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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교회의 가르침] (52) 베네딕토 16세 교황 권고 「주님의 말씀」 (상)

안소근 수녀
입력일 2015-03-03 수정일 2015-03-03 발행일 2015-03-08 제 2934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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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은 교회를 위한 생명의 양식이며 지금도 우리 가운데 살아있는, 세상에 선포해야할 사명이다
12차 세계주교시노드 후속 권고
교회 삶과 사명의 두 기둥인 ‘하느님 말씀과 성체’ 다뤄
계시 헌장 이후 교회 방향 제시
3부로 나눠 세상 안에서 말씀이 지니는 의미 설명해
1. 역사적 배경과 전체적 구조

「주님의 말씀」은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주제로 2008년 10월 5일부터 26일까지 바티칸에서 열린 제12차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 정기 총회 후속 교황 권고로서 주석학자들의 수호 성인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인 2010년 9월 30일자로 발표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전후하여 교회 안에서는 학문적으로나 신자들의 삶 안에서나 성경에 대한 관심이 크게 일어났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을 지내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라면, 공의회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에 머물지 않고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이켜 보며 다시 방향을 잡아가는 것이 필요한 때에 이르렀다고 할 것이다. 이를 위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교황 권고 「주님의 말씀(Verbum Domini)」이라고 볼 수 있겠다.

서론 3항에서 말하고 있듯이, 이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 내지 이 문헌의 위치는 두 방향에서 접근할 수 있다. 첫째로, 2005년에 열린 제11차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의 주제가 “교회 생활과 사명의 원천이며 정점인 성찬례”였고 그 후속 문서가 「사랑의 성사」였다는 점을 기억할 때, 근래에 있었던 두 번의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가 교회의 삶과 사명의 두 기둥인 하느님 말씀과 성체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성경을 풀어주실 때 그리고 빵을 쪼갤 때에 예수님을 알아 뵈었다는 복음 본문이 말해 주듯이(루카 24 참조), 말씀과 성체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교회 안에 현존하시는 방식들이며 순례하는 교회를 위한 생명의 양식이다.

「주님의 말씀」 안에서도 제2부에서 말씀과 성찬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말씀의 성사적 성격에 대해 빼어나게 설명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54-56항 참조), 말씀과 성찬을– 또는 더 일반적으로, 성사를– 대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육화의 신비라는 하나의 맥락 안에서 그 두 가지를 함께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전통적으로 개신교에 비하여 가톨릭 교회에서는 성사가 더 중시되고 말씀은 소홀히 여겨졌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계시 헌장(「하느님의 말씀」)에서도 이미 분명하게 “교회는 언제나 성경들을 주님의 몸처럼 공경하여 왔다. 왜냐하면 교회는 특히 거룩한 전례를 거행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의 식탁에서 뿐만 아니라 하느님 말씀의 식탁에서도 끊임없이 생명의 빵을 취하고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21항)라고 말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이것이 공의회의 새로운 가르침이 아니라 교회의 실천 안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는 것임을 부각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주님의 말씀」은 계시 헌장 이후의 한 세대를 정리하면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19세기를 거치면서 성경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 특히 역사 비평적인 연구가 발전하게 되고 이를 교회가 수용해가는 과정에서 「섭리하시는 하느님」, 「성령의 영감」과 같은 문헌들이 나오게 되고 계시 헌장이 그 시대의 마침표를 찍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전의 문헌들에서 주로 문제가 된 것이 역사 비평적인 연구 방법에 대한 수용이었다면, 계시 헌장에서 그 수용은 이미 완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제 계시 헌장 이후의 발전에서 나타나게 되는 여정을 돌아보고 문제점들을 짚어보며– 분명 문제점들은 없지 않았다– 교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주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93년에 교황청 성서위원회에서 발표한 「교회 안의 성서 해석」은 내용적으로 볼 때 「주님의 말씀」을 향해 가는 중간 단계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시기에 성서학계에서는 역사 비평만이 아니라 여러 새로운 방법과 접근들을 발전시켰고, 이에 따라 성서위원회에서도 이 문헌에서 여러 가지 접근들 등에 대하여 서술하고 평가한 다음 해석학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가톨릭 해석의 특징으로서 “성서 전통 안의 해석”과 “교회 전통 안의 해석”을 언급하고 있다. 전통 안의 해석을 강조한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의 큰 특징이기도 하고 이 점 외에도 이 문헌의 내용은 「주님의 말씀」과 상당 부분 겹쳐진다. 차이점으로 말하자면, 두 문헌에서 각 주제들에 부여하는 비중이 서로 다르고 전체적으로도 「주님의 말씀」은 이와 같은 개별적인 내용들을 한처음에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분, 말씀이신 그리스도라는 큰 틀 안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다음 단락 참조). 이는 공의회 이후에 “계시의 삼위일체적이고 구원사적인 지평”(3항)에 대한 인식이 커진 데에 기인한다.

이제 문헌의 전반적인 성격을 알아보기 위해서 그 짜임을 우선 전체적으로 훑어본다면, 문헌은 3부로 나뉘는데 그 제1부는 하느님의 말씀(Verbum Dei), 제2부는 교회 안의 말씀(Verbum in Ecclesia), 제3부는 세상을 위한 말씀(Verbum mundo)이다. 여기에서 이미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인 계시 헌장과는 주제의 범위가 다르다는 것이 드러난다.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의 주제에 따라, 이 문헌이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바라보고자 했다는 것으로 이 차이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헌은 사목적이고, 초점은 교회에 맞춰져 있다. 문헌의 제2부와 제3부에서는 교회가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태어나고 성장하고 살아갈 뿐만 아니라 또한 세상에게 그 말씀을 선포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강조되고, 이에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들이 상세하게 열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3부로 나뉜 「주님의 말씀」 전체는 요한 복음서 서문을 기본 틀로 하고 있다(5항).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하느님이신 말씀이 사람이 되시는 것이 제1부의 내용이라면 제2부는 그 말씀을 받아들인 이들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교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것, 말씀이 우리 가운데 머무시는 것을 말하고, 제3부에서는 아무도 본 적이 없는 하느님을 하느님의 외아드님께서 세상에 보여 주셨다는 것, 곧 세상을 위하여 그 말씀이 지니는 의미를 말하고 있다.

이렇게 교회와 또 세상과의 연관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바라보려고 하는 것은, 계시 헌장 이후의 상황을 반영한다. 지난 40여 년 동안, 한편으로는 교회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어렵게 수용했던 성경의 비판적 연구가 고도로 발전을 계속했고 정교한 기술을 발달시켰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톨릭 교회 안에서 성경에 대한 관심이 공의회 이전보다도 더 크게 늘어났고, 신자들에게 성경이 보급된 것은 물론이고 삶과 신앙 안에서 말씀이 차지하는 자리가 커졌다.

그런데 문제는, 그 둘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는 점이다. 때로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성경을 “열어” 주는 것이 아니라(루카 24,32 참조) 성경을 닫아버리는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러한 성경 연구는 때로는 전통적인 성서 이해를 잘못된 것이라고 선언해 버리고, 저자가 말하려고 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그래서 교회 안에서 성경을 읽어오고 또 지금도 읽고 있는 방식과 성서학자들이 성경을 읽는 방식 사이에 격차가 생기게 된 것이다. 이렇게 성경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신자들과 거리가 멀어질 때, 신자들의 성경 독서는 기초가 없어질 위험이 있다. 각자 나름대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면서, 기준점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은 이러한 거리를 극복하려고 하고, 하느님의 말씀이 지금도 교회 공동체 안에 “살아 있는”(히브 4,12) 말씀임을 확인하려 한다.

안소근 수녀는 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소속으로 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가톨릭 교리신학원 교수로 활동 중이다.

안소근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