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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목 현장을 가다] 공군사관학교 성무대본당 ‘특별한’ 세례식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4-11-18 수정일 2014-11-18 발행일 2014-11-23 제 2920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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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관 앞둔 생도 7명 동시 세례… ‘함께하는 사목’ 덕분”
종교 활동 자율인 4학년 세례 ‘이례적’
총 10명 영세자 중 7명이 4학년
생도 이해하려 공수훈련까지 받은 ‘명예교관’ 이건승 주임 신부 역할 커
친화력 위해 매주 9㎞ 구보 동행
끈끈한 교류로 자연스레 신앙 이끌어
11월 12일 세례를 받은 4학년 생도 7명을 포함한 10명의 공군사관학교 생도들이 세례식 후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군종교구 공군사관학교 성무대본당 제공
군종교구 공군사관학교 성무대본당(주임 이건승 신부)에서는 11월 12일 오후 7시 사관생도 미사 중 ‘특별한’ 세례식이 있었다.

4학년 생도 7명이 3학년 생도 2명, 2학년 생도 1명과 함께 세례를 받은 것이다. 성무대본당에서 사관생도가 세례를 받는 것이 특별한 일인지 의문이 들 수 있지만 4학년 생도의 세례는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다. 더군다나 같은 날 세례 받은 4학년 생도가 7명이나 된다는 것은 1957년 성무대본당 설립 이래 유례가 드문 ‘사건’이라면 사건이다.

공사에서는 생도 1학년 기간 동안만 종교행사 참석을 의무로 하고 있어 1학년 생도 때 세례 받는 비율이 가장 높다. 임관을 앞둔 4학년이 되면 대부분 기존 신자 생도만 수요 생도미사에 참례하다 보니 4학년 영세자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군종교구 공군 선임 사제인 나광남 신부(삼위일체본당 주임)도 이건승 신부로부터 공사 4학년 생도 7명의 영세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는 후문이다.

공사에서 4학년 영세자가 한꺼번에 7명씩이나 나온 데에는 이 신부의 ‘약속을 지키는 사목’, ‘함께하는 사목’이 배경이 되고 있다. 신학교 재학 중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한 이 신부는 2008년 6월 군종장교로 임관하며 두 번째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신부가 2012년 7월 공사 성무대본당에 부임했을 당시 생도들은 하계 군사훈련을 받고 있었다. 1학년은 행군, 2학년은 수중 훈련, 3학년은 가장 힘들다는 공수(낙하산) 훈련을 받는 중이었다. 이 신부는 1학년 생도들의 행군에 동참했고 2학년 생도들에게는 삼겹살을 구워줬다. 3학년 생도들이 낙하산 강하를 위해 비행기에 탑승할 때에는 몸소 훈련장에 찾아가 불안과 긴장감에 떠는 생도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기도를 드렸다.

성무대성당에서 생도들과 첫 미사를 드린 것은 하계 군사훈련이 끝난 2012년 9월이었다. 첫 생도 미사에는 평소의 3배 가까운 90여 명의 생도들이 성당을 찾았다. 같은 군인 입장에서 훈련장을 찾은 이 신부 특유의 친화력이 생도들을 성당으로 불러 모은 것. 첫 주만이 아니라 이후 미사에서도 생도들의 숫자는 줄지 않았다.

공군 군종장교로는 최초로 공수훈련을 이수, ‘명예교관’ 모자를 받은 이건승 신부.
이 신부는 생도들에게 약속했다. “나도 여러분과 같이 공수훈련을 받겠습니다!” 하지만 이 때만 해도 실제로 낙하산을 타겠다기보다는 ‘공수표’에 가까운 선언이었다. 그래도 한 번 약속은 약속이라는 생각으로 지난해 3월 당시 공사 학교장이던 김영민 중장을 찾아가 “생도들과 함께하기 위해 공수훈련을 받겠다”고 말했다. 김영민 학교장은 그 자리에서 수화기를 들고 “신부님 공수훈련 가시게 조치해 드리라”고 지시했고 이 신부는 다음달 공수훈련 과정에 입교했다. 천주교·개신교·불교를 통틀어 공군 군종장교로는 최초였다.

훈련생은 이 신부보다 10살 이상 어린 하사들을 포함해 10명, 교관은 20명이었다. 훈련생보다 교관이 배 이상 많은 초 고강도 훈련이었다. 이 신부는 한계 상황을 오르내리는 훈련을 끈질기게 버텨 2013년 5월 총 4회 낙하산 강하에 성공했다.

“항공기에서 뛰어 내리는 순간에는 ‘인생이 이제 끝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하느님이 나를 잡아주는 포근한 느낌이 느껴졌는데 그 때 낙하산이 펴진 것이었습니다.”

이 신부는 공수훈련이 힘들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직접 항공기에서 뛰어내려 보니 생도들이 얼마나 고되게 훈련 받는지 피부로 느꼈고 생도들도 이 신부를 진정한 사목자이자 ‘선배 군인’으로 인식하게 됐다.

이 신부는 공수훈련을 마친 후 공군으로부터 ‘명예교관’ 모자를 받았다. 명예교관 모자를 쓰고 훈련장을 위문 방문한 이 신부를 바라보는 생도들의 눈빛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신부는 생도들과의 친화력을 높이기 위해 매주 목요일 생도들과 9㎞ 구보를 함께 뛰는 것은 물론 겨울 스키캠프에서 신자·비신자 생도 모두와 미사를 봉헌하고 여름 캠프에서는 ‘남도 맛기행’을 함께 떠난다. 진하고 끈끈한 인간적 교류가 징검다리로 놓여져 4학년 생도들도 성무대성당을 찾게 됐다.

9월 첫째 주부터 10주간 생도들의 예비신자 교리를 맡은 성무대본당 남금자 전교수녀는 “절도 있고 진지한 자세로 교리공부를 하는 생도들이 고맙고 대견하면서도 성당에 나오느라 고단한 몸을 쉬지 못해 안쓰럽기도 했다”며 “생도들을 키워주시는 이는 하느님이었다”고 말했다.

평신도주일인 11월 16일 주일미사에서 강론을 맡은 이달호(안토니오·예비역 대령·공사 19기)씨는 1971년 소위 시절 F-5 전투기 이륙 직후 엔진 2개 중 1개가 폭발했지만 기적적으로 귀환한 사연을 소개한 후 “사관생도 사목을 중심으로 하는 성무대본당에 일손이 부족하다 보니 이건승 신부님이 지칠 때도 있어 신자들이 ‘일당 백’의 자세로 신부님을 돕는다”고 본당 공동체를 소개했다.

이 신부는 이에 대해 “이달호 형제 같은 든든한 예비역 신자들과 고등학생 때부터 3년 넘게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반주 봉사를 하는 김윤정(세라피나·20) 자매 등 평신도들이 본당의 ‘머릿돌’로서 생도 사목에 커다란 활력소가 된다”고 말했다.

박지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