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현대의 봉헌생활 (1) 왜 ‘봉헌생활의 해’인가?

차진숙 수녀(성가소비녀회 총장)
입력일 2015-01-06 수정일 2015-01-06 발행일 2015-01-11 제 2927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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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서원, 첫 마음으로 돌아가 ‘봉헌의 기쁨’ 다시 뜨겁게
현대 사회와 교회 안에서의 봉헌생활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봉헌생활의 해’가 시작됐다. 봉헌생활의 해 개막에 앞서 특별 좌담을 마련한 바 있는 가톨릭신문은 한국 남자 수도회 사도 생활단 장상 협의회, 한국 천주교 여자 수도회 장상 연합회와 함께 올 한 해 동안 특별 기획을 연재한다.

이 시대의 ‘예언자’로서 살아가는 봉헌생활자들의 삶을 배워보고자 시작되는 특별 기획은 ‘현대의 봉헌생활’과 ‘르포-봉헌된 삶’으로 진행된다. ‘현대의 봉헌생활’은 전문가 칼럼과 종합 취재를 통해 봉헌생활의 현대적 의미는 물론 전통적인 가르침과 공의회의 가르침, 쇄신을 향한 역사 등을 알아본다. ‘르포-봉헌된 삶’은 다양한 카리스마에 따라 살아가는 봉헌생활의 현장을 찾아가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심층 르포로 구성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왜 지금 ‘봉헌생활의 해’를 선포했을까?

봉헌생활의 해는 교회헌장과 수도생활의 쇄신에 관한 교령 「완전한 사랑」 반포 50주년을 기념하여 선포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봉헌생활자들에게 예언자적 증언으로 ‘세상을 일깨우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가톨릭교회는 총체적인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힘들고 민감한’ 시기, 어두운 밤’과 같은 위기의 순간에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봉헌생활의 해’를 선포함으로써 봉헌생활자들이 용기 있는 복음적 결단으로 세상을 일깨워, 교회가 새롭게 활기를 되찾게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교회에 다시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야할 절실함을 느끼셨고, 교회 쇄신을 위해서 교회의 심장에 자리하고 있는 수도자들이 먼저 복음의 원천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보셨습니다. 따라서 본질적인 삶을 점검하고, 복음적 열정과 담대함으로 이 시대의 예언자가 되기를 바라시며 ‘봉헌생활의 해’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봉헌생활, 기쁘지 아니한가!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기쁨은 봉헌의 아름다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아름답기 때문에 기뻐하고, 모든 이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쁨으로 따르라는 것입니다. 교종께서는 삶의 변두리로 나가야 하는 사명의 재촉을 받는 중에도 관상의 차원을 촉진하고, 그리스도와 더욱 밀접한 일치를 이루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각 개인의 체험을 통한 확신이 없으면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충실히 따르는 사람만이 성령의 기쁨을 전할 수 있습니다. 기쁨이 없다는 것은 죽은 것과 같습니다. 교종께서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건망증’에 걸릴 수 없다며 끊임없이 부르심의 원천으로 되돌아가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원천으로 돌아가 생명의 원천이신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을 다시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는 존재를 통해 체험되며 철저하게 뿌리로 내려갈 때, 그 안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기쁨의 뿌리는 영적 충만함입니다. 기쁨의 뿌리가 약화된 것은 사도직에서 해야 할 많은 일들로 인해 주님 말씀을 경청하고 그 안에 머무는 삶이 소홀해지고, 주님을 만난 첫 부르심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봉헌생활자들은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복음적 선택을 하였습니다. 봉헌생활자들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모범을 따라 세상 곳곳에서 국가와 교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 그리스도교 신앙을 갖지 못한 곳에서 일했습니다. 가난한 곳에서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였고 차별받는 이들의 권리를 위해 헌신하였으며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그들을 위해 예언적 목소리를 내며 증거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봉헌생활자들이 시대에 적응하고 수많은 세상의 요구에 응답하다 보니, 사도직 안에서 하느님과의 내적 일치를 이루는 깊은 관상을 살아가기 보다는 외적투신에 치중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사도직이 봉헌생활로 정의되거나, 세상에서 활동하는 관상가가 아니라 전문가들이 되어 세상의 가치에 편승하게 되었고, 하느님 나라의 예언직 수행과 복음의 가치에서 점점 멀어지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교회와 수도회의 구조적인 문제 또한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도 수도회도 복음 정신과 맞지 않는 구조는 전면적으로 검토하고 개혁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와 수도생활의 제도화에서 오는 무력감은 우리의 정신을 소모시키고 비전을 흐리게 합니다. 낡은 패러다임, 시대에 따른 카리스마의 새로운 해석과 적용, 비전 제시가 되지 않을 때 봉헌생활자들은 정체성과 삶의 의미와 기쁨을 상실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봉헌생활자들이 복음적 열정으로 이 시대의 예언자가 되길 바라며 지난해 11월 30일 ‘봉헌생활의 해’를 선포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16일 충북 음성 꽃동네 사랑의 연수원에서 수도자들과 만남을 갖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봉헌생활의 해, 어떻게 보내야 할까?

먼저 지난 50년 동안 베풀어주신 은총을 기억하고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회심과 은총의 이 시기에 주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셨는지 기억하며 주님께 충실하게 머물면서 기쁨의 여정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또한 봉헌생활자들의 양성 패러다임을 점검해야 합니다. 수도회의 미래와 봉헌생활의 질은 양성에 달려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세계여자수도회 총장들에게 수도회의 양성에 대한 책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수도회들은 봉헌생활의 핵심과 깊이를 규명해 내는 노력과 시대에 맞는 양성을 고민하고 양성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사도적 수도회들은 기능인을 양성해 왔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교종께서는 양성에 있어서 관리자나 경영인을 양성하지 말고, 하느님 백성들을 돕기 위한 여정의 동반자를 양성하라고 하셨습니다.

개인은 물론 수도회 차원에서도 봉헌의 삶이 제대로 숨을 쉬고 있는지? 아니면 천식(Asthma)에 걸린 것은 아닌지 봉헌생활의 질(quality)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수도회 차원에서는 복음과 카리스마에 비추어 모든 행정은 예언직과 함께 가고 있는지 돌아보고 평가하는 자기정립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봉헌생활에는 많은 문제들이 따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느님의 창조 목적 안에서 하느님이 베풀어주신 자비와 은총을 기억하고 미래를 탐구하는 희망의 예언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봉헌생활자들은 새로운 선택을 위해 카리스마에 집중하고 하느님만을 추구하며 새로운 시대의 전망들과 표징들을 탐구하는 창조적인 도약을 해야 합니다.

봉헌생활자들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깊은 신비와 관상적 차원을 회복하고 복음의 원천으로, 그리스도를 철저하게 따르는 삶으로 돌아가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관상은 수도생활의 핵심으로 예언자로서의 식별 능력을, 시대의 표징을 읽는 직관력을 키워줍니다. 활동 중에 관상을 하며 우리가 처한 모든 현실상황을 복음의 빛으로 식별하고 도전하는 삶을 살고, 세상과 소통하는 지속적인 자기쇄신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봉헌생활자들은 사명을 우주적 차원에서 의식하고 통합해야 합니다. 창조의 원천으로 돌아가 우주적 관상을 하며, 창조된 세상만물을 형제자매로 끌어안는 통합된 삶으로 전 지구적 차원에서 시대적 상황과 요청을 알아보고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선택과 창조적으로 응답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모든 수도회가 파괴되고 상처 입은 지구생태계와 인류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특히 고통 받는 이들의 권위 회복을 위해 마음을 열고 연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구체적인 현실을 알고 창조적으로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전략을 세우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봉헌생활의 해를 2015년만이 아니라 영원한 봉헌생활의 해를 위해 오직 하느님 안에서 그리스도만을 갈망하고 따르며 하느님에 대한 열정과 인류와 생명에 대한 열정, 선교에 대한 열정으로 용기를 가지고 예언의 새로운 시대를 희망하며 우리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차진숙 수녀(성가소비녀회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