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천주가사 하느님을 노래하다] (2)

강영애 교수(데레사·한양대)
입력일 2014-10-07 수정일 2014-10-07 발행일 2014-10-12 제 2914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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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좋아하는 민족성 살려 유행가에 교리 담아
전파과정에서 가창 형식으로 변모
‘하느님께 다가가기’ ‘바른 의미 전달’ 등 목적
‘연도’, 상가(喪家)서 부른 토착화된 우리성가
우리민족은 내면의 감정을 풀어내는 노래를 좋아하는데, 농경문화였던 예로부터 그렇다. 모심기, 벼 베기, 베틀 짜기 등 노동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동물, 자연, 사람들과 어울려 놀 때에도 노래를 불렀다. 노래하는 방법은 혼자 흥얼거리거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주고받기도 하지만, 사람들과 더불어 떠들썩하게 즐기는 방법을 더욱 선호한 듯하다.

1990년대 초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노래방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애용하였고, 노래방만의 애창곡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기계반주에 맞추어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껏 열창할 수 있었던 노래방문화는 그 이전의 기타반주나 카세트테이프에 열광하던 대중의 심리가 옮겨간 것으로 볼 수 있다.

1910년대에는 유성기음반 문화가 특정인 사이에서 성장세를 이루었는데, 고가인 유성기의 값이 25원이고, 음반은 대략 1원~1원20전이었다고 한다. 화폐 단위가 1전·1원하던 이 시기의 흥미로웠던 사건은 장타령의 하루 최고 수입이 9000원이었다는 사실이다. 1원이 100전이고, 한명이 1전씩 관람료를 냈다고 가정하면, 하루에 90만 명 이상이 장타령을 보고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장타령이란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일자나 한자 들고나 봐’로 시작되는 숫자풀이 노래를 의미하지만, 그 노래를 경쾌하고 흥겹게 부르던 떠돌이 예능인(거지)을 가리키기도 했다. 기아와 빈곤에 시달렸던 이 시기에는 왕초, 똘마니, 날치기, 꽃제비, 장타령 등 많은 거지들이 존재했는데, 그 중에서 장타령의 인기가 최고였던 것이다.(「한성일보」 1949. 09. 28일자)

천주가사에는 <십자풀이가>가 있다. 1920년대부터 유행하던 장타령을 차용했지만, 구걸을 위한 도입부나 흥을 돋우는 후렴구, 신세한탄, 팔자타령은 빼버리고 단지 숫자풀이 부분만을 취하여 진정한 행복을 위한 천주교교리와 찬양을 표현하였다. 장타령의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의 도입부가 생략되고 일부터 십까지 숫자로 풀어나갔다. 즉 ‘일자나 한자 들고 봐 일구월심(日久月深) 원하던 마음 천당진복이 제일이라’로 시작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오주예수 뒤를 따라 천주십계를 지켜보세’로 맺는 것이다.

천주가사는 서구중심의 시각을 극복하고 우리고유의 민속, 관습, 신앙형태를 종합한 한국화 된 문화유산이다. 개인에 의해 창작되었지만, 전파과정에서는 우리민족성이 반영되어 노래로 불려졌다. 그 노래는 당시에 유행하던 유흥가나 민요, 가사, 그레고리오성가의 영향을 받게 되지만, 단순 모방이 아닌 천주가사만의 고유성을 만들어냈다.

신앙선조들은 엄숙하고 조용하게 진행되어야 할 상장예식에서 조차 노래를 불렀다. 연도는 신앙 전파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천주가사가 다양하게 불려졌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사진은 연도를 수록한 초기 기도서 「천주성교예규」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노래를 부르는 이유

천주가사는 가창을 목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구전 전승되는 과정에서 노래로 불렸음을 알았다. 자신의 슬프고 고단한 감정을 담고 있는 노랫말이 하느님께 하소연하거나 찬양의 기쁨을 외칠 수 있는 가창용 천주가사가 된 것이다.

토착화된 우리성가에는 천주가사 이외에 연도가 있다. 연도는 임종, 입관, 출관 등 상장예식에서 죽은 영혼을 위해 드리는 기도이다. 초상집에서는 엄숙하고 조용하게 예식이 진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기도는 큰소리로 노래 부르도록 규정되어 있다.

연도를 수록한 초기의 기도서 「천주성교예규(天主聖敎禮規)」에는 다음과 같이 기도문을 소리 높여 노래하라는 항목이 보인다.

문) 상사때에 념경긔구만하면 죡하거늘 엇지굿하야 소래를 놉히고 노래하야외오나뇨 이는 즐거워하난모양갓하야 됴상의례에 크게 합지아님이아니냐

답) 그러치아니하니 이비록 노래업시 그적경을 외와도죡하나 경을 노래하야외옴이 그연고로ㅣ잇스니 하나흔 노래하난소래 더욱내생각을 들어 쥬끠로 향케하고 더욱내마암을슈렴케하고 더욱 우리마암의 큰원을 드러냄이오 둘흔 거룩한 노래의 소래 만일범대로하고 졍성된 마암으로하면 능히마귀를 쫏나니… (중략)세흔 장사때에 교우의 하난소리는 또한 슯허하고근심하난소래니… [「셩교례규」 뎨오판 (일천구백오십오년), 207쪽. 상례문답]

연도를 소리 높여 노래하는 이유는 복잡하게 얽힌 감정들이 정리되어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 지 뚜렷해지며, 이러한 간절함이 직접 주님께 전달된다는 강한 믿음 때문이다. 또한 지극히 정성된 연도소리는 사악하고 무시무시한 마귀를 쫓아낼 뿐만 아니라, 슬퍼하고 근심하는 상주의 마음에 큰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이렇듯 신앙선조들은 엄숙해야할 예식에서 조차도 노래를 불렀기에, 전파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천주가사는 더욱 다양하게 불렀음을 유추할 수 있다. 정리해보면, 천주가사를 노래로 부른 까닭은 첫째 하느님께 다가가기 위해서, 둘째 정확한 의미전달을 위해서, 셋째 긴 가사를 기억하기 위해서, 넷째 내면의 복잡한 감정을 풀어내기 위해서, 다섯째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등이다.

강영애 교수는 음악인류학 박사로, 한양대와 교회음악대학원 강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대전교구, 마산교구 가톨릭상장례봉사자교육 전문강사로도 활동중이다.

강영애 교수(데레사·한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