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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프란치스코 교황 칙서 「자비의 얼굴」은

곽승룡 신부
입력일 2015-04-22 수정일 2015-04-22 발행일 2015-04-26 제 2941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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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를 향한 따스한 얼굴
그것이 바로‘자비의 마음’
프란치스코 교황이 4월 11일 자비의 희년 칙서를 발표한 후 하느님 자비주일 강론을 하고 있다. 【CNS 자료사진】
프란치스코 교황은 4월 11일 ‘자비의 희년’ 칙서 「자비의 얼굴」을 발표했다. 「자비의 얼굴」은 오는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막을 올려 2016년 11월 20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까지 이어지는 ‘자비의 희년’ 선포 배경과 실천 지침 등을 담고 있다. 그리스도가 하느님 자비의 얼굴이라면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그리스도 자비의 얼굴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자비가 드러났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는 그리스도인을 통해 드러나야 한다. 대전가톨릭대학교 총장 곽승룡 신부의 「자비의 얼굴」 해설을 통해 자비에 관한 교황 가르침의 정수를 들여다본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자비의 얼굴입니다.”

25항으로 구성된 「자비의 얼굴」에서 교황은 자비의 신비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요약이며, 나자렛 예수 안에서 아버지의 자비가 정점에 도달하는 가시적인 표지(1항)라고 말한다. 교황은 기쁨과 평온, 평화의 원천인 자비의 신비를 계속 관상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자비는 인간을 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과 연결하는 사랑과 희망의 다리이다.(2항) 자비는 늘 어떤 죄보다 크다. 교황은 우리가 하느님 자비의 전능을 드러내는 훈련을 하도록 제안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느님의 자비가 약함보다 전능의 표지라고 말한다. 구약은 하느님의 본질을 인내와 자비로 가득히 묘사한다. 하느님의 자비는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계시한다.(6항) 하느님의 자비는 이스라엘을 당신의 구원역사로 초대하고, 아버지의 자비로운 시선을 선사한다. 수난 전 예수는 자비의 시편을 기도하였고, 자비의 빛으로 파스카 희생과 그 영원한 기억의 성체성사를 세웠다. 자비와 함께 예수는 수난과 죽음으로 들어갔다.(7항)

우리는 예수의 시선에서 성삼위의 사랑을 경험한다. 예수 행적의 징표들은, 특히 가난한 자, 병자, 고통 받는 자들과 죄인들과 함께 자비를 가르친다. 예수는 모든 것을 자비로 말하고, 모든 연민을 피하지 않는다.(마태 9,36)(8항) 예수는 연민과 자비로 잘못을 용서하며, 누구도 -잃은 양, 잃은 은전, 돌아온 아들- 포기하지 않는 아버지의 자비를 하느님의 본질로 계시한다.(루카 15,1-32) 예수는 자비가 아버지의 행동만이 아니라 어린 자녀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표준이 된다고 단언한다.(마태 5,7) 성경 전체가 가리키는 핵심어, 자비는 우리를 향해 움직이는 하느님의 사랑이다. 제한이 없고 가시적이고 명백한 사랑은 추상 개념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구체적인 일상의 태도와 생활습관으로서 아버지의 자녀들에 대한 사랑이다. 아버지가 자비로운 것처럼 우리도 자비롭도록 부르심을 받았다.(9항)

자비는 교회 삶의 기초이다.

교황은 교회의 사목활동이 모두에게 온유할 것을 요청한다. 교회의 신뢰는 자비와 연민의 사랑을 얼마나 보이느냐에 달렸다. 하지만 자비를 실천하는 길을 잊은 지가 오래된 듯하다. 오직 정의에 초점을 두는 유혹은 자비가 먼저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잊게 만든다. 교회에 자비가 없는 삶은 사막처럼 황폐하다.(10항) 교회는 하느님의 자비를 선포하도록 위임받았다. 쇄신된 사목활동의 주제도 자비이고, 새로운 복음화의 과업에서 교회는 자비를 증거하는 신뢰와 책임을 보여야 한다. 교회의 언어와 제스처들이 자비로 전달되어야 한다. 교회의 첫 진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교회가 현존하는 어느 곳에서나 아버지의 자비가 명백히 드러나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어느 곳에서나, 자비의 오아시스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12항) 교황은 이 성년을 주님 말씀의 빛 안에서 살기를 바란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13항)

순례는 성년 안에 특별한 회개의 은총을 선사한다.

교황은 판단과 단죄를 내려놓도록 요청한다. 하느님의 심판을 피하려면 형제·자매를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판단은 겉에서 못 보는 아버지 영혼의 아주 깊은 시선을 회피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비의 도구가 되는 것은 먼저 하느님으로부터 자비를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버지와 같이 자비로운 자가 되는 것이 성년의 모토다. 자비 속에서 하느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발견한다.(14항) 교황은 희년 동안, 자비의 육적·영적 성찰을 통해 무디게 성장한 양심을 다시 일으키도록 바란다. 하느님 자비의 특별한 경험을 지닌 가난이 우리를 복음 속 깊이 들어가도록 한다. 먼저 자비의 육적 활동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곧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이에게 마실 것을 주며, 헐벗은 자에게 입을 옷을 주고, 낯선 자를 반기며, 아픈 이를 치유하고, 감옥에 갇힌 이를 찾아주며, 죽은 자의 장례를 치러주기 등이다. 또 자비의 영적 활동을 기억하고 실행할 것을 청한다. 의심 품은 자(믿음이 약한 자)에게 조언하고, 신앙을 모르는 자에게 가르쳐주며, 죄 지은이를 타이르고, 역경 속에 있는 자를 위로하며, 성낸 자를 용서하고, 우리를 아프게 한 자를 인내로 견디며,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기 등이다.(마태 25,31-45)(15항)

자비의 메시지는 모두에게 전달되며, 누구도 자비를 경험하는 부르심에 차이가 없다. 교황은 하느님 은총의 초대에 회개하며 나아가는 행동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다고 믿는다. 교황은 삶이 돈에 달려있지 않고, 돈과 대비해서 다른 것의 가치 또는 존엄성이 결여된 것을 생각하는 처절한 올가미에 빠지는 착각을 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 부패는 희망의 미래를 바라보는 우리를 방해하고, 무모한 탐욕으로 우리의 계획을 약화시킨다. 부패는 돈이 힘의 형태로 드러나는 착각이고, 하느님을 배반하는 마음이 범죄로 경화되는 어두움의 작업이다.(19항)

정의와 자비는 싸우지 않는다.

정의와 자비는 두 개의 반대현실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의 충만 속 정점에 드러나는 유일한 두 차원의 현실이다. 성경에서 정의는 하느님의 계명들과 일치하는 선한 이스라엘의 관습이고, 율법의 충만한 준수로서 이해된다. 정의는 하느님의 뜻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는 수차례 법 준수를 넘어 신앙의 중요성을 말한다.(마태 9,13) 예수는 정의의 시선으로 용서와 구원을 제공하고, 죄인을 찾는 자비의 위대한 선물을 계시한다. 성 바오로는 정의가 아니라 신앙을 첫 자리에 놓는다. 하느님의 정의는 죄의 노예들과 억압된 이들을 해방하는 힘이 된다. 하느님의 의로움은 그의 자비이다.(20항) 자비는 의로움의 반대가 아니라 오히려 죄인에게 도달하는 하느님의 길로 표현된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새로운 기회 곧 회개를 죄인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자비보다 분노를 멈추게 하는 것은 하느님께 더 쉽다”며, 하느님의 분노는 순간이나 그의 자비는 영원하다고 말한다. 하느님이 자신을 오직 정의로 제한한다면, 하느님으로 존재하기를 멈추는 것이다. 정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느님은 자비와 용서로 정의를 넘어 간다. 하지만 하느님은 정의를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참 정의의 기초로서 사랑을 경험하는 위대한 사건과 함께 그것을 감싸고 능가한다.(로마 10,3-4) 하느님의 정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부터 흘러나오는 은총으로 주어진 자비이다.(21항)

하느님의 용서는 한계를 알지 못한다. 교회는 성인들의 통공 안에서 산다. 성체성사에서 이 일치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선물로서 성인들과 우리를 묶어주는 영적 결합이 된다.(22항) 교황은 하느님 자비를 거행하는 희년이 다른 숭고한 종교전승들과 함께 만나고 서로 돌보는 것을 신뢰한다. 서로 이해하고 알 수 있는 열렬한 대화로 서로의 문들이 열리고, 경멸하는 모든 형태의 닫힌 마음을 제거할 것이며, 폭력과 차별의 모든 형태를 배격할 수 있다고 바란다.(23항)

자비의 어머니에게 향한다.

교황은 성년에 성모 마리아의 부드럽고, 친절하며, 신선한 표정이 우리를 바라볼 수 있다고 희망한다. 마리아의 전 생애는 ‘살이 된 자비의 현존’을 모방하였다. 교황은 위대한 자비의 사도,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를 소개한다. 신적 자비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도록 불린 그녀는 우리를 중재하고 그의 사랑을 신뢰하는 확고함과 함께 하느님의 자비에 따라 생활하는 은총을 우리에게 전구한다.(24항) 자비의 샘은 마르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자비에 다가가도 문제가 없다. 교회는 자비를 확장하는데 결코 지치지 않고, 연민과 위로를 제공하면서 인내한다. “기억하소서, 주님, 먼 옛날부터 베풀어 오신 당신의 자비와 당신의 자애를”(시편 25,6)(25항)

곽승룡 신부는 1989년 사제로 서품, 로마 교황청 우르바노대학교에서 교의신학 전공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6년부터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로 강의하며, 2013년부터 총장으로 봉직하고 있다.

곽승룡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