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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목 현장을 가다] 포천·연천 최전방 부대 사목 육군 열쇠본당 김대한 신부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4-10-21 수정일 2014-10-21 발행일 2014-10-26 제 2916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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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장병 냉담 막으려 ‘세례 군번줄’ 직접 만들었어요”
매 주일 신자 찾아 200km 운전
공소·성당·양로원서 여덟 대 미사
자대배치 후 신앙 이어가도록
교육 충실히 받은 훈련병만 세례
세례명 군번줄 시행은 교구 최초
열쇠본당 주일미사 중 강론을 하고 있는 김대한 신부.
200km. 군종교구 육군 제5사단 열쇠본당 주임 김대한 신부가 토요일부터 주일까지 주일미사 봉헌을 하며 이동하는 거리다. 서울에서 전북 군산까지의 거리와 맞먹는다. 주일미사 봉헌을 위해 그 먼 거리를 이동한다니 군종교구 신자가 아니라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김대한 신부는 자신이 찾아가야만 주일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군인신자들을 위해 포천과 연천 서부전선 최전방 부대 곳곳의 공소와 성당으로 자동차 핸들을 돌린다. 밥 먹는 시간도 줄여가며 자동차 타이어에 탄 내가 나도록 비포장도로와 산비탈을 달린다.

김 신부는 모두 여덟 대의 주일미사를 드린다. 토요일과 주일 각 4대씩이다. 토요일 오후 2시 GOP 대마리공소 미사를 시작으로 오후 4시 내산리공소, 오후 5시30분 ‘안나의 집’(첫째·넷째 주), 오후 7시 상리성당에서 미사가 이어진다. 주일에는 오전 9시 신교대 인덕공소 훈련병 미사부터 오전 10시30분 열쇠성당, 오후 2시 수색대 다삼공소와 GOP 남문공소(격주로 번갈아 방문), 오후 3시30분 제27연대 상승공소까지 방문해야 토요일부터 시작된 주일미사의 ‘대장정’이 막을 내린다.

이 중 양로원인 ‘안나의 집’ 미사는 의정부교구 상리본당의 사목 지원을 위해 한 달에 두 주 방문해 주일미사를 봉헌하고 있으며, 토요일 오후 7시에는 부대 위치 문제로 군종성당에서 미사 봉헌이 힘든 장병들을 위해 민간성당인 상리성당을 빌려 김 신부 주례로 미사를 봉헌한다. 주일미사 주례를 위해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200km를 이동하는 김 신부도 대단하지만 내무반에서 편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을 반납하고 신앙의 끈을 부여잡는 장병들도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김 신부는 2010년 사제품을 받고 수원교구에서 본당 보좌신부로 사목하다 올 7월 군종장교로 임관했다. 군종교구 ‘막내’로 첫 주임신부가 된 것이다. 임관 전 보좌신부 때는 신자들이 찾아왔지만 임관 후 주임신부가 돼서는 신자들을 찾아가고 있다.

군인이자 신부라는 이중 직함을 가진 김 신부는 “장병들이 예뻐서 기쁜 마음으로 찾아간다”고 말했다. 주일미사를 봉헌하려고 성당을 찾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장병들이 너무나 기특하고 고맙기에 200km를 달리는 발길에 신명이 난다.

지난 11일 토요일에도 오후 9시에야 사제관에 돌아온 김 신부는 다음날인 12일 주일 오전 9시 신교대 미사를 위해 8시40분 군종병들과 함께 훈련병들에게 줄 간식을 차에 싣고 시동을 걸었다. 이날 미사 중 훈련병 5명이 세례를 받았다. 한 번에 20~30명씩 세례 받던 때에 비하면 김 신부는 세례를 쉽게 주지 않는다. 군에 입대해 처음 성당을 찾은 훈련병들에게 “성당은 재밌는 곳도 아니고 잘 수 있는 곳도 아닙니다. 가톨릭 신앙을 강요하지 않으니 신앙을 받아들일 훈련병들이라면 꾸준히 성당에 나오십시오”라고 말한다.

김 신부는 신교대 훈련 기간인 5주 중 최소 4주 이상 미사에 참례한 훈련병들에게만 세례를 주고 있다. “얼마나 많은 병사에게 세례를 줬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앙인을 키워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12일 인덕공소 미사는 군종교구 역사의 한 장으로 기록될 것 같다. 김 신부가 군종교구에서 최초로 ‘세례 군번줄’을 시행한 날이기 때문이다. 세례 군번줄은 현역 군인들의 군번줄(인식줄)과 똑같은 모양으로 성명과 세례명, 세례일자와 열쇠성당 명칭이 새겨져 있다. 신교대에서 짧은 기간 예비신자 교리를 받고 세례를 받은 병사들 중 자대 배치 후 냉담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높고, 심지어 자신의 세례명조차 기억 못하는 사례가 많다는 문제의식에서 김 신부가 고안해 낸 것이 세례 군번줄이다.

세례 군번줄 시행 이전에도 김 신부에게서 충실한 예비신자 교리를 받고 영세한 장병들은 자대배치 후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비율이 높다고 한다. 실제 12일 오전 10시30분 열쇠성당, 오후 2시 다삼공소 미사에는 갓 전입 온 이등병들이 유독 자주 눈에 띄었다.

신교대 인덕공소 미사가 끝나면 김 신부는 잠시 쉴 틈도 없이 열쇠성당으로 이동해 오전 10시30분 미사를 준비한다. 열쇠성당은 육군 제5사단 소속 장병들과 군인 가족뿐만 아니라 인근 타 부대 장병들, 민간인 신자까지 150여 명으로 가득 찼다. 특히 동두천 포병부대에서 열쇠성당까지 부대 차량으로 30분을 타고 온 병사들도 있었다.

동두천에서 왔다는 박진수(아우구스티노) 일병은 “사회에서 냉담하다 군에 와서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해 훈련이나 근무가 있는 날이 아니면 꼭 주일미사에 참례한다”고 전했다. 군대가 아니면 보기 힘든 풍경이다.

김 신부와 군종병들은 간식으로 점심을 간단히 먹고 차량으로 1시간을 달려 민간인통제구역을 통과, GOP 바로 아래 다삼공소에 오후 1시50분 경 도착했다. 다삼공소는 학교 교실 반 정도의 아담한 크기로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최전방 철책을 지키는 수많은 장병들에게 신앙의 못자리 역할을 해 온 유서 깊은 곳이다. 이날도 24명의 장병들이 다삼공소를 메웠다.

11월 4일 전역을 앞둔 유재혁(프란치스코) 병장은 군복을 입고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며 “유아세례를 받았지만 군대 와서야 신앙생활을 제대로 시작했다”며 “행정병으로 힘들게 일하면서 공소에서 듣는 신부님 말씀으로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주말마다 병사들을 찾아 200km를 움직이는 김대한 신부는 자신의 명함 뒷면에 적혀 있는 “고생하고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마태 11,28)라는 성경말씀을 그대로 사는 모습이었다.

육군 제5사단 신병교육대 인덕공소 세례식 장면. 김대한 신부는 충실히 교리교육을 이수한 훈련병에게만 세례를 주고 있다.
김대한 신부가 고안한 ‘세례 군번줄’. 성명과 세례명, 세례일자와 성당 이름 등이 새겨져 있다.

박지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