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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교회의 가르침] (50) 베네딕토 16세 교황 회칙 「진리 안의 사랑」 (상)

박정우 신부
입력일 2015-02-10 수정일 2015-02-10 발행일 2015-02-15 제 2932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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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기아… 커져가는 부의 불균형
경제논리 떠나 형제애로 극복해야
1. 문서의 배경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세 번째 회칙이자 첫 번째 사회 회칙으로서 2009년 6월 29일 발표된 「진리 안의 사랑」은 1967년 3월 발표된 바오로 6세 교황의 「민족들의 발전」 40주년을 기념하여 준비된 문헌입니다. 회칙의 부제가 ‘사랑과 진리 안에서 이루는 온전한 인간 발전에 대하여’라고 붙어있는 것처럼 이 회칙은 「민족들의 발전」에서 다루었던 참된 의미의 인간 발전, 즉 모든 사람이 자신의 기본권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고, 한 인간으로서 온전히 자신을 실현하도록 돕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요구되는 가치와 실천을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민족들의 발전」은 1960년대에 당면했던 세계적 차원의 빈곤과 불균형, 발전 문제를 처음으로 다룬 사회 회칙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국들은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루고 부를 누리고 있었지만 신생독립국 등 개발도상국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경제 인프라와 저발전, 종속적인 무역관계로 인한 저개발과 빈곤에 따른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바오로 6세 교황은 이 회칙에서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위한 인류의 노력을 말하면서 교회가 말하는 발전은 경제적인 성장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누구나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인간 발전의 소명이 있으며, 그것은 “한 인간 전체(全人)와 전 인류의 완전한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합니다(42항).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각 개인의 타고한 소질을 개발하고 인격의 성장을 위한 책임을 고양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동체 차원에서는 상호 연대성의 원리에 따라 부국이 빈국을 도와주고, 사회정의의 의무에 따라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에 공정한 통상관계를 이룩하고, 보편적 사랑의 의무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 등을 환대하고 민족 차별 의식을 버리며 민족 간에 문명의 대화를 나누라고 촉구합니다. 회칙은 결론에서 “발전은 평화의 새 이름”(76항)이라고 선언하여 실질적 평화를 위해서 요구되는 가난의 극복과 인간의 성장을 위한 발전의 중요성을 드러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7년에 발표한 「민족들의 발전」 20주년을 기념하는 사회 회칙 「사회적 관심」에서 개발도상국의 빈곤, 억압, 차별이 지속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동·서양 진영의 정치적, 군사적 대립, 무기 경쟁에 투입되는 자원을 빈곤 퇴치를 위해 사용할 것과, 발전을 갈망하는 민족들을 위해 선진국들이 연대 의식을 가질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진리 안의 사랑」은 1991년에 나온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회칙 「백주년」 이후 18년이 지나 처음 나온 사회 회칙이기에 그 이후 더욱 가속화된 기술의 발전,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금융과 무역구조의 변화 등과 그로 인한 개발도상국이 겪는 위기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교황은 구체적으로 기존의 이익추구라는 경제논리를 넘어서 도덕성과 형제애를 드러내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활동을 제안하며, 참된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은 진리와 사랑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마음을 향하고 열려있는 그리스도교의 인본주의라고 결론 맺습니다. 이제 자세히 회칙의 구성과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2. 「진리 안의 사랑」이라는 제목의 뜻

서론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진리 안의 사랑」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교황은 사회교리의 핵심은 사랑인데, 이 사랑은 이성과 신앙의 빛인 진리에 비추어 이해하고 실천할 때만 참되다고 강조합니다. 지금까지 사랑의 의미가 오해되고 공허해져서 결과적으로 윤리적인 삶과 멀어지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진리가 없다면 사랑은 감상으로 변하고 주관적인 감정이나 의견에 사로잡히게 되기에 “오직 진리 안에서만 사랑은 밝게 드러나고 올바르게 실천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2-3항). 교황은 진리 안의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주관적이고 역사적이라는 한계를 초월하는 보편적 복음의 진리를 따르는 사회를 건설할 수 있고 참되고 온전한 인간 발전도 이룰 수 있다고 말합니다(4항). 따라서 이 회칙 제목의 강조점은 ‘진리’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황은 “발전, 사회복지, 인류를 괴롭히는 심각한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만족스러운 해결책 추구, 이 모든 것에 이 진리가 필요”하며, “더욱 필요한 것은 이 진리를 사랑하고 드러내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5항).

교황은 ‘진리 안의 사랑’이 사회 발전을 위한 도덕적 행위로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형태는 ‘정의와 공동선’이라고 말합니다. 각자에게 정당한 몫을 돌려준다는 고전적인 뜻의 ‘정의’는 사랑에 본질적으로 내재하는 것으로서 사랑의 ‘최소 척도’이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개인과 민족의 합법적인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은 사랑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정의입니다(6항). 공동선은 “자기자신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에 속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추구하는” “‘우리 모두의 선’입니다.” 공동선은 법과 제도를 통해 모두가 함께 자신을 완성하도록 도와주는 이웃 사랑의 방법이므로, 점점 세계화되는 사회에서 공동선을 위한 노력은 인류 가족 전체를 포함합니다(7항).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경제 논리를 넘어서 도덕성과 형제애를 드러내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활동을 제안했다.

3. 우리 시대의 새로운 문제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제1장에서 「민족들의 발전」의 메시지를 요약하며 결론적으로 바오로 6세 교황이 지적한 저개발의 첫 번째 원인은 물질이 아니라 연대성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과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주지 못하는 성찰의 부족, 그리고 “개인과 민족 간의 형제애 부족”이며 이를 위한 “개혁의 절박성”을 강조합니다(19-20항). 그리고 바오로 6세 교황이 밝힌 ‘발전’은 구체적으로 기아, 빈곤, 전염병, 문맹으로부터의 구제, 민족들의 평등한 세계 경제에의 참여, 민족들의 연대 의식, 민주주의 체제의 강화를 의미한다고 지적합니다(21항).

제2장에서 교황은 이제 우리 시대에 더해진 새로운 문제들을 성찰합니다. 교황이 바라보는 우리 시대의 문제들은 어떠할까요? 부국과 빈국의 경계선이 명확치 않은 가운데 부가 증가하면서 불평등도 더욱 늘어납니다. 새로운 형태의 빈곤이 늘어나는 가운데 빈국에서 일부 소수계층은 엄청난 부를 누립니다. 세계화로 인한 상호의존이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거대 다국적 기업은 노동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국제원조도 많은 경우 무책임한 행위로 그 고유 목적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일부 부국은 의료 분야 등에서 지나치게 지적재산권을 주장하고 있고, 일부 빈국에서는 발전을 저해하는 문화와 행동규범이 존속합니다. 세계화된 시장은 부국이 상품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빈국에 생산기지를 세우면서 경쟁력 강화를 추구하는 댓가로 빈국의 사회보장제도가 축소되고 노동자의 권리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노동의 유연성으로 인한 근로 조건의 불확실성과 실업으로 인한 고통도 발생합니다. 여전히 빈국에서 물과 식량의 부족 등 기아와 이를 발생시키는 구조적인 문제도 심각합니다. 문화적 평준화, 강요된 피임과 낙태 확산, 안락사와 같은 생명경시, 종교 자유를 억압하는 테러, 종교 무차별주의와 실천적 무신론도 인간 발전을 방해하는 요소입니다. 이런 현실에 대해 교황은 어떤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안하고 있을까요?

4. 인간발전을 위한 개선 방향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우리 시대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지적하는 가운데 부분적으로 개선방향을 언급합니다. 변화된 세계 환경에 맞게 공권력의 권한과 역할을 재평가하는 것, 노동자의 권리를 수호하는 노동조합을 장려할 것, 실업을 막기 위해 정부는 자본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가치를 상기할 것, 문화의 획일화와 절충주의에 맞서 참다운 문화간 대화를 할 것, 식량 문제의 구조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농업기술의 개발과 보급에 투자할 것, 식량과 물에 대한 권리를 기본적인 생명권으로 인정할 것, 경제 위기 해결을 위해 부국은 빈국과 연대할 것, 생명에 대한 개방성을 키우고 모든 민족과 개인의 생명권을 존중할 것, 종교 자유의 권리를 보장할 것, 다양한 차원의 인간 지식의 상호작용을 촉진하고 그 지성이 사랑으로 충만해지게 할 것, 지나친 부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안정된 고용보장을 최우선으로 삼을 것 등입니다.

사실 이러한 해결책들은 원론적이고 당위론적인 내용으로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곧 이어서 ‘진리 안의 사랑’을 바탕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원리를 이끌어냅니다. 그것은 바로 ‘무상성(無償性)의 원리’와 ‘형제애’입니다.

박정우 신부는 1991년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사제품을 받았다. 미국 뉴욕 포담대학교에서 사회학(종교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2004년부터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종교사회학을 강의하고 있다. 현재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운영위원, 주교회의 여성소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중이다.

박정우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