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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주일에 만난 사람] 무료 어린이 카페 ‘까사미아’ 운영하는 김용길·최금자 씨 부부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14-11-11 수정일 2014-11-11 발행일 2014-11-16 제 2919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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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아이들 위한 공간 만들어요”
어린이들의 아지트 만들고자 살던 집 내놓아 카페 마련
음식·공부방 등 무료 제공
매일 30~60명 지역아동 몰려
“성과, 당장 드러나지 않아도 먼 미래 위한 일 잊지 말아야죠”
‘까사미아’에서 어린이들과 함께한 김용길·최금자씨 부부. 평신도 소명에 대한 남다른 의식을 지닌 부부는 교회 미래에 희망을 심는 활동 일환으로 어린이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

인천시 부평구 십정동의 한 주택가 골목. 어린이 카페 ‘까사미아’(Casa Mia·이탈리아어로 ‘나의 집’이란 뜻) 문을 열고 들어서는 아이들의 표정이 천연덕스럽다.

“배고프지. 금방 스파게티 해줄게. 조금만 기다려.”

카페 주인이자 셰프인 김용길(베드로·56·인천 십정동본당)씨 손놀림이 바빠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탁에는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스파게티가 차려진다.

“여기 오면 맛있는 거 먹을 수 있어서 좋아요.” “얼음땡 놀이도 하고 보드게임도 하고…, 재밌는 게 많아요.”

수연(초2)이와 선희(초2)가 마치 제 집인 양 자랑을 늘어놓는다. 점심시간을 넘기면서 은비(초2)와 시연(초2)이에 이어 아이들이 끊임없이 들이닥친다. 저녁시간을 향해 갈수록 고학년 아이들의 발걸음이 잦아진다. 누가 있는지 쓰윽 들여다보고는 초코파이 하나만 먹고 사라지는 아이들도 있다. 자투리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들의 ‘어카’(어린이 카페 줄임말)에 들렀다 가는 거다.

132㎡(40평) 남짓한 크기의 까사미아에선 모든 게 무료다. 먹는 것부터 놀고 즐기는 것 모두가 어린이들을 위해 존재한다.

아이들의 아지트인 ‘어카’ 까사미아가 동네에 생긴 건 지난 2010년 6월. 김씨가 아내 최금자(엘리자벳·54)씨와 자신들의 집을 고쳐 만들었다. 도배는 물론 페인트칠에 타일 붙이는 일까지 모두 손수 했다. “쉰 넘으면 의미 있는 일을 함께 해보자”는 약속을 지키고자 시작한 일이었다. 다른 일도 많은데 굳이 어린이 카페를 택한 건 이들이 웬만해선 눈에 잘 띄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남에게 잘 띄고 목소리가 큰 사람일수록 도움의 손길을 얻기 쉽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힘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부부는 어려운 길을 택했다. 칭찬은 고사하고 잘못하면 순진한 아이들 꼬드긴다는 비난이 돌아오기 십상이다.

대학시절 본당 주일학교 교리교사를 하면서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에 교리신학원 문을 두드렸다. 그도 성에 안 차 로마 유학길에 올라 청소년사목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최씨는 지금도 자신의 걸음걸음에 하느님이 함께하신다고 확신한다. 남편 김씨도 그런 아내를 따라 로마에 유학해 사진을 전공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맛있는 파스타를 선사하기 위해 요리 아카데미도 수료했다.

점심 무렵부터 문을 여는 카페는 평일에는 30여 명, 주말에는 50~60여 명의 아이들로 붐빈다. 주일에도 시도 때도 없이 초인종을 눌러대는 통에 365일 문을 열고 있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 ‘어카’는 동네에서 둘도 없는 공간이다. 그렇다고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쪽 공부방에서 공부를 하든 마당에서 놀든 아이들 자유다. 김씨 부부가 하는 일이라곤 아이들이 다치지 않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보살피면서 간식을 내놓는 것이 전부다.

“사랑 받고 있다는 느낌만으로 충분해요. 입으로는 음식을 먹고 마음으로는 사랑을 먹는 셈이죠. 훗날 아이들이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따뜻한 추억을 되새기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해요.”

이런 와중에도 남편 김씨는 본당 미사 해설에 남성구역장까지 맡아 활동하고 있다. 누구보다 교회의 미래에 관심이 많은 부부는 평신도의 소명에 대해 남다른 의식을 지니고 있다.

“희망을 갖기 힘든 사회에서 희망을 갖는다는 자체가 소중한 일입니다. 세상 안에서 빛과 소금 역할을 하며 스스로 희망이 되는 이들이 평신도들입니다.”

서울대교구 교육국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한 바 있는 최씨는 성과 위주 사목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꿰고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일은 표시가 잘 나지 않습니다. 당장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가 별로 없기 때문에 교회의 투자도, 사목자들의 적극성도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도 당장은 보이지 않는 먼 미래의 길을 열어놓으셨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으로서 각자에게 주어진 탈렌트에 따라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데 신자들 사이에서도 높고 낮음이 있어 늘 안타깝다는 부부는 순간순간 아이들로부터 얻는 깨달음에 놀란다고 털어놓는다.

“우리가 화내고 다투고 하는 것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넘어서 한 형제가 되게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 되게 하고자 하시는 주님의 뜻을 잊지 않을 때 세상은 그만큼 살만한 곳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넉넉하진 않아도 늘 아이들과 함께하기에 행복할 수밖에 없다는 부부는 오늘도 사랑이 그득 담긴 파스타를 내놓고 있을 것이다.

※후원 문의 032-446-0065

김용길·최금자씨 부부가 ‘까사미아’를 찾은 어린이들과 만들기 작업을 하고 있다.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