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세상 책세상] (21) 지적 무기력

김용은 수녀
입력일 2014-12-09 수정일 2014-12-09 발행일 2014-12-14 제 2923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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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속에 ‘머리’를 두고 다니는 시대
스스로 기억하는 과정 없이
컴퓨터가 모든 것 대신하면서
직접 체득하는 지적 의욕 상실
요즘 고속열차를 타고 여행을 다니다 보면 시간소모는 덜 되지만 몸의 피곤함은 더해지는 느낌이다. 평소 몸이 움직이는 속도의 주기와 맞지 않아 기운이 더 소모되는 것은 아닐까?

사실 신기술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많은 경우 내 몸의 실제 속도보다 빠르게 일 처리 하는 것에 익숙하다. 자동차가 그러하고 청소하고 요리하고 빨래하는 모든 기계의 속도가 그러하다.

일찍이 미디어학자인 맥루한은 테크놀로지는 우리 인간의 신체와 감각을 확장해주는 도구라고 하였다. 지금 이 순간 원고를 쓰면서도 연필로 쓰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키보드 위를 오가며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무조건 키보드 위에 손을 얹어야 생각이 날 정도이다. 이제는 도무지 연필을 들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또한 수많은 지식과 정보 역시 내 스스로 듣고 인지하고 기억하는 많은 과정의 일부가 생략되어 컴퓨터가 대신 그 모든 것을 기억해준다. 맥루한의 말대로 컴퓨터가 우리 뇌의 중추신경계까지 확장시켜주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환경으로 인하여 오늘의 학생들은 ‘지적 무기력’ 속에 살아간다고 일부 학자들은 한탄한다. 그들은 비논리적이고 단편적이며 대충 공부하려 하고 검색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기억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읽는 속도는 빠르지만 집중시간이 짧아 어려우면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어찌 학생들만의 문제일까? 어른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이리저리 펜을 굴리며 사전을 찾고 책을 뒤적거리는 탐색과정은 없고 그저 검색하고 답부터 찾으려 한다. 그런데 더 피곤하고 쉽게 잊는다. 우리의 몸과 뇌의 속도의 사이클과 맞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덮고 보니, 책 속에 머리를 놓고 왔구나.”라는 윌리엄 스태포드(William Stafford)의 시 구절이 있다.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딱 맞는 기막힌 표현이 아닌가? 여유 없이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책을 읽었지만 돌아서면 기억에 남지 않는다. 또한 검색하면서 열심히 읽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아 누군가에게 물어보면 그 사람 역시 또 검색하기에 바쁘다. 게다가 갈수록 모른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지 “뭐지?”하는 순간 누군가는 벌써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고 있다. 컴퓨터 속에 머리를 두고 다니기 때문이다.

나의 몸과 뇌의 역량보다 빠르게 많은 성과를 이뤄내는 기술을 참 편하게도 이용하는 동안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나태하고 게을러져 가고 있다. 활용능력은 커 가는데 정작 내 자신이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정보가 많으면 그만큼 지적 의욕을 잃게 된다. 알고 있다는 착각과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안일함이 몸과 정신을 마비시킨다. 지식은 스스로 체득하고 체화하는 과정에서 생산되었을 때 비로소 생명력 있는 의미를 얻게 되고 지적노력에서 오는 행복감으로 기억에 남기 마련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과 맞추려 조급해하며 혼란스럽게 살기보다 모르고 느리고 부족한 그 자체를 즐기는 여유를 찾아야겠다. 디지털기기는 계속 바뀔 것이고 수많은 정보와 트렌드는 밀려올 것이다. 여기에 맞추려 안달복달하다가 소중한 시간 다 지나갈까 걱정이다. 모두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품어야 할 지식이 아닐까?

김용은 제오르지아 수녀(살레시오수녀회)는 미국 뉴욕대(NYU) 대학원에서 미디어생태학(Media Ecology)을 전공하고, 버클리 신학대학원(GTU Graduate Theological Union)의 살레시오영성센터(ISS)에서 살레시오 영성을 수학했다. 현재 부산 ‘살레시오 영성의 집’ 관장을 맡고 있다.

김용은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