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현대교회의 가르침] (54)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신앙의 빛」 (상)

김영선 수녀
입력일 2015-03-19 수정일 2015-03-19 발행일 2015-03-22 제 2936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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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하느님 부르심에 대한 응답/그리스도 삶에 일치하는 것
인생 여정 밝히고 안내하는 ‘신앙’ 의미 설명
주님보다 이성에 치중했던 인류 반성 촉구
“믿음, 개인 넘어 공동체 안에서 자리잡아야”
프란치스코 교황 첫 회칙 「신앙의 빛」은 인생과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는 신앙의 빛에 대한 의미와 중요성을 일깨워주고자 선포됐다. 갈릴래아 호수 일출 모습. 【CNS】
1. 회칙에 대한 안내

「신앙의 빛」(Lumen Fidei)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첫 회칙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주년에 선포된 ‘신앙의 해’를 맞아 신앙의 의미를 밝혀주기 위해 선포되었습니다. 이 회칙은 전임 교황이신 베네딕토 16세께서 그 이전에 쓰신 사랑에 관한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와 희망에 관한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Spes Salvi)와 함께 신망애의 향주삼덕에 대한 회칙입니다. 이 회칙의 7항이 밝히고 있듯이 베네딕토 16세께서 거의 완성하신 회칙의 초안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조금 더 다듬고 내용을 덧붙이셨으므로, 회칙 「신앙의 빛」은 두 분의 교황님에 의해 완성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회칙은 전체가 60항으로, 서론과 네 개의 장으로 된 본론, 그리고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 회칙의 서론 (1~7항)

서론(1~7항)은 회칙의 목적과 배경을 설명하기 위하여 왜 빛이 중요한가, 신앙도 빛인가, 왜 신앙의 빛이 중요한가, 왜 신앙의 빛을 강조해야 하는가, 그리고 왜 신앙의 빛을 되찾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다룹니다.

먼저, 빛이 중요한 이유는 빛이 있어야만 우리가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빛이 중요한 것만큼 어떤 빛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빛의 종류와 밝기가 다를 때 사물이 달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빛이 되는 이유는 태양의 가시광선 덕분에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신앙도 우리를 비추어 인생과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앙은 태양 광선이 비추어 주지 못하는 인간의 내면과 죽음, 모든 초자연적 현실을 비추어준다는 의미에서 태양 광선보다 훨씬 더 뛰어난 빛입니다. 신앙은 인간 실존의 전 현실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참 빛이며, 오직 신앙만이 삶을 ‘영원의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이 회칙이 신앙의 빛을 강조하는 이유는 근대주의의 영향을 받은 현대사회가 신앙의 빛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여겨왔기 때문입니다. 인간 존재의 근원을 사고하는 인간의 이성에 두는 근대주의는 이성을 지배하거나 제한하는 어떤 권위도 배제하고자 합니다. 이런 근대주의의 영향으로 우리 삶의 많은 영역들이 신앙과 분리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신앙은 인간의 이성과는 거리가 먼 영역, 곧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류는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인간 이성이 비추는 빛의 한계를 깊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빛을 거부했던 인류는 이제 빛을 상실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인류의 회복을 위해서 신앙의 빛을 되찾는 일이 시급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신앙의 빛을 되찾을 수 있는가 하는 중요한 물음이 남게 됩니다. 이 물음은 회칙의 본론에서 다루어지게 됩니다.

회칙의 서론은 일단 문제 제기를 한 후 신앙의 빛의 특성에 대해 요약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신앙의 빛은 인간 실존의 모든 측면을 비출 수 있는 유일한 빛이며, 인간에게서 나오는 빛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빛입니다. 신앙은 또한 우리 삶의 여정을 밝히고 안내하는 빛이며, 예수님께 대한 기억에서 나오므로 과거에서 오는 빛이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죽음 너머로 이끄시므로 미래에서 오는 빛이기도 합니다. 신앙의 빛은 우리의 지평을 열어주고, 고립된 자아를 넘어 드넓은 친교로 나아가도록 초대하는 빛입니다.

3. 회칙의 본론

회칙의 본론에서는 서론에서 제기된 신앙의 빛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을 다룹니다. 이를 위하여 본론의 1장(8~22항)은 신앙이 무엇인가, 2장(23~36항)은 신앙이 어떻게 진리 인식을 하게 하는가, 3장(37~49항)은 신앙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가, 4장(50~57항)은 신앙이 인간 실존의 구체적 영역에 어떻게 빛을 비추는가 하는 주제를 다루게 됩니다. 회칙 「신앙의 빛」에 대한 설명이 두 차례에 걸쳐서 연재될 것이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본론 1장을 설명하겠습니다.

3.1. 본론 제1장(8~22항)

신앙의 빛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앙이 무엇인지가 정확히 규명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본론 1장은 신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먼저, 신앙이 개인의 주관적인 신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하여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 여정을 살펴보고 그들의 여정에서 드러나는 신앙의 특성을 제시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 여정이 보여주듯이 신앙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신앙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부르심이 있고, 그것에 응답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는 땅과 후손에 대한 약속,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겠다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약속에 충실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 여정과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이 보여주는 것처럼 하느님의 약속은 번번이 위기에 처하는 듯이 보였지만 그들은 당신의 약속에 충실하신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약속을 굳건히 신뢰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아들인 이사악을 바치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할 만큼 하느님을 굳건하게 신뢰하였습니다.

이처럼 신앙은 현재의 실존뿐만 아니라 오지 않은 미래까지도 신앙의 빛으로 바라보게 해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체험한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다음 세대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어제의 구원 역사는 거듭 기억되었고, 이 기억은 다시 현재와 미래에 빛을 던져주어 그것을 구원 역사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우상숭배와 신앙이 다른 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상숭배는 즉각적이고 손에 잡히는 결과를 기대하는 자기중심적인 행위이며, 자기 자신을 현실의 중심에 두는 것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신앙은 하느님을 우리 삶과 시간의 중심으로 삼기 위하여 모든 우상을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신앙은 “언제나 우리를 받아 주시고 용서하시며,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이끌어 주시면서 비뚤어진 우리 역사의 굴곡을 바로잡아 주실 수 있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에 우리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13항).

신앙이 개인적인 신념이 아니라는 점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중개자였던 모세의 존재를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아무도 직접 하느님을 뵙지는 못하기에 신앙은 중개자를 필요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신앙 행위는 공동체 안에 자리잡아야 하고, 공동체는 신앙 안에서 서로 일치합니다(14항 참조).

구약의 백성을 통하여 드러났던 하느님의 사랑과 그 사랑에 담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결정적이고 완전한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참여하는 것, 그분의 눈으로 보고 그분의 귀로 들으며 그분의 삶에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과 다른 형제, 자매들을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바라보며, 자아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어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의 여정에 참여합니다(22항 참조).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소속으로 미국 보스톤 칼리지에서 구약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강사로 활동 중이다.

김영선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