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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교회의 가르침] (56)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상)

박준양 신부
입력일 2015-03-31 수정일 2015-03-31 발행일 2015-04-05 제 2938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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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향해 항상 ‘열려 있는 교회’ 돼야”
세상 모든 이 구원 나서는  ‘출발하는 교회’ 모습 제시
회심으로의 첫 걸음 위한  전면적인 교회 쇄신 요구
영적 세속성 등 위협 지적 “어머니 마음으로 투신하자”
2013년 11월 24일 발표된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은 프란치스코 현 교황(재위 2013- )의 신학적·사목적 전망을 가장 잘 드러내는 대표적 교회 문헌이다. 그동안 이미 여러 기회를 통해 여러 차례에 걸쳐 이 문헌이 자세히 소개된 바 있지만 여기에서는 신학적 관점, 특히 교회론적 관점에서 이 문헌의 핵심 사상을 살펴보기로 한다. 한마디로, 교회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 주어지는 삶과 영의 충만함, 즉 ‘복음의 기쁨’을 모든 사람에게 전함으로써, 그분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는 것이 그 핵심 내용이다. 이러한 신학적 기조 사상은 전체 5개의 장으로 구성된 문헌 중 특히 제1장(19-49항)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출발하는 교회

「복음의 기쁨」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출발하는 교회’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한다(20-24항 참조). 그리고 이를 위해 ‘첫걸음 내딛기’(primerear)라는 핵심 단어가 강조되며, 이러한 기조 사상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교회 상이 제시된다.

첫째, 교회는 하느님을 향한 응답으로 항상 첫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그 모범은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하느님 말씀에 대한 아브라함의 순명이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1-3절) 이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찾아 식별하고 순종하여 그분께서 가리키시는 곳을 향해 출발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매일매일 결행해야 할 ‘회심’인 것이다. 그리고 이 회심의 차원에서, 여러 측면의 교회 쇄신이 요구된다. 사목 쇄신을 위한 구조 개혁 등을 말하면서, 심지어 “교황직의 쇄신”(32항)이 언급되기도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처럼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쇄신이 교회 안에서만 끝나지 않으려면 선교를 그 목표로 삼아야 함”(27항)을 또한 강조한다.

둘째, 이러한 하느님을 향한 회심의 ‘첫걸음 내딛기’는 이제 이웃을 향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이웃을 향해 사랑과 봉사의 걸음을 내딛어야 하는 이유는 너무도 명확하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1요한 4,19)이다. “복음을 전하는 이 공동체는 주님께서 이 일을 먼저 시작하셨고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음을 아는”(24항) 까닭이다.

셋째, 이처럼 이웃을 향해 “출발하는 교회는 문을 활짝 열어 놓은 교회”(46항)이다. 여기에서는 복음서에 나오는 그리스도론적 표상들이 교회론적 차원으로 전환되어 적용됨으로써 교회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가 잘 제시된다. 먼저, 죄의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이 회심하여 돌아올 수 있도록 교회는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자비의 복음서’로 일컬어지는 루카복음서 15장의 ‘되찾은 아들의 비유’(11-32장)가 그 성서적 근거로 제시된다. 교회는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보고 달려가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는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방탕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와 선뜻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언제나 문을 열어 둡니다.”(46항)

나아가, 교회는 모든 사람을 위해 “언제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아버지의 집”(47항)이 되어야 한다. 이는 요한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 말씀에 근거한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요한 14,2) 그러므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한다. “이러한 개방성을 보여 주는 하나의 구체적인 표시가 바로 모든 성당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하느님을 찾고자 성당을 찾아왔을 때 차갑게 닫혀 있는 문을 마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닫혀 있지 말아야 할 문들은 또 있습니다. 누구나 어떻게든 교회 생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고, 성사들의 문도 어떠한 이유로든 닫혀 있어서는 안 됩니다.”(47항) 사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그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이 세상의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열려 있는 집이 되어야 한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매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 11,28-29)

넷째, ‘출발하는 교회’는 이제 “열린 마음(심장)을 가진 어머니(a mother with an open heart)”(46-49항)가 되어야 한다. 뜨거운 심장 속에 사랑의 마음을 지닌 어머니는 불 속에 있는 자식을 구하기 위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들며, 또한 진흙 속에 있는 자식을 구해내기 위해 자기 몸을 내어던진다. 이미 언론에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명한 다음 진술은 이러한 모성적 교회 상에 기초한 것이다. “이제 출발합시다. 가서,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합시다. 제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제들과 평신도들에게 자주 드렸던 말씀을 온 교회를 위하여 되풀이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고 폐쇄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교회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 받고 더럽혀진 교회를 저는 더 좋아합니다. 저는 중심이 되려고 노심초사하다가 집착과 절차의 거미줄에 사로잡히고 마는 교회를 원하지 않습니다.”(49항)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은 교회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전면적인 쇄신을 제시한다. 2013년 7월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 섬에서 고통 받는 아프리카 이주민을 만나 격려하고 있는 교황. 【CNS】

여러 도전에 직면하여

「복음의 기쁨」 제2장(50-109항)은 “공동 노력의 위기 속에서”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제1장에서 제시된 ‘출발하는 교회’가 마주하게 될 여러 도전들에 대하여 설명한다. 크게, “오늘날 세상의 도전들”(52-75항)과 “사목 일꾼들이 겪게 되는 유혹들”(76-109항)로 나누어진다.

먼저 “오늘날 세상의 도전들”로 거론되는 것은, 모든 것을 경쟁의 논리와 약육강식의 법칙 아래 놓는 배척과 불평등의 경제(53-54항), 그리고 그로 인해 우상화된 물신주의의 횡행(55-56항), 봉사하지 않고 지배하는 금융 제도(57-58항), 폭력을 낳는 불평등(59-60항), 문화적 측면의 도전(61-67항), 도시 문화의 도전(71-75항) 등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를 통해, 인간적 면모를 상실한 현대의 경제적 흐름과 배타적 금융 구조의 심각한 문제점들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한편 “사목 일꾼들이 겪게 되는 유혹들”로 거론되는 것은 이기적인 나태(81-83항), 무익한 비관주의와 패배주의(84-86항), 영적 세속성(93-97항), 분열과 싸움(98-101항), 청년 사목의 문제(105-106항), 성소 감소의 위기(107항) 등이다. 이 가운데 교회론적 관점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바로 ‘영적 세속성’의 위험에 대한 지적이다. 이는 한마디로, “신앙심의 외양 뒤에, 심지어 교회에 대한 사랑의 겉모습 뒤에 숨어서 주님의 영광이 아니라 인간적인 영광과 개인의 안녕을 추구하는 것”(93항)이라 규정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위험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복음이 하느님의 백성에게 그리고 현대의 구체적인 요구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여 교회 생활은 박물관의 전시물이나 선택된 소수의 전유물이 되어 버립니다. 또 어떤 이들에게 영적 세속성은 사회적 정치적 쟁취에 대한 환상, 또는 실질적인 일처리 능력에 대한 자만, 또는 자립과 자아실현 프로그램에 대한 집착 뒤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는 또한 보이는 것에 대한 관심, 다시 말해 여행, 회합, 회식, 연회 등으로 가득한 바쁜 사회생활로 풀이될 수도 있습니다. 영적 세속성은 또한 통계와 기획과 평가에 매달리는 관리자의 기능주의로 표현되며, 그 주요 수혜자는 하느님 백성이 아니라 오히려 제도로서의 교회입니다.”(95항)

사실, 이는 바오로 6세 교황(재위 1963-1978)의 말씀처럼, “세상 안에 있으면서도 세상의 것이 되지 말아야 하는 교회”(Ecclesia in mundo, sed non mundi)가 세상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상호작용 속에서 불가피하게 또 실제적으로 마주하는 도전이며 위험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의 「교회 헌장」 8항이 천명하듯, “자기 품에 죄인들을 안고 있어 거룩하면서도 ‘언제나 정화되어야 하는 교회’(Ecclesia semper purificanda)는 끊임없이 참회와 쇄신을 추구한다”는 당위적 명제 차원에서, 이는 교회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늘 함께 성찰하고 숙고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1992년 사제로 서품, 로마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교의신학 전공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의신학 교수,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총무,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 위원, FABC 신학위원회 전문신학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박준양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