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청년, 순교영성에 물들다] (2) 명례성지

주정아 기자,사진 박원희 기자
입력일 2014-07-29 수정일 2014-07-29 발행일 2014-08-03 제 2906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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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내려놓고 당신 위해 녹는 소금 되겠습니다”
순교자 죽음 미화하기보다 삶의 면면 알고 본받는게 먼저
부·명예·권력에서 자유로웠던 신석복 순교자 신앙 모습 통해 세속적 가치에 물들어 있던 스스로의 지난 생활 되돌아봐 ‘녹아야 사는’ 영성 살기 다짐
명례성지가 추진하고 있는 ‘녹는 소금 운동’에 대해 강석진 신부와 청년들이 이야기 나누고 있다. ‘녹는 소금 운동’은 소금과 누룩, 성체의 삶처럼 자신을 다 내어놓은 신석복 순교자의 삶에서 길어 올린 ‘소금 영성’ 실천 방법의 하나다.
세속화된 사회 흐름 안에서, 이 시대 청년들은 신앙도 이른바 ‘취사선택’ 할 수 있다고까지 생각한다. 스스로 신앙을 고백하는 청년들도, ‘스펙 쌓기’ 경쟁에서 또 성공과 물질적 부를 추구하는 사회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어 갈등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사회봉사활동은 해왔는데 그것으론 부족한가? 게다가 수백년 전 박해와 순교는 대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할지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순교자들의 삶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막연한 기대감을 안고 성지로 향했다. 익숙한 삶터를 벗어나 낯선 곳으로 출발한 후에야, ‘오늘 해야 할 일’, ‘나에게 가치 있는 일’ 등으로 나열하고 있던 수많은 일상들을 뒤로 할 수 있었다.

‘내 안’에서 나와 ‘하느님’ 안으로 들어가는 길,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와 124위 시복식을 앞두고 마련하는 특별기획 ‘청년, 순교영성에 물들다’ 두 번째 여정이다. 이번 순례에는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와 직장인 청년 김준희(헬레나·35)·류승원(바오로·32)씨가 함께했다.

성지순례 출발의 방향은 조금씩 달랐다. 김준희씨는 “전대사 지정 순례지에서 지인으로부터 부탁받은 기도를 봉헌하고, 전대사도 받아서 양보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류승원씨는 “최근 우리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우선 기성세대의 행태에 대한 분노와 상실감 등이 있지만, 나 스스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의 마음에 얼마나 공감하며 사는지 반성의 시간이 필요한 듯 했다”며 순례의 발걸음을 뗐다. 강석진 신부는 “청년들이 우리 신앙선조들이 대체 왜 순교를 했는지, 어떻게 순교할 수 있었는지, 무엇보다 그들은 죽음을 맞기 전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아가는 ‘순교의 영성화’를 체험하고 삶에 지속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만의 스펙 쌓기에서 잠시 물러나, 내가 평소 외면하고 달가워하지 않았던 모든 것들을 영적으로 다시 한 번 더 검토해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선 나 중심의 사고에서 빠져나올 때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타인과의 대화와 공감의 마음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번 여정에서도 성지순례 길라잡이이자 청년 영성상담가로서 동행한 강석진 신부의 조언이다.

■ 녹는 소금 운동

서울 도심을 빠져나온 지 2시간30여분 만에 고속열차는 순례자들을 경상남도 밀양시에 내려놓았다. 밀양과 김해를 잇는 나루가 있던 명례는 16일에 시복되는 순교자 신석복이 태어난 곳이자 마산교구 첫 본당이 세워졌던 곳이기도 하다. 청년 순례자들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 제대 양식 그대로인 옛 성당에서 난생 처음 사제와 나란히 제대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미사를 봉헌했다. 남녀좌석을 구분한 가림막이 낯설기도 했지만, 마룻바닥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미사를 봉헌하면서 ‘공동체’라는 단어도 떠올렸다고.

“나는 당신을 위하여 녹는 소금이 되겠습니다.”

명례성지 담당 이제민 신부가 알려주는 ‘녹는 소금’의 삶은 청년 순례자들의 마음을 점점 더 세게 두드렸다.

‘명례성지’에서 펼치고 있는 ‘녹는 소금 운동’은 소금과 누룩, 성체의 삶처럼 자신을 다 내어놓은 신석복 순교자의 삶에서 길어 올린 ‘소금 영성’ 실천 방법의 하나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다가가는, 세상의 평화를 위해 녹는 소금이 되자는 취지다.

성지담당 이제민 신부는 순례자들에게 묻는다.

“부와 권력과 명예와 인기를 추구하고, 거기에 인생의 성공과 행복을 거는 현대인들에게 자기희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도 오로지 자기안일과 성공을 위해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신부는 “온 세상이 하얀 그리스도인으로 덮여 있다 하더라도 녹지 않으면 평화로울 수가 없다”며 “우리 존재가 녹아 사라지는 곳에 세상의 평화가 넘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년 순례자들은 이웃을 위해 어떻게 나아가야할지를 반문한다. 취업을 하고, 성과를 내고, 물질을 모으는 삶이 보편적이라는 생각에, 어느 틈엔가 부와 성공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순교자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평소 순교자들에 관해선 ‘언제, 어떤 형태로 죽음을 당했다’는 정도의 내용만 배워왔던 청년 순례자들은 순교자들의 죽음 이전 삶이 궁금했다.

명례성지를 찾은 청년순례자들이 명례성당 앞 야외제대에서 담소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부터 김준희씨, 강석진 신부, 이제민 신부, 류승원씨.

■ 녹아야 사는 삶

명례성지의 뿌리가 된 신석복 순교자(마르코, 1828-1866)의 삶은 돈과, 명예, 권력 등에서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병인박해 때, 신석복이 체포돼 대구 감영으로 압송된다는 소식에 그의 형제들은 포졸들에게 돈을 주고 그를 빼내려 했다. 하지만 신석복은 형에게 “나를 위해 한 푼도 포졸들에게 주지 마라”고 단호하게 말했고, 이 때문에 그는 대구까지 가는 동안 자주 능욕을 당해야 했다.

이제민 신부는 “이 말을 단순히 교회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식으로만 이해한다면, 이는 순교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라며 “이 말은 자신을 예수님의 복음으로 변화시킨 이, 돈과 명예, 권력에서 자유로운 이만이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신석복 순교자의 영성은 바로 물질만능주의 등 세속화에 빠져있는 현대인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던져준다는 설명이었다.

순교자의 삶을 되짚어보며 청년들도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 성공일까? 부유함일까? 건강일까?”

“나를 놓아준다 하여도 다시 천주교를 봉행할 것입니다.”

신석복 순교자가 모진 고문 중에도 이런 말을 남길 수 있었던 것에 관해 이 신부는 “단순히 배교하지 않겠다는 뜻을 넘어서, 믿음과 또 믿음을 통해 얻은 자유와 영원한 생명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명례성당 내부를 설명하는 강석진 신부. 명례성당은 1928년 전통한옥 구조로 봉헌됐으나 1936년 태풍으로 전파됐다. 현재 건물은 당시 성당 잔해를 모아 원형을 축소 복원한 것이다.

■ 삶이 있어야 순교도 있다

강석진 신부와 명례성지를 찾은 청년들이 마산교구 명례성지 성역화 추진 담당 이제민 신부(오른쪽 첫 번째)로부터 신석복(마르코) 순교자의 삶에 대해 듣고 있다.
“순교자들은 좀 더 낮은 데로 낮은 데로 가려했는데, 그들을 현양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우리는 더 높은 데로 높은 데로 향해 나아가려고만 하지 않나요? 그러다보니 교회조차도 청년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미래에 대해 얘기할 기회를 점점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강석진 신부는 특히 “비단 청년들 뿐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가 순교자들의 삶의 면면을 알고 본받는 노력보다 죽음을 미화하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여온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강 신부는 “삶이 있었기에 순교도 가능했다”며 “시복 또는 시성 과정에서도 그들이 순교하기까지의 삶이 어떠했는지 알고 그 모범을 각자의 삶에 적용하는 노력이 먼저”라고 강조한다.

청년 순례자들은 순교자들이 나에게 있어서도 진정 성인인지, 그들 삶의 면면이 나에게 어떤 모범이 되는지 묵상해본다.

강 신부는 청년 순례자들에게 “일상에서의 어려움을 물리치는 것, 예를 들어 미운 사람을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친절히 대하는 것 등도 바로 ‘녹는 소금의 삶’”이라며 “이러한 노력을 반복하는 것이 바로 영성 성장 과정”이라고 말한다. 또한 “사회가 강조하는 효율성과 합리성 등으로 신앙을 재단할 것이 아니라 순교자들의 삶에서 메시지를 찾는 노력을 지속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다시 삶터로 돌아가는 여정, 청년 순례자들은 “순례길의 끝은 바로 하느님의 품”이라고 말한다.

“나만의 행복을 위한 천국을 지어두는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살리기 위해 지금 내 삶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야 하는지 보다 적극적으로 성찰해볼 것입니다. 이 모든 여정이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새로운 열매를 얻는’ 체험이 될 것임을 믿습니다.”

청년 순례자들의 다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 명례성지는…

명례성지(경남 밀양시 하남읍 명례리 1122, cafe.daum.net/myungrye, 010-3166-0773)는 순교자 신석복의 출생지이자, 경남 지역 최초의 본당(1897년)이 설립된 곳이다. 최양업 신부에 이어 한국에서 세 번째로 서품을 받은 강성삼 신부(1866~1903)가 이 본당 초대 주임이었다.

이곳에 처음 지어진 성당은 네 칸짜리 집이었다. 이후 1928년 기와지붕 성당이 봉헌됐지만 1936년 태풍에 모두 부서져 주춧돌만 남았다. 현재 성당은 1938년 당시 잔해를 사용해 원형을 축소, 복원한 것이다. 성당 내부는 마룻바닥에 남녀 신자석이 칸막이로 분리돼 있는 등 초기 교회 전통 건축 양식을 유지하고 있다. 덕분에 교회사적으로는 물론 종교사와 문화사, 건축사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현재 지방문화재 자료 제526호로도 지정돼 있다.

마산교구 명례성지조성추진위원회(위원장 이제민 신부)는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던 성당을 보수하고, 축사로 사용되던 신석복 순교자의 생가터를 매입하고 다듬었다. 2011년부터는 이제민 신부가 명례성지 담당신부로 부임, 성지를 가꾸고 안내하는 등의 사목활동을 다채롭게 펼치고 있다. 성지에서는 매일 오전 11시 미사가 봉헌된다. 토요일 미사는 오후 4시. 대중교통은 밀양, 창원, 수산 등지에서 시내·외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주정아 기자,사진 박원희 기자 (petersco@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