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교황 방한, 응답하라 2014 한국교회 (4) 세관이 아니다 여기는 아버지의 집이다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14-07-08 수정일 2014-07-08 발행일 2014-07-13 제 2903호 11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교회는 세관이 아니다, 하느님 나라 통행세 받는…
부유하든 가난하든 안식처 찾는 모든 양들 품어야
사제는 관리자 아닌 사목자
교회도 자본주의에 젖어들어
성공 지향주의에 구성원 이탈
교황, 행정적 교회 모습 질타
허물어져 가는 아버지의 집

신약성경에서 아버지 하느님의 은총을 이야기할 때 세리는 중요한 등장인물 가운데 하나다.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로 부르신 마태오도 세리였다. 예리코를 지나가시던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은 자캐오라는 사람도 돈 많은 세관장이었다. 하지만 세리는 단죄 받아야 할 인간 무리를 꼽는 데도 빠지지 않는 존재였다. ‘세리와 도둑’, ‘세리와 강도’, ‘세리와 죄인’, ‘세리와 창녀’, ‘세리와 이방인’처럼.

로마 총독의 위임을 받아 인두세, 토지세, 통행세, 시장세, 물품세 등 각종 세금을 징수하던 세리들은 세금 징수권을 독점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세금을 걷는 과정에서 수탈을 자행했기에 동족인 유다인에게도 경멸과 미움의 대상이었다.

로마 제국의 하수인으로 유다인 사회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힌 세리들은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도 미움과 경멸의 대상이 됐다. 세리들은 유다인 사회에서 철저하게 배척당했으며 이방인이나 죄인들과 같은 부류로 취급됐다.

이 때문에 세리들에게는 공민권이 주어지지 않았고, 배심원이나 공증인이 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천대를 받았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경멸과 저주의 대상인 세리 마태오를 제자로 부르신 것은 당신의 복음화 여정에 치명타를 안겨줄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모험을 감행하셨고 그 모험은 보기 좋게 성공했다.

그런데 2000년이 흐른 지금, 예수님의 선택에 금이 가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당신이 뽑아 세우신 사람들 사이에서….

개신교 목사를 비롯한 교직자들이 뭇사람들의 지탄의 대상이 된 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가톨릭교회는 그 여파에서 멀리 비켜나 있는 듯했지만, 한동안 이웃종교에 머물던 손가락질은 어느 새 교회의 변두리를 넘어 중심을 향해 가고 있다. 아버지의 집 한켠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의 한복판에 사제들이 서있다는 점에는 대체로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는 분위기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공감대가 시간을 거듭할수록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장 백운철 신부는 “한국 교회의 성장 발전에 사제들이 적잖은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면서도 “하지만 성장의 이면에 놓인 사목자들의 관리자 의식과 성공주의적 태도가 많은 이들을 실망시키고 결국 교회를 떠나게 만드는 부작용을 일으켰다”고 지적한다.

신자들 뇌리에는 ‘사제’하면 ‘사목자’라는 의식보다는 ‘관리자’라는 인식이 먼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게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이로 인해 교회는 하느님 나라로 가는 세관, 사제는 세리가 되고 만 형국이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한국교회만의 것이 아니라 전 세계 교회가 겪고 있는 공통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교회 쇄신을 부르짖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우리는 자주 은총의 촉진자보다는 은총의 세리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관이 아닙니다. 교회는 저마다 어려움을 안고 찾아오는 모든 이를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아버지의 집입니다.”(「복음의 기쁨」 제47항)

어쩌다가 아버지의 집이…

아직 한국교회에서는 눈에 띄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사목자가 세리로 추락하는 양상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걸까.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현대를 살아가는 사제들 가운데 적잖은 수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신자유주의 경제논리에 젖어버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전 세계 교회를 통틀어 오늘날 가톨릭교회가 직면한 문제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이 교회의 ‘중산층화’라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이들의 교회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반영하는 것일 뿐 문제의 본질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특별히 사목자들에게 뼈아프게 다가오는 문제의 본질은 사제를 필두로 많은 교회 사목자들이 동족을 못살게 굴던 ‘세리’의 위치로 전락해 그들의 모습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제가 마치 하느님 나라로 가는 통행세를 걷는 세리처럼 여겨진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박동호 신부는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세상이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의 사회로 막무가내로 진화할 때 교회가 그 흐름에 편승해 보조를 맞추면서 이제는 자본의 논리가 교회를 압도하는 형국이 펼쳐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상의 도전에 교회가 적절한 응전에 나서지 못함으로써 실기했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교회의 중산층화를 걱정하기보다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풍조마저 확산되고 있다. 오히려 발전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만큼 신자들이 잘 살게 되고 영향력도 커진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일면 맞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버젓이 부자의 문 밖에 가난한 라자로가 굶주리며 웅크리고 앉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세례 받은 이들이 교회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특정 구조와 일부 본당과 공동체들의 냉랭한 분위기, 또는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단순한 문제든 복잡한 문제든 이에 대응하는 관료적인 태도에 기인한다는 것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많은 곳에서 행정적인 측면을 사목적 측면보다 우선시하고, 복음화의 다른 형태들은 뒷전으로 물리고 성사 집전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복음의 기쁨」 제63항)

관료적·행정적 모습이 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교황의 질타가 폐부를 찌르듯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웬일일까.

교황은 아버지의 집을 갉아먹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영적 세속성에서 찾는다.

“영적 세속성은 신앙심의 외양 뒤에, 심지어 교회에 대한 사랑의 겉모습 뒤에 숨어서 주님의 영광이 아니라 인간적인 영광과 개인의 안녕을 추구하는 것입니다.”(93항)

겉으로는 별 문제 없이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신앙의 가면’을 쓴 영적 세속성이 교회 안에 스며들면 단순히 도덕적인 다른 모든 세속성보다 더 엄청난 재앙이 되고 마는 현실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교회는 어려움을 안고 찾아오는 모든 이를 위한 자리가 마련돼 있는 아버지의 집이다. 사진은 새끼양을 목에 업은 프란치스코 교황.【CNS】

사제, 복음의 기쁨 전파자

로마 제국에 세리는 충실한 길잡이였다. 지역사회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세리의 존재로 인해 로마의 제국 통치는 인류 역사 속에서 명멸했던 어느 제국보다 효율적일 수 있었고 이 때문에 그 어느 제국보다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세리의 충성에 대한 반대급부로 로마 제국은 그들에게 사회적 부와 생명을 담보해주었다.

교회 안에서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강고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이들이 주교를 비롯한 사제라는 점에서 이 두 계층은 비슷한 점이 있다. 한쪽은 제국을, 다른 한쪽은 하느님 나라를 지탱하게 해주었다는 면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점차 자신들이 지닌 권한의 관리자로 변모해왔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가톨릭신문이 교황 방한을 앞두고 실시한 ‘교황 방한, 응답하라 2014 한국교회 – 교회 쇄신, 300인에게 물었다’ 설문에서 쇄신이 긴급한 영역 중 제일 첫 손가락에 사제가 꼽힌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성직자들의 권위주의와 성직중심주의’(44.08%)로 나타난 교회 운영에 있어서의 문제점은 대체로 사목자가 아닌 관리자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사제들의 모습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이와 관련해 조인영 신부(예수회 한국부관구장)는 “교황이 일반 신자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비를, 성직자들에게는 강력한 쇄신을 요청하고 있다”며 “복음의 기쁨을 전하기 위해 파견된 이가 사제들이기 때문에 사제들에게 그 어느 지체들보다 강한 쇄신이 요청된다”고 말했다.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제들이 관료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자상한 충고를 잊지 않는다. 그는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 종교가 자유롭게 되기를 바라셨다. 교회가 나중에 추가한 규범들이 ‘신자들의 삶에 짐이 되지 않도록’ 그리고 우리 종교를 종살이로 만들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면서 끊임없는 식별을 통해 복음의 핵심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교회의 일부 관습들을 걸러내 교회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으라고 요청한다.

교황이 지적한 신자들의 삶에 짐이 되는 규범과 복음의 핵심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관습이 오늘날 교회가 겪고 있는 질곡을 낳는 것이라면 과감히 이를 벗어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늘 새로운 복음화의 여정을 걸어갈 수 있다.

가톨릭대학교 백운철 신부는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는 사회에서 누구나 늑대처럼 영악하게 살고자 하지만 교황은 골리앗과 다윗의 예를 들며 양으로 살라고 권고한다”며 “사제들은 성장 추구형 관리자가 아니라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 떠나는 착한 목자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로부터 늘 새로운 생명을 받음으로써 늘 새로워져야만 하는 복음화 여정과 그 길에서 펼쳐지는 사목의 주체는 그 누구보다도 교회 공동체와 그 구성원 전체이다. 아버지의 나라를 향해가는 길에서 사목의 풍요로움은 교회 구성원들의 친교성과 선교성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