오릅니다. 피에르 신부님은 쓰레기장에 천막을 치고 미사를 봉헌하셨던 분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넝마주이가 찾아와 ‘추위 때문에 아이가 얼어 죽었는데 천막에서 기도를 하면 뭐하냐’고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이후 피에르 신부님은 혼자 미사하고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위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방송국으로 가서 무주택자들의 아픔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전 국민들에게 호소했습니다. 이때부터 프랑스 사람들은 피에르 신부님을 정신적 지주로 여겼습니다. 신부님께서 몸소 실천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서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종교인들이 몸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누군가를 탓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서 신부 : 저를 비롯한 모두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과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용서 없이는 미래도 없습니다. 더 이상 우리 가족들이 허무하게 죽어서는 안 됩니다. 이 사건을 통해 배우고 변화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얼마 전 낙태한 여성과 의사, 간호사 등을 용서해야 한다고 권고하셨습니다. 자비로운 현실은 인류를 살리기 위해 애씁니다. 인간들을 탓하거나 벌을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서로에게 용서를 베풀어야 합니다. ‘화해’는 진정한 자비의 실현입니다.

▲향적 스님 : 요즘은 참 종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되새기는 시기입니다. 예전에 종교가 담당했던 일들을 이제 정부나 민간단체들이 맡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과연 종교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저는 죽음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은 그 사람의 삶을 보여줍니다. 수많은 스님들이 그랬고, 가톨릭의 성인들이 그랬습니다.

△서 신부 :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다음, 인류는 고통과 죽음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종교가 죽음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함으로써 모든 이들이 부활의 희망에 입각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죽음의 문제는 정치인, 경제인, 과학자를 비롯한 모든 인류의 문제입니다. 종교학과 학자로서 이를 바탕으로 사회 모든 분야를 일깨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향적 스님 : 신부님과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가톨릭과 불교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프랑스의 가톨릭 수도원 삐에르-끼-비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것은 십자가가 있어 사찰과 다를 뿐, 스님들과 수도자들의 생활이 똑같았다는 점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이념과 사상이 집약돼 있는 전례 의식에 대해서도 감명 받았습니다. 제게 가톨릭 수도원 체험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하나 갖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직접 보고 느낀 가톨릭의 장점들은 제 불교적 수행과 포교에 많은 참고가 되고 있습니다. 타인의 종교에 존경을 표하는 것이 곧 자신의 종교에도 경의를 표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서 신부 : 향적 스님께서 말씀하신 바처럼 이웃종교에 대해 배울수록 자신의 종교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저는 불교와 석가세존을 사랑합니다. 그 사랑은 계속 깊어집니다. 그러면서 제 삶과 신앙의 본보기이신 예수님을 오롯하게 바라봅니다. 25년 넘게 불자들과 만나면서 수도자로서의 제 삶은 더욱 풍요로워졌습니다.

향적 스님과 서명원 신부가 ‘자비’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번 대담을 위해 흔쾌히 장소를 마련해준 서울 봉은사 주지 원학 스님과 관계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이지연 기자 (mary@catimes.kr),오혜민 기자 (oh0311@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