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세상 책세상] (24) 감성능력

김용은 수녀
입력일 2015-01-07 수정일 2015-01-07 발행일 2015-01-11 제 2927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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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감수성’이 절실한 시대
‘감성’ 통한 책 읽기 이뤄질 때
글의 깊은 의미 공감하게 되고
삶의 변화 이끌어 낼 수 있어
“우리 몸속 깊은 곳엔 영혼이 깃들어 있어요. ……. 우리 영혼 속 한가운데는 새가 한 마리 살고 있어요.” 미칼 스누니트의 「영혼의 새, Soul Bird」의 시작 글이다. 여러분들은 어떤 느낌이 드는가? 어떠한 이미지가 연상되는가? 만약 이 글을 읽는 순간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자신의 감성능력을 믿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대학생들에게 이 글을 잔잔한 음악과 함께 파스텔 톤의 영상을 보여준 적이 있다. 반응이 어떠했을까? 안타깝게도 몇몇 학생들이 “새가 어떻다는 거지?” “무슨 소리야?”라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게다가 적지 않은 젊은이들은 “영혼”이나 “새”라는 말조차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아직 청춘인데 벌써 감성이 메말라가는 것일까? 상징과 비유를 읽어내는 연습이 부족한가? 행간의 의미를 해독할만한 여유가 없어서일까? 상상력의 부재일까?

많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정서에 대한 이해가 되어있지 않은 채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자신에 대한 심리적 통찰은 접어두고라도 감정조차 알아채지 못해 자신의 느낌을 제대로 표현하기도 어려워한다. 더욱이 스펙터클하고 스피디한 상업영화에 익숙해서인지 느리고 여백 있는 감성적인 영상을 보여주면 일단 지루해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워하며 상징을 읽는다는 것은 더욱더 힘들다.

우리는 지성만이 아닌 감성으로 책을 읽는다. 감성이 있어 문자텍스트에 생명을 불어넣어 상상을 자극한다. 지성은 머리로 아는 것이라면 감성은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할까? 사람과 사물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은 상황에 공감하고 보살피는 부드러운 감정을 열어주며 깨달음의 과정에 이르게 한다. 감성은 스스로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주고 용기 있게 행동하게도 해준다. 감성은 이웃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마음을 열어준다.

감성능력이 발달하지 못하면 책 속의 내용은 자신의 삶과 무관한 그저 소설이고 동화일 뿐이다. 책 속의 깊은 상징적 의미와 삶의 고뇌가 자기 정서에 들어오지 못하면 문자는 그저 박물관이나 동물원에 있는 구경거리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텔레비전 뉴스나 SNS에서 보여주는 엄청난 재앙이 담긴 영상도 스크린에 갇힌 하나의 정보일 뿐이다.

감성능력은 곧 마음의 능력이다. 마음의 능력은 타자의 희로애락이 자신의 마음으로 흘러들어와 상상하고 공감하게 한다. 그래서 감성이 발달되지 않으면 많은 책을 읽고 지식을 산더미같이 쌓아놓지만, 삶의 변화가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이들에게 고통받는 사람의 눈물은 고작 눈물샘에서 나오는 분비물 정도로 인식될지도 모른다.

어느 학자는 “문학교육이 최고의 인성교육”이라고 주장한다. 문학읽기는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상상력과 서로 다른 위치에서 바라보고 배려하는 어느 정도의 훈련을 할 수 있는 매개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경쟁 속에 떠밀려 살아가는 우리들 특히 우리 젊은이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문학적 감수성일지도 모르겠다. 바쁘게 지나가다가도 꽃 한 송이에 멈춰 미소 짓고, 아름다운 단어 한마디에 감탄하고, 책 한 줄에 한동안 멈춰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 흘릴 수 있는 여유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필요한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용은 제오르지아 수녀(살레시오수녀회)는 미국 뉴욕대(NYU) 대학원에서 미디어생태학(Media Ecology)을 전공하고, 버클리 신학대학원(GTU, Graduate Theological Union)의 살레시오영성센터(ISS)에서 살레시오 영성을 수학했다. 현재 부산 ‘살레시오 영성의 집’ 관장을 맡고 있다.

김용은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