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현대의 봉헌생활 (5) 한국의 수도회

이지연 기자
입력일 2015-05-12 수정일 2015-05-12 발행일 2015-05-17 제 2944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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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요청 응답하며 끊임없이 고유 카리스마에 집중
1888년 첫 진출… 현재 168개 회 활동
복지·교육 등 매진하며 교회 발전에 기여
“수도성소 위기, 교구·신자와 함께 극복을”   
지난 세월의 흐름을 알지 못하면 미래의 방향을 잡을 수 없다. 한국의 수도회들은 사회와 교회 안에서 시대적 요청에 응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했고, 가톨릭의 보화인 영성을 사람들과 나눴다. 하지만 현재 수도회들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수도자들은 고령화되고 성소자들은 줄어들고 있다.

이번 시간에는 한국 수도회의 과거를 되짚어보고, 현재를 파악하고, 미래를 전망해 본다.

과거와 현재

한국교회 수도회 역사는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대목구가 설정된 1831년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파견됐다. 1888년에는 조선교구장 블랑 주교의 요청으로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가 여자 수도회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에 진출했고,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1909년 서울 혜화동에 자리를 잡았다.

1930년대부터는 한국인 수도회가 설립되기 시작했다. 1932년에는 첫 번째 한국인 여자 수도회인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가 탄생했고, 최초의 한국인 남자 수도회인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는 1953년에 세워졌다. 이후 수도 공동체는 한국교회 성장과 함께했다. 특히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 전후로 수많은 수도회가 한국에 진출하거나 설립됐다. 현재 한국교회 내 수도회 중 85% 이상이 이 시기에 진출 혹은 설립됐다.

발전을 거듭해온 한국 수도회는 2014년 현재 남녀 통틀어 168개다. 주교회의가 발표한 「한국 천주교회 통계 2014」에 따르면 남자 수도회 47개, 여자 수도회 121개로 집계됐다. 수도자는 총 1만1734명으로 남자 1574명, 여자 1만160명이다.

수도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선교 사목 분야는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남자 수도회는 사회복지기관 23.1%, 전교활동 16.0%, 교회기관 14.1%, 교육기관 11.9%로 나타났다. 여자 수도회는 전교활동 32.4%, 사회복지기관 24.1%, 교육기관 10.7%, 의료기관 9.4% 순으로 조사됐다.

수도회의 성장은 통계뿐 아니라 대외적인 활동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세계여자수도회총원장연합회(UISG)에 1973년 성가소비녀회,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인보성체수도회, 예수성심시녀회,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등 5개 수도회가 1973년 가입했고, 현재는 21개 한국인 수도회가 활동하고 있다. UISG는 사도직 활동을 하는 여자수도회와 사도적생활단 총장으로 구성돼 있다. 수도회 간의 협조를 도모하고 수도생활을 증진시키면서 쇄신을 지속하기 위해 정보를 교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세계적인 모임이다. 이러한 모임에 한국인 수도회가 소속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국교회 수도회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사회·교회 요청에 응답

수도 공동체들은 사회와 교회의 요청에 응답하기 위해 투신해왔다. 전쟁 직후에는 폐허가 된 사회를 복구하는 것에 집중한 수도회들은 일차적으로 교육, 의료사업, 빈민구제, 사회복지사업 등에 매진했다. 70~80년대에는 정의와 평화를 위해 앞장섰고, 특히 수 십 년 동안 사회복지 분야에 투신해 한국사회가 가톨릭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본당에서도 수도자들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사제가 부족하던 시절에 수녀들이 본당에서 교리교육과 전교 등 분야에서 활동했고, 교회의 어머니로서 신자들을 포용하고 돌봤다. 덕분에 신자들은 교회에 쉽게 다가올 수 있었고 교회 역시 조금씩 체계를 갖춰갔다.

하지만 시대와 교회가 발전하면서 수도회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사회는 사회복지 시스템과 인적·물적 자원을 확보해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 교회 역시 사제와 평신도 수가 늘어나면서 수도자들이 그동안 해 왔던 역할을 대체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제 수도회는 시대의 새로운 요청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문제는 수도회들이 카리스마를 정립하기도 전에 특정 분야에 집중한 탓에 카리스마 식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 성가소비녀회,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등 한국인 수도회들은 1980년대 말 카리스마 식별 세미나를 열고 각 수도회의 카리스마를 찾는 작업을 진행했다. 또한 교황청립 수도회들은 본연의 카리스마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한국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는 1997년 「본당 사도직 여성수도자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하고, 장기적으로 수도회가 나아갈 방향을 전망하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혜영 수녀(성심수녀회)는 “과거에는 수도회들이 카리스마를 생각할 틈 없이 필요에 응답해야하는 상황이었다”면서 “당시로서는 수도회들이 최선을 다했고 시대적 환경이 바뀐 것을 자책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다만 쇄신 노력을 기울이는 수도회가 일부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고 전했다. 각 수도회가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쇄신을 하지 못한다면 서양의 수도회와 마찬가지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축성생활 성소자들이 줄어들었고, 수도자들의 고령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됐다. 이에 따라 한국교회 수도회가 유럽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박문수 박사(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부원장)는 “한국 수도회는 현재 미래를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면서 “수도회들이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는 고민과 노력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수도회 간 흡수, 통합 또는 제3세계 진출을 시도하는 유럽 수도회와 비슷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수도회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봉헌생활의 해를 선포하면서 세 가지 목적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지난 세월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억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희망으로 미래를 끌어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희망으로 현재를 열정적으로 살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합적으로 살펴보는 봉헌생활의 해 동안 한국 수도회들은 이 시대 축성생활의 의미와 역할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최 수녀는 “한국의 수도회들은 역사가 짧은 편인데 그동안이 적응 단계였다면 이제는 뿌리를 내리는 시기”라며 “한국 토양에 맞는 축성생활이 무엇인지, 이 시대에 수도자들이 꼭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들이 바탕이 됐을 때, 한국 수도회가 가톨릭 영성의 보화로서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수도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천주교회 통계 2014」만 보더라도 10년 전에 비해 수련자의 절대 수치가 급감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처음에는 여자 수도성소가 줄어들고 다음에는 남자 수도자가 감소된다. 이 추세는 멈추지 않고 교구 사제성소와 신자 감소로까지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교회가 위기 상황에 직면한 수도회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기도 하다. 교구는 수도회와 공존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하고, 신자들은 영성의 보화인 수도회가 지속될 수 있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박 박사는 “미국의 경우 주교회의에서 수도회를 위한 펀드를 운영하고 있다”며 “교구와 수도회, 신자들이 각자 위치에서 상승효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지금 한국교회가 풀어야 할 과제다”라고 말했다.

한국 수도회들은 사회와 교회 안에서 시대적 요청에 응답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 복지, 전례, 본당사도직, 교육(위부터 차례대로) 등 다양한 활동에 나서고 있는 수도자들.

이지연 기자 (mar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