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천주가사 하느님을 노래하다] (9) 사랑가

강영애 교수(데레사·한양대)
입력일 2015-01-13 수정일 2015-01-13 발행일 2015-01-18 제 2928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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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가락으로 풀어낸 ‘지극한 하느님 사랑’
정확한 시기 저작자 알 수 없어
‘어화우리 벗님네야’ 시작구
당시 전통 노래들 특징 반영
천주가사의 토착화 보여줘
‘사랑가’는 하느님의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이며, 경상도에서 채집되었다. 채록한 최필선은 그의 논문에서 1910년 김창준이 지은 ‘상애가’(相愛歌)와 유사하다고 밝혔다.(최필선, 1989) ‘상애가’는 경향신문 1910년 5월 13일자에 보이는 천주가사이다. 상애가와 유사하다고 본 이유는 사랑이란 주제가 흔하지 않던 그 시대에 하느님의 사랑을 권고하는 주제, 4·4조의 율격, 그리고 시작문구가 공통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가’는 중간중간 노랫말이 누락되었고, 정확한 시기와 저작자를 알 수 없는 곡이다.

상애가는 “어화우리 동포님네 상애가를 드러보소 우리천주 주신성품 변치말고 잘지키며 효도충신 예의염치 사람마다 가르치고 불법행위 못된행실 하지마라 경계하여…”(김영수, 2000)로 시작되는 4·4조 4음보 32구로 된 천주가사이다.

사랑가에서 보이는 ‘어화우리 벗님네야’의 시작문구는 앞서 살펴보았던 천주공경가(어와세상 벗님네야), 삼세대의(남녀교우 형님네야), 사향가(어화우리 벗님네야)뿐만 아니라 상애가(어화우리 동포님네)에서도 보인다. 이는 조선시대 가창되던 시조, 가사, 잡가, 단가(판소리를 부르기 전에 목을 풀기 위해 부르는 짧은 노래) 등 전통적인 노래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기에 천주가사의 한국화(토착화)양상을 살필 수 있는 부분이다.

한국화양상은 천주가사를 수록하고 있는 필사본에서도 나타나는데, 여러 편의 천주가사 속에 민요인 농부가(만천유고)나 단가(홍방지거가첩)가 함께 수록되어 있는 것이다. 서민들의 세속적인 노래들이 천주가사와 함께 수록된 것은 이질적인 서구의 종교사상을 한국적인 문화 속에 용해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서학을 반대하던 동학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동학가사에는 ‘어화세상 사람들아’로 시작하는 문구가 100여 편 중 53편에 해당한다고 한다.(정선자, 2001) 이렇듯 천주가사는 한국적인 토양에서 서구적인 종교사상과의 융합으로 이루어낸 우리의 전통성가인 것이다.

11소절로 된 사랑가의 악보에는 부분적으로 노랫말이 누락되었다. 노랫말과 악보의 앞부분은 다음과 같다.

악보 ‘사랑가’.

어화우리 벗님네야 사랑노래 불러보세 / 사랑없이 살수없고 사랑없이 지낼소냐

귀한것이 사랑일세 사랑이란 무엇이냐 / 이세상의 모든사람 내몸같이 생각하고

내몸같이 보살피고 자기역량 다하여서 / …(누락)… 천주내주…

두가지가 사랑일세 …(누락)… 사랑이라 / …(누락)… 천주님이 우리에게

내려주신 …(누락)… / 이사랑을 생각하니 천주님의 사랑으로

아담원소 …(누락)…

하느님의 사랑을 주제로 노래하는 ‘사랑가’를 비롯한 천주가사는 한국적인 토양과 서구적인 종교사상의 융합으로 이뤄낸 우리의 전통성가다.

‘사랑가’는 12/8박자 22마디이며, 주요리듬은 ♪♪♪♩. 이다. 미 라 도의 3음으로 구성된 메나리토리의 노래로 볼 수 있다. 선율유형은 A형인 라-도-라-미의 기본 선율형이 10회, 미 추가형이 7회, 한 두 음의 추가·생략형, 리듬의 변화형이 있다. 라와 도로 읊조리는 단순한 형태가 가창자의 음악적인 취향에 의해 음과 리듬이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첫마디에는 6도(미-도)의 도약진행이 나타난다.

천주가사는 서구편향의 시각을 극복하고 우리고유의 민속, 관습, 신앙형태를 종합한 한국화 된 신학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김영수, 2003) 음악적인 면에서는 전국에서 발굴된 천주가사가 민속악에서처럼 그 지역의 특징을 반영한 노래도 있지만, 대부분 정악의 스타일로 부르는 경향이 있다.

정악의 특징은 ‘낙이불류(樂而不流) 애이불비(哀而不悲)’로 요약된다. 이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악성 우륵의 말이다. 즉 음악이란 즐겁긴 하나 경망스럽게 흥청대지 않아야하고, 슬프지만 몸과 마음이 상할 정도로 비통하면 안된다는 의미이다. 이후 정악(아악)이란 내면의 감정을 스스로 승화시킨 절제된 미와 품격을 지닌 우아한 음악이며, 민속악은 민중들의 감정을 솔직하게 밖으로 표출시킨 자유로운 음악으로 사용되었다.

천주가사는 종교음악이지만, 4·4조의 율격을 가진 문학적인 특징과 전통음악적인 특징을 공유하면서 생성된 것이다. 이는 정악의 정신과 가사의 낭송방식이 가창자들의 선호도에 따라 취사선택 되었고, 서양의 종교인 가톨릭과 융합되면서 천주가사만의 고유성으로 정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천주가사에 정악의 특징이 수용된 이유는 첫째, 신앙선조들의 모든 감정은 하느님께 의탁하는 순간 정화 되었으며, 둘째, 교리실천을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불려야 했고, 셋째, 교우들의 신심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강영애 교수는 음악인류학 박사로, 한양대와 교회음악대학원 강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대전교구, 마산교구 가톨릭상장례봉사자교육 전문강사로도 활동중이다.

강영애 교수(데레사·한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