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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나는 누구인가 (18) 모세와 도우미

신교선 신부
입력일 2014-09-30 수정일 2014-09-30 발행일 2014-10-05 제 2913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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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왜 야훼의 부르심에 선뜻 응하지 않았는가? 다섯 번에 거쳐서 그분의 소명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모세의 눈에 야훼는 아직 ‘미약한 신’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리라. 물론 활활 타오르면서도 결코 불타 없어지지 않는 가시나무 ‘세네’가 신기하기도하고 신비롭기도 했다. 그럼에도 모세가 지금까지 짧은 기간에 체험한 신 ‘야훼’는 아직 이집트의 태양신처럼 그토록 엄청나게 여겨지지 않았다. 모세가 볼 때 야훼는 피라미드의 주인공인 이집트 제국의 파라오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막강해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게다가 모세 스스로 고백하듯이, 그는 언변도 없고 재주도 없어서 민족의 해방자로 나서기에 사뭇 부족하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야훼 하느님 소명에 선뜻 응할 수 없었음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였다.

그러다가 모세는 결국 소명에 응하여, 길을 떠나 이집트로 향한다.

“그래서 모세는 아내와 아들들을 데려다 나귀에 태워 이집트 땅으로 돌아갔다”(탈출 4,20).

사실 탈출기 어느 곳에도 모세의 명시적 응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가 주님 소명에 “예, 저를 보내주십시오”라는 또는 그와 비슷한 응답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모세와는 대조적으로 예언자 이사야는 “내가 누구를 보낼까?”라고 물으시는 하느님 소명에 적극적으로 응답한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이사 6,8).

잠시, 모세의 소명에 비추어 나의 소명과 카리스마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날이 갈수록 적잖은 본당신자들이 ‘반장, 구역장’ 등 직책 맡기를 꺼린다. 흔히 신자들은 “시간 없다, 자신 없다”는 이유로 소명에 응하지 않는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말씀하신다.

“오늘날 세상의 가장 큰 위험은 온갖 극심한 소비주의와 더불어 개인주의적 불행입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고 그분 사랑의 고요한 기쁨을 느끼지 못하며 선행을 하고자 하는 열정도 식어버립니다.”(「복음의 기쁨」, 2013, 2항)

그러나 모세를 선택하신 분께서 필요한 때 필요한 도우미와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네가 말할 때나 그가[아론이] 말할 때, 내가 너희를 도와주겠다.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그는 너의 입이 되고, 너는 그의 하느님이 되어 줄 것이다…”(탈출 4,15-16).

올해로 우리나이 92세가 된 필자의 어머니는 초등학교 입학도 못하고 그저 야학을 해서 한글을 익혔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 부지런히 활동하던 그에게 어느 날 주임신부님이 ‘반장’직을 맡기신다. 정중히 사양하며 거절해 보았지만 무조건 맡으라는 말씀에 어쩔 수 없이 몇 년 동안 반장직을 조용히 수행했다. 나중에는 구역장까지, 그리고 ‘쁘레시디움 단장’까지 맡았다. 어느 날 조용히 소사본당 성모상 앞에서 눈물 흘리며 탄원기도를 바쳤단다. “성모님, 왜 저를 이렇게 어렵게 하십니까? 차라리 배움을 주시든지 아니면 이런 어려운 직책을 면해 주시든지, 저 어찌 해야 합니까? 우리 어머니 성모님!”

결과는 어떠했는가? 주임신부님의 강력한 권고와 ‘사제의 카리스마’에 떠밀려 반장, 구역장, 쁘레시디움 단장직을 차례로 맡았다. ‘쁘레시디움을 쁘레띠띠’라고 발음해가면서~. 반이나 구역 식구들이, 또 단원들이 필요할 때 손과 발이 되어주어 별 어려움 없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임기가 흘러갔단다. 더구나 직책을 맡을 때까지 제대로 몰랐던 아라비아 숫자까지 익히게 되었다. 그 옛날 모세에게 도우미를 보내주시고 그를 이끌어주신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3,12ㄱ).

신교선 신부는 1979년 사제수품 후, 스위스 루체른 대학교에서 성서주석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원과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를 역임, 현재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와 신앙교리위원회 위원, 인천 작전동본당 주임으로 사목 중이다.

신교선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