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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특별기획] ‘가정사목과 복음화’ 4. 빈곤과 가정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5-02-10 수정일 2015-02-10 발행일 2015-02-15 제 2932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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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 등 생계불안에 흔들리는 가정… 긴급 사목 대상으로
IMF 이후 늘어난 실직자 이혼 등 가정 해체로 이어져 
한국사회 양극화 심화되고 피폐한 삶은 가정 존립 위협 
경제 위기 후유증 계속돼
강우일 주교 시노드 참석 후 “가난 속에서 탈출구 못찾은 많은 보금자리에 금이 가”
한국교회, 시노드 예비설문에 “물질 문화 지배받는 사회 사람들 가정 밖으로 밀어내”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시노드) 제3차 임시총회 최종 보고서는 가정 안에서의 체험이 얼마나 우리 삶에 소중한 것인지를,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전했다.

“…이미 저녁이 내리고 있습니다. 기꺼이 집에 돌아가 같은 식탁에서 깊은 애정과 주고받는 선(善)을,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성장시키는 만남을, 그리고 해가 저물지 않는 축제의 날을 선취하는 좋은 포도주를 다시 만나고 싶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은 꿈과 계획이 흩어지는 씁쓸한 저녁에 자신의 외로움과 일대일로 마주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가장 괴로운 시간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체념과 포기, 원한의 악순환 속에서 하루를 보냅니까? 얼마나 많은 집들에 기쁨의 포도주가 없고 생명의 맛이 사라졌습니까?”

주교시노드 개막 전날 밤인 지난해 10월 4일, 성 베드로 광장 전야기도에서 피력한, 교황의 단순하지만 아프게 가슴을 두드리는 이 묘사는 지난 1990년대 말 대한민국을 나락에 떨어뜨렸던 경제위기 상황을 연상케 한다. 보고서가 이어서 서술하는, ‘가정을 짓누르는 사회 현실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 ‘악몽으로 체험되는 빈곤’, ‘무관심으로 버림받은 것 같은 가정’의 참담한 현실을 한때 대한민국의 가정들은 절절하게 체험했고, 그 비극적 상황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경제위기, 대량 실업과 가정 붕괴

IMF 구제금융이 발표된 1997년 12월 3일, 1년이 조금 지난 이듬해 10월 현재 통계청이 집계한 실업률은 7.1%, 실업자는 153만6000명을 기록했다. 불완전고용을 포함하면 실업자는 200만명을 훌쩍 넘어설 것이라는 추정이었다. 평균적으로 4인 가족을 고려하면, 전 국민의 5분의 1인 800만명이 실업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에 앞서, 1998년 7월 보건복지부가 서울의 도시 노숙자 2553명을 상담, 분석한 결과는 더 놀랍다. 이들 대부분이 30~40대 남성으로 IMF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일용직 근로자(70%)였고, 상습 부랑인은 불과 6%, 사무직이나 자영업 등 화이트칼라 직장인 출신도 16%에 달했다. 94%가 IMF 이후 거리로 나섰고, 81%가 같은 기간 중에 일자리를 잃었다. 24%는 이혼, 별거 등으로 가족이 해체된 이들이었다.

경제위기의 후유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3년 뒤인 2000년, 전국에서 집계된 가출인 수는 5만621명으로 경찰청의 집계 시작 시점인 1991년 이후 처음으로 5만명을 넘었다. IMF 구제금융 직후인 1998년에 비해 22.5%나 늘었고, 특히 20세 이상 성인 가출은 25.8% 증가해 처음으로 3만명을 넘었다.

경제 위기 이후 실직자 급증으로 가장의 가출이 늘었을 뿐만 아니라 그 파장으로 다른 가족 구성원들까지 가족의 울타리 밖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이처럼 어른들이 가정을 버리자 그 직격탄은 그대로 자녀들에게 쏟아지고, 소년소녀 가장이 늘어났다. 전방위적으로 가정 해체가 확산된 것이다.

급증하는 이혼도 이에 한몫을 했다. 혼인에 대한 인식 변화와 함께 가정 경제의 악화는 이혼율을 빠르게 밀어올렸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집계에 의하면 1998년 상반기 면접 상담 4151건 중 이혼 상담 비중이 53.7%에서 59.8%로 높아졌다. 전화상담 중 절반도 이혼 상담으로 집계됐다.

빈곤 가정일수록 위기에 취약

일반적으로 가족해체의 지표는 이혼과 별거, 가족원의 가출, 자녀 양육 포기, 가족원의 자살, 가정 폭력, 신체적 또는 정신적 건강의 악화 등을 포함한다. 가장이 실직한 가정은 이러한 지표들이 광범위하게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빈궁한 가정일수록 경제 위기에 취약하고 그 결과 구조적으로나 기능적으로 해체 가능성이 다른 어떤 가정보다 높게 나타난다.

문제는 IMF 등 일정 시기 극도로 긴급했던 사회 경제적 현실이 야기한 가정의 구조적·기능적 붕괴 현상이 고착화되고 갈수록 더 심화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점이다. 전통적인 대가족 제도가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충격을 완화시켜주는 기능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현대 사회에서 보편화돼 있는 핵가족 제도 아래에서는 사실상 약간의 충격만으로도 가족의 와해가 쉽게 이뤄질 수 있다. 특히 ‘흔들리는 핵가족’에게 있어서 경제적 어려움, 실업이나 실직 등으로 인한 빈곤의 문제는 가정을 뿌리째 흔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1990년대말의 IMF 구제금융 이후 한국은 꾸준하고 지속적인 위기 탈출 노력을 기울임에 따라 가까스로 최악의 상황을 벗어났다. 하지만 이후 한국 사회는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 고착된 모습을 뚜렷하게 나타내기 시작했다. 사실상 한국 사회의 중간층을 이루고 있던 중산층 계층이 몰락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그리고 이는 곧 부의 양극화 현상을 나타낸다.

이두휴 교수(미카엘·전남대 사범대)는 경향잡지 최근(2월)호에서 가정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이 교수는 경제우선주의와 입신출세주의 교육관, 성장제일주의를 지적하면서 무한 욕망으로 자본을 확장하려는 부유층, 벗어날 수 없는 가난에 시달리는 빈곤층으로 우리 사회가 갈려 있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빈곤층의 피폐한 삶이 가정을 어떻게 위협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지적했다.

한국사회는 1997년 IMF 구제 금융 이후 2008년 전세계적인 경제 위기와 함께 다시 한 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에서는 2008년 이후의 경제 위기 상황이 오히려 더 힘들고 긴 고통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서슴치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정, 특히 빈곤으로 고통 받고 있는 가정들은 또 다시 해체의 위기에 처해 있지는 않은가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가난한 가정들 사목대안 마련

한국 교회가 지난해 주교시노드를 앞두고 교황청에 보낸 ‘예비문서 설문에 대한 한국교회 답변’에서, 이러한 어려움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경제적 고도성장을 거쳐 온 한국사회는 경쟁적이며 자본주의적 물질 문화에 지배되고 있다. 지나친 입시 경쟁과 사교육 중심 교육 환경, 맞벌이 부부의 증가, 비정규직과 조기퇴직으로 대표되는 고용 불안정, 경제적 양극화의 증가, 부실한 사회 안전망 등은 사람들을 가정 안으로 모이게 하기보다는 가정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주교시노드에 참석했던 필리핀의 타글레 추기경은 시노드를 마치고 나서 언론들과 가진 회견에서 이번 주교시노드는 이혼 후 재혼자에 대한 영성체 수여라든가 동성애 결합에 대한 토론 그 이상의 것이라고 말했다. 타글레 추기경은 특별히 아시아에서, 빈곤이 가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문제가 가장 주된 관심사였다고 분명히 말했다. 가난한 사람들, 가난한 이들이 모여 이룬 가정은 오늘날 가정사목의 가장 긴급한 배려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역시 시노드에 참석하고 돌아온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는 시노드 참석 주교들이 지적한 문제 의식들을 소개하면서 “많은 가정이 가난과 실직 등의 사회경제적 현실 속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허덕이며 살다가 보금자리에 금이 간다”고 개탄했다.

타글레 추기경이나 강 주교의 지적처럼, 그리고 따뜻한 보금자리를 잃고 고통스러워하는 가정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을 전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묘사에서 나타난 바대로, 교회는 고통 받는 가난한 가정들에 대한 사목적 대안 마련을 최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