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성경 속 나는 누구인가 (28) 룻은 누구인가

신교선 신부,
입력일 2014-12-09 수정일 2014-12-09 발행일 2014-12-14 제 2923호 18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룻기’는 넉 장으로 된 아주 짧은 성경이다. 룻기 저자는 옛이야기를 전해주는 할머니처럼 구수하게 말문을 연다.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에, 나라에 기근이 든 일이 있었다. 그래서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한 사람이 모압 지방에서 나그네살이를 하려고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1,1).

잠시 룻기 저자가 사용하는 표현에 주의를 기울여본다.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에…”(1,1). “옛날 이스라엘에는…”(4,7). 이러한 표현을 볼 때 실상 룻기가 집필되던 시대에 이르러서는 이미 판관시대가 먼 옛날이 되었음을 엿보게 된다.

룻기는 판관기에서처럼 위인이나 영웅들이 출현하여 특출한 지혜와 힘으로 난세를 헤쳐 나가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평범한 가정 이야기다. 남성 중심의 고대사회 안에 여인들 중에서도 천민 취급받던 보잘것없는 과부들의 이야기다. 룻기를 읽을 적마다 우리 마음은 싱그럽고 따뜻해진다. 그래서 이 책을 구약 설화문학의 백미라고 부른다.

룻기의 주인공은 ‘룻’(‘애정, 여자친구’를 뜻함)이라는 여인이다. 룻은 누구인가? 그녀는 고향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 지방으로 이주해간 나오미(‘나의 사랑스러움’을 뜻함)의 며느리다. 나오미와 남편 엘리멜렉(‘나의 하느님은 임금님’이란 뜻)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첫 아들 이름은 마흘론(‘질병’이란 뜻)이고 둘째 아들은 킬욘(‘허약’을 뜻함)이었다. 마흘론은 모압 출신 룻을 아내로, 킬욘도 모압 출신 오르파를 아내로 맞이했다. 불행하게도 두 아들 모두 자녀 없이 이국땅 모압에서 죽는다. 나오미는 모압 땅에 정착한지 10년 만에, 자신 뿐 아니라 두 며느리마저 홀몸이 된 처지에서 고향 베들레헴으로 귀향하게 된다.

나오미와 두 며느리는 늘 서로 사랑해왔다. 시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졸라대는 두 며느리! 결국 오르파는 축복을 받고 친정으로 돌아가지만 룻은 시어머니에게 그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애정과 효성을 고백한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룻 1,16).

가슴을 찡하게 해주는 고백이다.

두 여인은 베들레헴에 돌아온다. 때마침 보리 수확 철이었다. 이삭줍기에 나선 룻, 그녀는 그 지방 유지 보아즈의 눈에 들게 된다.

또 나오미의 도움으로 그와 혼인하게 된다. 실은 종족보존을 중시하던 당시 가장이 후손 없이 죽게 되면 ‘구원자’가 그 부인을 아내로 삼아 그에게 후손을 낳게 되어있었다(참조: 룻 3,12 4,5.10). 첫 번째 구원자가 구원 의무를 포기하여 결국 보아즈가 룻을 아내로 맞이한다.

보아즈의 아내 룻은 아들 오벳을 낳는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이사이는 다윗을 낳게 된다. 모압 출신 룻이 이스라엘 최고의 임금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된 것이다.

룻기에서 숨길 수 없는 바는 주님의 이끄심이다. 룻기의 주인공은 나오미의 며느리 룻이 틀림없지만 궁극적 주인공은 주 하느님이시다. 그분 섭리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과부 룻과 보아즈 가문에서 다윗을 낳게 해주신 주님께서, 그 후손에게서 온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하시니 이 모든 일이 우연이 아니라 그분 섭리와 그에 부응하는 인간의 노력으로 이해되지 않는가!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마태 21,9)

신교선 신부는 1979년 사제수품 후, 스위스 루체른 대학교에서 성서주석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원과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를 역임, 현재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와 신앙교리위원회 위원, 인천 작전동본당 주임으로 사목 중이다.

신교선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