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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교회의 가르침] (47) 베네딕토 16세 교황 권고 「사랑의 성사」 (하)

손희송 신부
입력일 2015-01-20 수정일 2015-01-20 발행일 2015-01-25 제 2929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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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일터에서…
‘쪼개진 빵’으로 봉헌의 삶 살아야
사진 박원희 기자
성찬례는 믿고 거행할 뿐만 아니라 살아야 할 신비다. 성찬의 양식을 받아 모시는 그리스도인은 그 양식의 힘으로 신비롭게 변화되어 새로운 삶, 곧 ‘성찬적 모습’의 삶을 살아야 한다.

성찬적 모습의 삶

성찬례의 힘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사도 바오로가 말한 대로 하느님께 “합당한 예배”(로마 12,1), 곧 “온 교회와 일치하여 바치는 완전한 자기 봉헌”(70항)을 드린다. 이런 자기 봉헌의 삶은 “주님의 날에 따라 살아가는” 삶으로서, “그리스도께서 가져다주신 해방을 인식하며 살아가고 우리 삶을 하느님에 대한 지속적인 자기 봉헌이 되게 함으로써, 깊이 쇄신된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승리가 온 인류에게 온전히 드러나게 한다.”(72항)

자기 봉헌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와의 친교만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와 친교도 더욱 깊게 한다. 따라서 성찬례에 기반을 둔 삶은 교회적이고 공동체적인 모습을 지녀야 한다.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도록, 그리하여 서로서로의 지체가 되도록 부름 받은(1코린 12,27 참조) 우리는 존재론적으로 세례에 바탕을 두고 성체를 통하여 자라나는 실재, 우리 공동체 생활 안에서 가시적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실재”다(76항).

성찬례에 뿌리를 둔 삶은 일상 전체를 포괄하는 성찬 영성, “곧 ‘성령에 따라’(로마 8,4 이하 갈라 5,16.25 참조) 사는 삶”(77항)으로 자라나야 한다. 이 성찬 영성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자신이 변화되도록 하면서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이지 분별”(로마 12,2)하는 것을 의미한다(77항). 성찬 영성은 근본적으로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께 기준을 두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 안에서 그 “문화들과 나누는 대화”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러한 문화에 대한 도전이 되기도 한다.”(78항)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야 할 성찬 신비

교회의 구성원 각자는 성찬례에 바탕을 두고 자신이 받은 고유한 소명을 실현해야 한다. 평신도들은 성찬례가 자신의 일상생활에 더 깊게 자리 잡게 함으로써 일터나 사회 안에서, 특히 평신도들의 고유 영역인 가정에서 설득력 있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문헌은 “가정들에게 성체성사에서 영감과 힘을 얻으라고 격려”하면서, “남녀의 사랑, 생명에 열린 자세, 그리고 자녀 양육은 삶을 변화시키고 삶에 그 충만한 의미를 부여하는 성찬례 고유의 힘이 드러나는 탁월한 분야들”이라고 역설한다(79항).

성찬례 거행의 임무를 지닌 사제의 영성은 본질적으로 성찬의 성격을 지닌다. 사제는 성찬례를 통해서 자신의 소명에 더욱 굳건해진다. “충만한 믿음과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거행하는 미사는 사제가 그리스도를 더욱 닮게 하고 자기 소명을 더 굳건히 하기 때문에 매우 심오한 의미에서 양성의 성격을 띤다.”(80항) 또한 수도자들의 증거의 삶, 특히 그들의 봉헌된 동정은 성찬의 신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봉헌된 동정은 교회가 완전하고 풍요로운 충실성으로 자기 신랑으로 받아들인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헌신한다는 표현”으로서, “성찬례 안에서 그리스도께 완전히 헌신하기 위한 영감과 자양분을 얻는다.”(81항)

성찬의 신비를 살아가려면 도덕적 회개, 곧 “인간 자신의 나약함을 인식하면서도 자신의 존재 전체로 주님의 사랑에 응답하고자 하는 진심 어린 바람과 노력”(82항)이 요구된다. 또한 개인적 차원만이 아니라 공적 차원에서도 성찬에 맞갖게 살아야 한다.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예배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순전히 개인적인 행위가 결코 될 수 없고, 신앙을 공적으로 증언하도록 요구한다. 이는 물론 세례 받은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지만, 특히 사회적 정치적 지위 때문에 근본 가치들에 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이들에게는 의무로 지워진다. 이러한 가치에는 임신[受精]에서부터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 생명의 존중과 수호, 남녀의 혼인으로 세워진 가정, 자녀 교육의 자유, 모든 형태의 공동선 증진에 있다.”(83항)

세상에 선포되어야 할 성찬 신비

성찬의 신비는 교회 울타리를 넘어 세상에 선포되어야 한다. “우리가 성체성사로 거행하는 사랑은 우리 혼자만 간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랑은 본성상 모든 이와 나누어야 한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 곧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을 믿는 것이다. 따라서 성찬례는 교회 생활뿐 아니라 교회 사명의 원천이며 정점이다.”(84항) 그러므로 선교적 노력은 그리스도인 삶의 성찬적 모습에 필수적인 부분이다.

성찬례는 하느님의 사랑을 삶의 증언을 통해 세상에 선포하도록 인도한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 주신 그 선물 앞에서 경이로움을 체험한 우리는 삶에 새로운 자극을 받고 그분 사랑의 증인이 되고자 노력한다. 우리 행동과 말과 존재 방식을 통하여 절대 타자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시고 통교하실 때 우리는 그 증인이 된다.”(85항)

세상에 주어야 할 성찬 신비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구원의 희생 제사를 기념하는 성찬례는 모든 이를 위한 것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이에게 다른 이를 위하여 ‘쪼개진 빵’이 되어, 더욱 정의롭고 형제애가 넘치는 세상의 건설을 위하여 헌신하도록 촉구한다.”(88항) 주님께서는 성찬례 안에서 형제적 친교를 굳건히 해주시고, 대화와 정의 실현에 마음을 열어 서로 화해하도록 촉구하시는데, 모든 신자들이 이에 응답하여 평화와 정의를 증진시키는 참된 일꾼이 되어야 한다. “성찬례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폭력과 전쟁, 그리고 오늘날 특히 테러리즘, 경제적 부패, 성적 착취로 얼룩진 이 세상에 평화를 이룩하고자 노력하여야 한다.”(89항)

또한 성찬의 신비는 점점 더 심해지는 빈부 격차를 고발하고 극복하도록 촉구한다. “진리의 양식은 우리에게 불의와 착취 때문에 사람들이 기아로 죽어 가는 비인간적인 상황을 고발하도록 요구하고, 또 우리에게 새로운 힘과 용기를 주어 우리가 끊임없이 사랑의 문명에 봉사하게 한다.”(90항) 문헌은 이렇게 성찬의 신비가 개인의 성화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그릇된 관계들의 개선을 위하여 용감하게 일하도록 고무하고 촉진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교구와 본당 차원에서 사회 교리를 가르치고 증진할 필요성을 역설한다(91항).

성찬의 신비는 사회 구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피조물과 환경 보호를 촉구한다. 성찬례 중에 사제는 빵과 포도주 위에 축복과 청원 기도를 바치는 데, 이 부분은 “이 세상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도록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며, “세상이 하느님께서 세우신 좋은 계획 전체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해줌으로써 “창조된 세상을 보호하는 활동에 책임 있게 투신”하도록 촉구한다(92항).

맺는 말

「사랑의 성사」의 결론 부분은 교회의 정화와 쇄신에 일조한 수많은 성인들은 성체 신심에 힘입어 진정한 삶을 살았다는 점을 역설한다(94항). 실상 성찬 신앙은 장구한 교회 역사에서 교회의 쇄신과 성화에 원동력이 되었는데, 이런 점은 문헌의 시작 부분에서도 강조된다. “성찬 신앙이 더욱 활기에 넘칠수록”, 하느님의 백성은 “교회 생활에 더욱 깊이 동참하여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맡기신 사명에 굳건하게 투신할 수” 있었고, “모든 중요한 개혁은 주님께서 성찬례를 통해 당신 백성 가운데 현존하신다는 믿음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과 어느 모로든 연결되어” 왔다(6항). 성찬의 신비는 교회를 정화하고 쇄신하는 데에 ‘최선의 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신앙의 활성화와 교회의 쇄신이 시급하다는 요청을 받고 있는 한국천주교회는 좀 더 성찬 신앙과 성찬 영성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손희송 신부는 1986년에 서울대교구 사제로 서품됐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한 후에 용산 본당 주임,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서울대교구 사목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손희송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