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2015 앗 리미나 특집- 교황과 다섯 차례 진솔한 대화

이탈리아 로마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5-03-18 수정일 2015-03-18 발행일 2015-03-22 제 2936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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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사제는 봉사자, 신자에게 다가가야”
“세월호, 잊지 않고 매일 기도합니다”
3월 12일 교황청 클레멘스홀에서 열린 한국 주교단과 교황과의 만남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기념 성물을 전달하고 있다. 교황청 공식 사진단

“한국어 통역을 할 수 있을까요?”

프란치스코 교황의 제안에 마침 함께 자리한 주교회의 홍보국장 이정주 신부의 통역이 즉석에서 이뤄졌다. 개개인이 보다 자유롭게 듣고 말할 수 있는 자리가 되도록 이끈 배려였다. 통상적으로 앗 리미나는 이탈리아어 혹은 영어 등으로 진행된다. 곧바로 교황은 가장 먼저 일어나 구석에 있던 의자를 끌어오려 했다. 이 신부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서였다. 교황이 직접 의자를 챙기는 것은 물론, 일반 사제들이 앗 리미나 현장을 참관하는 경우는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만남 이전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교황과 주교들은 같은 높이에 의자를 두고, 둥글게 둘러앉았다.

“한국을 다녀왔었는데, 그동안 한국어를 잊어버려 통역을 뒀어요.” 개구진 표정으로 던진 교황의 농담. 주교들의 긴장된 표정은 일순 미소로 바뀌었다.

“자유롭게 의견을 나눴으면 합니다. 어떤 의견도 괜찮아요. 교황, 교황청을 비판해도 좋습니다. 주교님이 어떤 실수를 해도 파문하지 않는다니까요.”

파안대소가 터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글자 그대로 ‘무장해제’된 주교들에게 발언권도 먼저 넘겼다. 교황의 배려에 스스럼없는 질의와 설명이 이어졌다. 자유로운 만큼 다루는 주제도 다양했다. 심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교황. 명확하게 논점을 짚어가지만 쉽게 설명하는 교황의 어법은 모두를 하나로 만들었다.

“세월호, 잊지 않고 기도합니다”

“세월호 사태는 어떻게 정리됐나요?”

주교들과 둘러앉아 프란치스코 교황이 던진 첫 마디다. 교황은 지금도 한국사회가 겪은 아픔을 잊지 않고 매일 기도한다. 주교들의 마음 한 켠이 뭉클하다. 정작 한국 사회와 교회는 얼마나 기도했는지, 이제 그들을 잊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여전히 바뀐 건 없다고.

주교들은 오는 4월 16일, 세월호 사태 1주기를 기점으로 기도시간 등을 새롭게 마련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또한 교황 방한 이후 한국에서는 신자는 물론 비신자들에 대한 교회 신뢰도가 더욱 높아진 것을 느끼고 있고, 국민 모두가 교회를 주시하는 분위기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방한은 한국교회에 큰 선물이 됐으며, 이후 교황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노력에도 힘쓰고 있다는 말도 이어졌다.

“순교자의 피는 한반도 전체 위한 것”

한반도의 분단, 올해로 70년째다. 하지만 남북 통일 노력은 답보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주교회의는 한국교회가 한반도 및 세계 평화를 위해 보다 구체적으로 해야 할 역할들을 지속적으로 고민해왔다. 특히 올해는 한국교회 차원의 담화를 발표하고, 기도운동도 보다 적극적으로 펼칠 계획이다. 주교들의 의지를 들은 교황은 “작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가슴 깊이 다가온 부분 중 하나는 남한과 북한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순교자들의 피는 남한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 피의 열매를 한반도 전체에서 맺어야 합니다. 평신도들의 신앙이 먼저 영글었던 한국교회가 아닙니까. 과부의 헌금처럼 작은 정성과 행동이라도 신자 개개인이 실천하고 기도한다면, 그 작은 행동들이 모여 큰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봉사하는 사제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 방문 당시 사제들에게 직접적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없어서 아쉬웠다는 주교의 말에 교황은 다소 긴 답변을 내놓았다. 무엇보다 신자들 위에 군림하려는 태도에 일침을 가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안락함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퍼지는데 대해 자주 이야기를 듣곤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서품을 받자마자 개인 자동차도 갖고, 편안한 생활을 누리려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사제들은 가장 마지막에 도착한 사람들입니다. 평신도들이 먼저 자발적으로 신앙을 키웠습니다. 사제들은 평신도들과 교회에 봉사해야 합니다.”

사제는 높은 직급을 가진 이들이 아니라 봉사하는 이들이라고 강조했다. 교회 안에서 ‘올라간다는 것’은 바로 ‘내려간다는 것’이고 ‘봉사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사제생활의 키워드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제시했다. “사제의 삶은 하느님 백성에게 봉사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느님과 신자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어떤 죄를 지어도 놀라지 않고, 껴안아 주십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자비를 사제들이 느낄 때, 다른 이들의 죄도 용서하고 그들에게 봉사할 수 있습니다.”

“이기심으로 자녀 안낳는 현실 심각해”

가정에 관한 시노드, 예비 시노드까지 펼친데 대해 주교의 질문이 이어졌다. 교황은 우선 시노드는 전 세계 주교들이 중요한 주제를 두고 기탄없고 통렬하게 의견을 개진하는 자리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급변하는 사회 안에서 각 가정이 처한 현실, 특히 젊은이들이 겪는 가치관의 혼란 등을 우려했다.

“많은 나라에서 자녀를 훈육할 때 뺨 한 대도 때리지 못하게 법적으로 보호하지요? 어린아이의 뺨을 살살 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으면서, 낙태법을 허용하는 것은 일관성 없는 법행정이지요.”

예전에는 군대를 통해 땅을 점령함으로써 식민지화를 이뤘지만, 현대에는 그릇된 사상들로 식민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예를 들어 제3세계에 자본을 투자할 때, 낙태와 안락사 등을 허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다는 것이 바로 사상적 식민지화이다. 교황은 이러한 경향이 바로 신앙과 문화를 파괴하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자신의 이기를 위해 아기를 낳지 않고 노인들을 외면하는 현실을 지적하고 ‘어머니’인 교회는 변방으로 쫓겨난 이들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예비신학생 양성 긍정적 시스템”

주교들은 한국교회에는 7개의 신학대학이 있는데, 최근 사제성소자가 다소 줄어든 현실에 대해서도 피력했다. 현황을 듣던 교황은 서울대교구가 운영 중인 예비신학생 양성 과정에 대해서 보다 큰 관심을 보이며, 긍정적인 시스템이라고 격려했다.

신학교의 교육 환경과 영성지도 신부에 관해서도 궁금해 했다. 신학생 양성에 관해서는 영성적인 면과 지적이고 공동체적인 면, 사도직 양성이라는 네 가지 축이 긴밀한 유대 안에서 유지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신학교 생활을 통해 형제적 유대관계를 습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2014년 방한 때, 장애어린이들과의 만남이 길어지면서 한국 수도자들과의 만남 시간이 줄어든 것도 또렷이 기억하고 질문을 던졌다. 한국 주교들은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수도자들에게는 큰 격려의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봉헌생활을 올바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영성생활(기도생활)과 공동체생활, 꾸준히 공부하는 생활, 사도직 생활을 조화롭게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영세자에 공동체적 관심을”

한국교회 내에서는 예비신자교리반이 대개 6~8개월의 단기 과정으로 진행된다. 영세 후 쉽게 냉담하는 모습도 꾸준히 이어진다.

한국 주교들이 토로하는 고충에 교황은 우선 “(입교자들에 대한) 교리교육과 세례 받은 이들의 교육을 구분해서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특히 입교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것뿐 아니라, 신앙 공동체가 이들과 동반해 신앙생활의 여정을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닮은 몽골교회, 서로 협조를”

이번 앗 리미나에는 몽골 지목구장 벤체슬라오 파딜랴 주교도 함께 했다. 몽골 교회의 유일한 주교다. 파딜랴 주교는 십자가 하나 세워지지 않은 초원에 홀로 파견돼 23년째 교회 건설에 힘쓰고 있다. 교황은 한국교회는 몽골교회가 설 수 있도록 돕는데 일등공신이라고 치하했다. 몽골교회는 이제 1025명의 세례자로 구성된 교회로 성장했다.

교황은 대화 도중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다니, 팔이 아프지 않느냐”는 농담으로 파딜랴 주교의 사목적 활동을 격려했다.

특히 교황은 몽골교회의 현실이 200여 년 전 한국교회와 비슷한 면이 많다며, 서로 도우며 성장에 힘쓸 것을 당부했다.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 묘소 참배

앗 리미나 첫 날인 3월 9일 베드로 사도 무덤 제대에서의 미사 봉헌.

3월 14일 바오로 사도 묘소를 참배하고 있는 주교단.

회심의 눈물 흘린 베드로처럼 매순간 하느님께 돌아설 것 다짐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은 ‘사도좌 방문’(앗 리미나)을 통해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묘소를 참배하고, 베드로의 후계자이자 세계 주교단의 단장인 교황과 일치를 다진다.

묘소 참배는 신앙을 증거하기 위한 순교를 감수한 사도들의 삶과 신앙을 되짚고, 주교들이 먼저 그러한 정신과 마음으로 살아가겠다는 뜻을 재확인하는 기회다. 또한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 교황을 통해 하느님께 사랑과 순명을 다짐하는 자리다.

한국 주교들은 앗 리미나 첫 날 가장 먼저 베드로 사도의 무덤 제대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 사도가 회심의 눈물을 쏟아냈던 것처럼, 우리도 매순간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사도의 마음을 닮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바오로 사도의 무덤 제대 미사는 3월 14일 주교회의 부의장 장봉훈 주교 주례로 봉헌했다. 장 주교는 이날 미사 강론을 통해 “바오로 사도의 삶과 생애를 일관한 초인적인 선교의 원동력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였다”고 전하고, “‘나의 마음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는가?’ ‘나의 삶을 이끌고 움직이는 원동력은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사도 바오로의 삶을 닮는 은총을 간구하자”고 독려했다.

이탈리아 로마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