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현대의 봉헌생활 (4) 교회사 속 수도회들

백남일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본원장)
입력일 2015-04-14 수정일 2015-04-14 발행일 2015-04-19 제 2940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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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 속 다양한 카리스마로 완전한 사랑 추구
초기교회 사막 은수자 삶에서 수도생활 태동
베네딕토, 공동생활·규칙 정하고 정착 기여
프란치스코, 예수님 가르침서 본보기 찾아
이냐시오, 관상·사도직 결합 통한 쇄신 실현
수도원 안에서 규칙과 아빠스에게 순종하는 형태의 수도생활을 정착해 나간 성 베네딕토
관상과 사도적 활동의 조화로운 결합을 통해 수도생활의 새 전기를 마련한 성 이냐시오
제자들에게 전한 그리스도 가르침에서 수도생활 본보기를 찾은 성 프란치스코

역사 안에서 축성생활은 그 시초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양하고 고유한 창립 카리스마를 통해 항상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근본적인 요청에 응답하며, 때로는 상이한 강조점을 두면서도 예수님께서 기꺼이 받아들이시고 제자들에게 제안하신 이 특별한 생활양식을 생생하게 육화시켜 왔다. 수많은 수도회의 설립자들에게 예수님의 삶과 말씀과 행위들은 수도생활을 촉진시켜주시는 성령의 작용 안에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줬고, 또한 현 시대의 다양한 축성생활의 형태들에도 지속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도적 권고 「봉헌생활」은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백히 전해준다. “그토록 광범위한 다양성 가운데서도, 완전한 사랑을 추구하며 정결, 청빈, 순명의 예수님을 따르라는 하나의 부르심이 있기에, 근본적인 일치는 훌륭히 보존되어 오고 있습니다. 기존 형태의 모든 봉헌생활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부르심은 또한 새로운 형태로 제시되는 봉헌생활의 특징이 되어야 합니다.”(12항)

수도 공동체의 출현은 그 자체로 수도생활이 지니는 성격과 예언자적 사명으로 인해서 다양한 역사적 상황에서 야기되는 여러 사건이나 문제들에 응답하고자 했던 시도와 관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철저히 따르는 생활의 역동적인 의미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주기도 한다. 수도생활이 태동된 시기와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자들의 의견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기원후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종교의 자유에 관한 칙령이 선포되는 전후의 시대적 배경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일부 신자들이 박해를 피하기 위해 사막으로 찾아가 은수생활을 시작함으로써 수도생활이 생겨났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박해가 끝난 이후에도 사막을 떠나지 않고 은수생활을 지속해가는 이들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가 자유를 얻게 된 평화의 시기에 오히려 수도생활 운동이 새로운 활기를 얻어 더욱 강화되어 갔다는 점이다. 사실 수세기에 걸친 박해의 상황 중에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사실만으로 모진 박해와 투옥, 생명의 위협을 견디며 살아야 했고, 이 세상에 살면서도 하늘나라를 향한 순례의 여정을 걸어가는 나그네처럼 살아야 했다. 또한 그들에게 그리스도께 충실하기 위한 의무와 로마의 시민권자로서 살아가는 생활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신앙의 요청들에 더욱 충실한 삶을 지향했던 것이다.

이와 함께 초기 교회의 전통 안에서 보여지듯 순교란 온전히 하느님께 동화되는 일이며, 그리스도의 승리를 최상으로 실현하는 성덕의 가장 탁월한 표현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종교적 평화의 시대 도래 이후로 차츰 순교정신이 희미해지고 생기를 잃어가는 교회 안에서, 순교로써 그리스도인 생활에 필요한 긴장과 충실성을 이어가고자 했던 열망은 이제 영적 투쟁과 덕의 실천을 통해 이러한 순교정신을 계승하는 수도생활로 이어지게 된다. 교회가 자신의 본질과 사명을 망각한 채 권력과 부를 향유하고 안일함과 세속적인 타성에 젖어 신앙의 가시적인 표징이 되지 못할 때, 순교정신의 계승자들인 수도자들은 사막의 고독을 찾아 복음의 요청에 따라 모든 것을 버리고 철저히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교회의 현실을 직시하고, 식어버린 신앙의 열정을 일깨우며 복음적 완덕을 지향하도록 촉구하는 수도생활의 예언자적 기능은 후대에 생겨나는 수도 공동체를 통해서도 지속적으로 드러난다. 요한 카시아노는 세속화된 사회와의 분리를 본질적인 요소로 하면서, 교회 밖에서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복음적 포기로써 구체화되는 수도생활을 통해 교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 생활의 이상을 항상 기억하고 실천하도록 촉구했다. 또한 5세기 후반 로마 제국 말기의 윤리적·사회적 타락과 부패가 만연한 사회에서 베네딕토는 하느님만을 기쁘게 해드리려는 원의에서 세상을 등지고 수비아코의 동굴에서 은수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하느님과의 대화와 엄격한 보속을 위한 고독한 생활에서의 유혹과 위험을 체험한 후 그는 점차 수도원 안에서 규칙과 아빠스에게 순종하는 형태의 수도생활을 정착해 나갔다. 수세기에 걸쳐 로마 제국을 형성해온 정치, 사회, 문화적 구조의 몰락과 중세 문명의 개화라는 역사적 교차점에서 베네딕토는 정주와 형제애를 중심으로 한 공동생활을 통해서 어둠과 폭력과 미신에 묻혀 있던 인간성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선구자적 역할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이어서 12세기 말엽에는 프란치스코에게서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재발견을 통해 복음의 원천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새로운 수도생활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이 배경에는 봉건사회의 특권적 지위에 사로잡혀 영적인 각성을 촉구 받고 있던 당시 교회의 상황에 따른 시대적 요구가 있었다. 더욱이 이 시기에 스콜라 신학은 왕성히 발전하고 성숙되어 갔지만, 이는 교육의 혜택을 충분히 받지 못한 일반 대중에게 오히려 더 큰 괴리감과 차별을 초래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수도자들과 평신도들은 자신들의 일상생활 안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 위한 삶의 본보기와 지침을 찾고자 했다. 이와 같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프란치스코는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 그리고 그분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던 삶의 방식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면서, 전적인 가난과 충만한 자유 안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생활을 통해 교회에 지대한 활력을 불어 넣는 촉매제가 됐다.

또한 로욜라의 이냐시오 역시 역사적 대이변과 함께 혼란스러웠던 근대의 상황에서 특별한 빛을 발했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위대한 지리적·과학적 발견들, 중세부터 이어온 그리스도교 사상의 붕괴, 종교 개혁 운동, 르네상스 인본주의 사상의 출현 등은 당시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중대한 변화를 야기했다. 무엇보다 이 시기의 교회 역시 성직 계층의 세속화와 더불어 쇠락의 길을 지속적으로 걷고 있었으며, 수도생활 내부적으로는 양성체계의 부재와 도덕적 무질서, 성소의 감소 현상, 귀족 계층과 세속적인 분위기에 종속되는 경향으로부터 초래된 심각한 위기감에서 본질적인 쇄신이 요구되기도 했다. 이러한 개혁에로의 커가는 열망은 이미 기존의 전통적 수도회들 안에서 자율적인 개혁을 통해 구체화되기도 하였는데, 특별히 이냐시오는 하느님께서 부여하시는 사도적 임무에 자신을 봉헌함으로써 교회 안에서 진정한 쇄신을 실현하게 된다. 즉 그는 그리스도께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교회에 온전히 순명하고 성실히 봉사하며, 관상과 사도적 활동의 조화로운 결합을 통해 새로운 수도생활의 전기를 마련하였던 것이다.

이제까지 역사적 대변혁의 시기를 중심으로 교회사 안에 미친 수도생활의 공헌에 대해 개괄적으로 살펴봤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교회헌장 43항에 따르면, 수도생활은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천상 선물로써 교회의 생명과 성덕에 속한다고 말한다. 수도생활은 제도적·구조적인 창작물이 아닌 하느님의 선물인 동시에 교회의 내적 생명력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또한 수도생활이 주님의 선물인 이유는 그리스도의 모범과 말씀에 기초하는 이러한 삶의 형태가 그분의 성령에 의해서 교회 안에 생겨났고, 또한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수도생활은 성덕에로의 보편적인 성소를 실현하기 위한 효과적인 도구이며 교회의 성덕을 드러내 주는 표지로서,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 한가운데 계시는 주님의 현존이 가져다주는 결실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수도생활의 기원과 존재 이유는 교회 안에 있으며, 하느님 백성 전체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 하겠다.

2010년 11월 로마 라테란대학교 부설 글라렛티아눔(Claretianum)에서 수도생활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0년 12월 귀국 후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순교자의 모후 신학원 원장, 2012년 11월부터 수도회 본원(성북동) 본원장을 역임하고 있다.

백남일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본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