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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그리스도인의 힘! 공감능력 / 서상덕 취재2팀장

서상덕 취재2팀장
입력일 2014-11-18 수정일 2014-11-18 발행일 2014-11-23 제 2920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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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지난 수능 얘기를 꺼내는 건 이번에도 어김없이 예의 거짓말이 떠돌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 교과과정을 충분히 이해한 학생이라면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라는 식의…. 수능을 즈음한 시기에 이 말은 어르신들의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말과 장사꾼들이 ‘밑지고 판다’는 말, 노처녀가 ‘시집 안 간다’는 이른바 3대 거짓말(?)마저 무색케 하는 듯하다.

통계에 따르면, 매년 수능시험이 치러지는 11월부터 입학시즌이 시작되기 전인 2월 사이에만 200명 남짓한 꽃다운 생명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한다. 하루 평균 1.5명꼴이다. 여기에 ‘자녀 낙방에 비관한 주부 자살’ 등 부모와 가족들의 죽음까지 합치면 2명이 넘을 거라는 말도 있다. 무엇이 이토록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가.

살아가면서 적게는 수십 번, 많게는 수백 번 크고작은 시험을 치르게 되지만 유독 수능 성적이 당사자, 나아가 한 가족의 일생을 좌우하는 ‘인간 가격표’로 통용되는 까닭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실이 학벌사회가 낳은 폐단이라고 진단한다. 어떤 이들은 어린 세대의 유약한 심성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또 다른 이들은 전 세계적으로 수능시험 같은 일종의 통과의례가 없는 나라가 없다며 ‘수능 자살’을 감상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무엇이 정답일까. 수많은 삶이 얽히고설킨 문제여서 해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만약 에볼라나 사스(SARS), 조류인플루엔자 등 어떤 질병으로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다면 어떨까. 주무 장관은 몇 번이나 자리에서 물러났을 테고 대통령도 국민 앞에서 머리 숙여 사과하고 특단의 대책을 강구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린 학생들이 이렇게 꽃다운 목숨을 스스로 끊고 있는데도 어른들은 가당찮은 분석에, 예의 거짓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평소 교과과정을 충분히….”

그리스도교 신자가 대통령으로 한 나라를 책임지고, 교육부 장관을 하던 때에도 ‘강 건너 불구경’하는 거짓 놀음은 그치지 않았다. 참으로 이상한 사회다. 무고한 죽음 앞에 이 사회가 정상적인지 누구도 묻지 않는다.

어린 학생들은 이중적인 약자다.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사회에서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기 일쑤고, 엄연한 국민임에도 투표권이 없다는 이유로 정치권에서도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은 교회라고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교회의 무관심 속에 무수한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갔다. 그러다 보니 이제 더 이상 교회에서 젊은이들을 찾기조차 힘들어졌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의외로 간단하다. 아파하는 이들 곁으로 다가가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위대한 능력은 이렇듯 타인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그리고 인간에게 가장 숭고한 행위는 그 공감을 바탕으로 함께 행동하는 것이다. 이미 예수님께서 잘 보여주셨다. 당신이 창조하신 사람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심에도 하느님께서는 당신 외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셨다. 우리와 함께하시며 공감하고 계심을 보여주고자 하셨음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아파하는 이들의 고통에 함께하시자 병이 낫는 장면을 수없이 보았다. 공감이 기적을 낳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은총이자 무기도 공감능력이다. 홀로 1등이 되기보다 더불어 잘 살고자 하는 마음이 공감능력이다. 우리 신앙생활은 아파하는 이들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어야 한다. 이것이 주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심어주신 소중한 사랑의 씨앗이다.

서상덕 취재2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