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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목 현장을 가다] 매일 단체 강복 시간 갖는 공군 군종사제단

김근영 기자
입력일 2015-03-10 수정일 2015-03-10 발행일 2015-03-15 제 2935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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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불문, 밤 9시면 일제히 병사들 위해 기도
외로움으로 힘든 신자 배려 차원
“힘든 군 생활에 신앙적 위안” 평가
비신자들도 관심… 세례로 이어져
공군 한성대본당 주임 박근혁 신부(오른쪽)가 병사들에게 강복하고 있다. 공군 군종사제단은 매일 오후 9시, 군 신자 공동체를 위해 강복의 시간을 갖는다.
공군 군종사제단에는 특별한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매일 오후 9시 공군 군종신부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공군 신자 공동체를 위해 강복을 빌어주는 것. 사제관에 있어도, 운전 중이어도, 신자들과 친교를 나누는 시간에도 오후 9시 알람이 울리면 자리에서 일어나 강복을 빈다.

정해진 시간에 군종신부들이 강복을 빌어주는 전통은 공군에서 유래된 것은 아니다. 이기헌 주교(의정부교구장)가 군종교구장이던 당시 육·해·공군 군종신부들은 정해진 시간에 신자들을 위해 일제히 강복을 빌었다. 그러다 이 전통은 점차 잊혀져갔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잊혀질 뻔한 전통이 다시 되살아난 것은 공군 군종사제 대표이자 삼위일체본당 주임 나광남 신부 덕분이다. 나 신부는 오후 9시만 되면 성호를 긋는 신자들 모습을 종종 목격하곤 했다. “왜 아직까지 하느냐”는 나 신부 질문에 “그냥 합니다”라는 단순한 대답만 돌아왔다.

신자들은 계속하는데 신부들이 그냥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러다 지난 1월 29일 공군 군종신부 자체회의에서 나 신부가 ‘오후 9시 단체 강복’을 발의, 다시 추진키로 했다.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군 신자들은 본인들을 위해 군종신부들이 복을 빌어준다는 데서 큰 위로를 얻는다. 공군 소속 본당은 총 19개로 육군보다 적지만 본당 간 유대는 깊은 편이다. 신자들 간 입소문을 통해 이 전통에 대한 긍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사실 사제가 신자들에게 “늘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신자들은 ‘신부님이기 때문에…’라고 당연시 할 수 있다. 정해진 시간에 특정 대상에게 빌어주는 강복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신자들은 오후 9시면 ‘지금은 신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강복을 빌어주시는 시간’이라고 의식하게 된다.

이 전통은 무엇보다 장병들의 신앙생활을 위해서다. 한성대본당 주임 박근혁 신부는 “대개 병사들은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끝없는 외로움과 막막함에 고통 받곤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오후 9시 강복시간을 통해 병사들은 ‘신부님께서 이 시간에 우리들을 위해 기도해주신다고 했지’라며 힘을 얻는다”고 강조했다.

헬기 조종하는 남편을 둔 김아인(비비안나·36·군종교구 한성대본당)씨는 “주로 야간비행을 하는 남편 걱정으로 밤에 안절부절 못했는데, 오후 9시에 신부님들이 우리를 위해 기도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시간에 맞춰 저도 기도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밤에 기도를 하니 마음이 가벼워진데다 잠도 쉽게 청할 수 있어 이제 습관이 됐다”고 덧붙였다.

간접선교 효과도 크다. 남편과 함께 이 전통을 이어오던 허현주(로사·43·군종교구 한성대본당)씨는 2011년 비신자들과 함께 식사하던 도중 알람이 울리자 남편과 동시에 성호를 그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비신자 동료들은 허씨에게 “방금 무엇을 했느냐”며 호기심을 보였다. 허씨는 그들에게 강복 의미와 교리 등을 설명해줬다. 무엇보다도 비신자들은 공군 군종신부들이 시간을 정해 신자들을 위해 기도해준다는 데서 큰 감동을 받았다. 그중 몇몇은 세례를 받았다.

나광남 신부는 “공군 본당 공동체가 같은 시간에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성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또 “교구 사목지침이 ‘기도하며 일하며’이듯, 일하면서도 하느님을 기억하고 하느님 안에서 하루의 일을 마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