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김인호 신부의 건강한 그리스도인 되기] 시어머니께서 천사가 보이신데요

김인호 신부 (대전가톨릭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 교수)
입력일 2014-11-18 수정일 2014-11-18 발행일 2014-11-23 제 2920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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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요 : 시어머니께서 천사가 보이신데요

저는 50대 중반의 기혼 여성으로 80대 중반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평소 기력도 좋으시고 정신도 맑으신 분이었으며 신앙생활 또한 잘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주 전부터 가끔 흰옷을 입은 천사 같은 모습이 방에서 보인다고 하시면서 당신이 죽을 때가 되어서 데리러 온 것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오래 한편이 못되다 보니 이런 어머니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고민입니다.

이렇게 해보세요 : ‘증상’보다 ‘마음 상태’ 주목하세요

시어머니의 경우와 같은 증상을 단지 정신의학적인 차원에서만 설명하려는 것에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현재의 경우에는 충분히 그 타당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시어머니께 나타나는 ‘환시’는 ‘섬망 증상’의 하나로 노인이나 입원 환자들, 금단상태, 뇌신경계의 이상에서 비교적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보통 이 증상은 일시적으로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흔하지만 쉽게 호전되지 않을 때에는 다른 문제가 있을 수 있기에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사목생활을 하면서 분명하게 신체적인 원인을 지니고 있는 문제들을 종교적으로만 해석하고 반응함으로써 문제를 더 크게 만드는 경우를 볼 때가 있습니다. “천사가 보이는 것을 보니 죽을 때가 되었다”라고 해석하면서 문제를 방치하시는 시어머니의 모습도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정신의학적인 도움은 하느님의 선물이기에 매우 유익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도움이 그 차원으로만 한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의 비유 속 이야기는 자매님께 또 다른 측면의 도움을 소개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근을 준비하던 남편이 부엌에 있는 부인을 부르니 “두 번째 서랍에 양말 들었어요” 하고 말합니다. 딸이 엄마를 부르자 “도시락 여기 있어” 하고 대답합니다. 이어서 아들이 엄마를 부르니 “용돈 네 책상 위에 있어” 하고 답합니다. 가족이 아니고서는 결코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 대화에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작은 지혜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상대의 필요(욕구)를 읽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듣기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선입견을 내려놓아야 하고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단계로의 대화는 결코 우리를 만족 시켜주지 못합니다. 말을 하든, 안 하든, 세련되든 거칠든, 그 사람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를 읽어내는 것입니다. 물론 그 단계는 무척 수고스러운 것이어서 ‘사랑’이라는 촉매제가 아니고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자매님으로 하여금 시어머니께서 무엇인가가 보인다고 말씀하실 때, 시어머니의 ‘증상’에 주목하기 보다는 ‘마음의 상태’에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입버릇처럼 “죽어야지!, 너무 오래 살아서 뭐해!” 하고 말씀하시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 말은 “죽음이 두려워!”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자매님께서 시어머니께서 느끼시는 불안과 두려움의 마음을 잘 헤아리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도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시작으로 시어머니의 건강상태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고민거리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시면서 시어머니께 갑작스럽게 나타난 증상의 원인을 찾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때로는 가족들과의 식사, 여유로운 산책 등과 같은 시간도 시어머니를 도와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자매님, 타인의 필요(욕구)를 읽는 것은 인간관계의 성숙뿐만 아니라 신앙적인 성숙을 위한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도 모를 수 있는 진정한 필요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하느님을 닮아가는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회를 통해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넘어 그것이 다른 가족들과 이웃들에게도 확대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 문의 : 이메일 info@catimes.kr로 김인호 신부님과 상담하실 수 있습니다.

김인호 신부 (대전가톨릭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