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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리미나 후속보도] 특별인터뷰 / ‘자비의 희년’ 준비 실무 책임 새복음화촉진평의회 의장 살바토레 피시켈라 대주교

이탈리아 로마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5-03-25 수정일 2015-03-25 발행일 2015-03-29 제 2937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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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하느님 자비 세상에 증거하는 주체 돼야”
구체적 이웃사랑 실천할 때 ‘하느님 자비’ 드러나
“현대문명의 노예화는 복음화 가장 큰 장애”
세상·교회 속 평신도 활동, 새 복음화 중요 원동력
피시켈라 대주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이라며 “새로운 문화, 새로운 언어, 새로운 맥락 안에서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비의 희년’(Jubilee of Mercy)을 선포하면서, 최근 그 누구보다 분주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교황청 관계자는 살바토레 피시켈라(Rino Fisichella) 대주교다. 그가 의장을 맡고 있는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는 특별희년을 준비, 실행하는 책임 부서다. 가톨릭신문과의 특별인터뷰가 예정된 날에도 피시켈라 대주교는 세계 각국 주교 및 언론들과 연이어 만나 ‘자비의 희년’ 의미를 설명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봉헌생활의 해’에 이어 앞으로 ‘자비의 희년’을 통해 새 복음화에 더욱 힘을 실어나갈 것을 권고했다. 이번 호에서는 피시켈라 대주교의 목소리를 통해 ‘자비’의 의미와 실천 방향 등을 공유한다. 인터뷰는 지난 3월 17일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 의장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많은 신자들이 ‘자비’를 어렵게 생각하곤 합니다. 자비는 어머니 또는 아버지가 자식들을 부드럽게 안아주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품는 마음이라고 설명할 수 있지요.”

피시켈라 대주교는 “자비는 하느님 곁에 머무르는 것”이고 “우리 각자의 삶 안에 존재하시는 하느님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자비의 희년’ 선포를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목적 직관이 가장 잘 드러난 행위라고 평가했다.

피시켈라 대주교는 “복음서가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바로 ‘자비’”라고 강조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서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인 ‘자비’를 올바로 이해하고, 각자의 삶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자비의 희년’을 정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개개인의 노력이 더해지지 않으면, ‘자비’는 새 복음화의 동력이 되기는커녕, 자칫 추상적인 언어로만 남겨질 수 있다. 그렇다면 현대인의 일상 안에서 자비는 어떤 모습으로 구현될 수 있을까.

피시켈라 대주교는 우선 “성경말씀이 밝혀준 것과 같이, 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이에게 마실 것을 주고, 이방인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이고, 고통 받는 이들을 돌보는 것, 산 이와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 가운데 있는 모든 행위가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자비’는 “이 시대 곳곳에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행사되는 폭력을 피할 수 있는 근본 바탕이 된다”고 강조한다.

“‘자비’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인들만이 아니라 유다인들과 무슬림들도 함께 쓰고 실천하는 개념입니다. 갈라진 형제들이나 이웃종교인들도 항상 ‘자비의 하느님’을 부릅니다. 이러한 개념은 모든 이들이 자비를 추구할 수 있는 힘이 되고, 구체적으로 폭력을 피해 세계가 평화 공존을 이룰 수 있는 길을 보여줍니다.”

새복음화촉진평의회 의장으로서 피시켈라 대주교는 현대 세계가 강력한 문화적 변화를 겪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현대 사회문화의 변화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새 복음화를 외치는 목소리는 그저 구호에 머무를 수 있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그리스도교는 항상 그 시대 사회문화와 접목돼야 합니다. 복음화란 그리스도교와 다양한 문화들이 만나 접점을 찾고 공통의 문화를 일궈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 복음화를 실천하는데 있어서 집중해야할 과제로 “복음서가 가진 핵심 메시지를 다양한 문화 안에서 어떻게 설명하는가”를 제시한다. 각각의 문화 안에 내재된 하느님의 메시지를 발견하고 끌어내는 여정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즉 여러 다른 문화 안에서 그 문화에 접목할 수 있도록 복음을 풀어내고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피시켈라 대주교는 특별히 아시아 복음화의 맥락에서는 새 복음화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새 복음화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열정을 부여해줍니다. 넓은 지역, 다양한 문화를 품고 있는 아시아 대륙에서 복음화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내면에 머무르는 신앙을 뛰어넘어 공동체가 선교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예전과 달리 국가의 영토를 빼앗는 식민지화가 아닌, 사상의 식민지화가 확산되는 현실에도 우려를 표명했다.

피시켈라 대주교는 “복음화의 가장 큰 장애는 내 안에 있는 하느님의 현존을 인식하지 못해, 현대 과학·기계 문명의 노예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아시아 지역에서도 과학·기계문명의 노예가 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하느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의식이 급속도로 번져간다고 경고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입니다. 새로운 문화, 새로운 언어, 새로운 맥락 안에서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아울러 피시켈라 대주교는 새 복음화를 위해 평신도들의 역할과 활동을 더욱 활성화하는데 힘을 실어나갈 것을 요청했다. 세상과 교회를 넘나들며 복음을 실천하는 평신도들의 활동은 새 복음화의 중요한 원동력이라는 말이다.

“한국 방문 경험을 통해, 한국교회가 평신도들에 의해 태어났고, 순교자들의 증거를 가진 교회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순교자들의 피로 성장한 한국교회는 그 어느 교회보다 생동감이 넘치고 선교적이어야 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이 세상에 증거하는 주체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 살바토레 피시켈라 대주교는…

살바토레 피시켈라 대주교는 1976년 사제품을 받고 1998년 이탈리아 로마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됐다. 이어 교황청 라테라노대학교 총장과 생명학술원 원장을 역임했으며, 2010년부터 새복음화촉진평의회 초대 의장으로 활동 중이다. 기초신학 교수로 20여 년간 활동한 바 있으며, 신학자로서의 권위도 높이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다.

■ 새복음화촉진평의회는…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은 지난 2010년 9월 21일 자의교서 「언제나 어디서나」(Ubicumque et Semper)를 발표하고,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를 새로 설립했다.

교황은 새복음화촉진평의회 신설에 관한 자의교서에서 “복음화의 사명은 역사의 흐름 안에서 다양한 지역과 상황과 시대에 따라 언제나 새로운 형태와 방법을 취했다”고 밝혔다. 특히 “우리 시대는 신앙 포기라는 도전을 받고 있다”고 지적하고 “현대 세계에서 선교 열정을 가지고 새 복음화를 촉진할 수 있도록 적절한 대응책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신설된 새복음화촉진평의회는 새 복음화에 관한 주제들과 교황의 가르침을 연구, 보급하고 적용, 촉진, 장려하는 책임을 맡았다. 또 새 복음화 활동을 위한 적절한 방식과 수단들을 찾아내 개별 교회들에 확산하는 노력을 펼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활용을 촉진하고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 활용을 연구하고 장려하는 것도 평의회의 몫이다. 세속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지역의 교회들을 위한 활동도 평의회가 담당한다.

새복음화촉진평의회는 1985년 교황청 보건사목평의회가 설립된 이후 25년 만에 신설된 평의회다.

이탈리아 로마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