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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주일 특집 대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보이는 이냐시오·프란치스코 성인

정리 이지연 기자 (mary@catimes.kr),사진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4-06-24 수정일 2014-06-24 발행일 2014-06-29 제 2901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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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처럼 친근하고 ‘이냐시오’처럼 과감한 교황
예수회 출신 첫 교황으로서 삶 자체에서 이냐시오 영성 묻어나

교회 쇄신 주도하도록 선택받은 교황

프란치스코 성인 정신 몸소 실천하며 가난한 이와 함께하는 행동하는 교황

복음적으로 나아가는 교회 변화 기대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초의 예수회 출신이자 266명의 교황 중 처음으로 프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이냐시오 성인과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을 몸소 보여주며 교회 쇄신을 주도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초의 예수회 출신이며, 266명의 교황 중 처음으로 ‘프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선택했다. 그래서일까? 교황의 행보는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친근하고 이냐시오 성인처럼 과감하다.

교황주일을 맞아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오상선 신부와 예수회 제병영 신부가 한자리에 모였다. 오는 8월 한국을 방문하는 프란치스코를 제대로 알고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다. 두 신부의 대화 속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보이는 이냐시오 성인과 프란치스코 성인’을 만나본다.

- 오상선 신부(이하 오 신부): 1년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교회의 모습을 변화시켰어요. 외형적인 모습이 아니라 교회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셨죠. 훌륭한 지도자를 통해서 교회 조직이 일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시는 것 같아요.

- 제병영 신부(이하 제 신부):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에 관한 강의를 다니면서 항상 ‘중년에 사랑에 빠졌다’는 말을 해요. 6월 말 출간되는 「세상의 매듭을 푸는 교황 프란치스코」까지 지난해 교황 선출 이후 세 권의 책을 번역하면서 교황께 빨려 들어갔어요. 그러면서 교황의 메시지가 저에게 와 닿았어요. 그리고 교황께서 말씀하시는 사제, 수도자로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저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 오 신부: 네, 신부님의 말씀처럼 그분의 정신을 배우고 따르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교황으로부터 시작된 쇄신이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쳐서 우리 스스로 더 복음적으로 되고 각 공동체가 움직여야 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기인이 나왔다가 지나가는 것처럼 될까 우려됩니다.

- 제 신부: 교황의 말씀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해요.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 역시 교황 방문을 앞두고 있는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가장 먼저 방문하는 분이 누구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하셨어요.

- 오 신부: 교황께서는 남미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사제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해방신학적 의식과 로마교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계셨을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하느님께서 이 시대 교회의 쇄신을 위해 보내주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교회의 모든 신자, 성직자들이 교황의 행보를 통해 하느님께서 무엇을 바라시는지 같이 읽어내야 합니다.

- 제 신부: 1년간의 교황 강론과 말씀을 번역하면서 느낀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확실한 신원을 갖고 계시다는 점이에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에요. 그의 삶에서 두 가지 체험이 예수님을 만났다고 생각해요.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본 뒤 존재의 변화를 느낀 17살 때의 체험과 콘클라베에서 선출이 확정되고 근심과 번민에 싸여 기도하는 중에 빛을 체험한 후 교황직 수락서에 사인했다는 일화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그분이 살아가신 모습대로 살아가려는 교황의 노력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교황으로서의 권위를 낮은 자리 즉 겸손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고 봅니다.

- 오 신부: 교황께서 ‘프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선택하셨을 때, 놀랐어요. 수많은 프란치스코 가족 수도회가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 프란치스칸에게는 적잖은 충격이었어요. 더불어 자극이 됐습니다. 이 시대에 프란치스코 정신으로 꽃피워야겠구나 하는….

- 제 신부: 2000년 역사 안에서 예수회 출신으로는 첫 교황이십니다. 예수회원으로 양성되고 38살 나이로 관구장 직책을 맡아 6년간 수행한 분이죠. 그런 부분에서 봤을 때 그분의 삶 자체에서 예수회 영성이 묻어나올 거예요. 특히 피정 등에서 교황께서 자주 던지는 질문 중 하나가 “당신은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해왔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예요. 이 질문은 어떤 의미에서 이냐시오 영성의 화두와 같은 것입니다.

- 오 신부: 예수회 출신이시지만 프란치스칸보다 더 프란치스칸 같은 분이에요. 교황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마십시오”라는 브라질 클라우디오 휴메스 추기경의 말에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하셨다고 밝히셨어요. 아시시를 방문하시고 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화해를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에서 이름만이 아니라 정신까지 받아들였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보다도 프란치스코적으로 살고 계신 거죠. 우리 사부님이 다시 살아 돌아오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 제 신부: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사시는 분이죠. 이냐시오 성인도 그리스도인 본연의 자세로 교회의 쇄신을 주도했어요. 교황에 관한 책을 번역, 편역하면서 느낀 점이 있어요. 이냐시오 성인께서 풍전등화인 가톨릭교회 안에서 쇄신운동을 벌여 도움을 줬다고 본다면, 현대교회가 직면한 위기 상황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등장하셨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교회의 쇄신을 주도할 수 있는 분으로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에요.

- 오 신부: 프란치스코 성인 역시 쇄신의 길을 걸었어요. 성인은 ‘교회와 사회의 부조리 앞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실천적인 삶으로 보여줬어요. 예수님과 제자들의 삶을 동경하며 가난하고 소외 받는 이들과 함께했어요. 교황에게서 이러한 성인의 모습이 겹쳐져 보여요.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교황을 통해서 프란치스코 성인을 재조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제 신부: 교황께서는 늘 ‘새로운 복음화’를 강조하세요. 여기서 복음화는 영세자가 늘어나고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적인 복음화를 의미해요. 일방적인 복음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죠. 복음화의 모든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두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아들이면서 사람인 그분이 가진 권위는 세속의 왕과 같은 권위가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 받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봉사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있을 때 위력을 발휘해요. 교황께서는 예수님을 바탕으로 한 당신의 삶과 말씀으로써 이냐시오 영성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 오 신부: 교황을 보면 프란치스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껴요. 프란치스코 영성의 보고 중 하나가 ‘기쁨의 영성’이에요. 프란치스칸 형제들은 어떤 죄 중에 있어도 우울해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죠. 이 영성을 교황께서 보여주십니다. 누가 봐도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모습을 갖고 계신데, 기쁨의 영성을 사는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죠. 우리 삶에도 교황과 같이 기쁨의 영성이 묻어나고 있는지 성찰하게 돼요.

- 제 신부: 교황은 세상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는 분이십니다. 뭐랄까?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해주신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말이 아닌 실질적인 행동으로 보여주세요. 이냐시오 영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다들 그렇게 살 수는 없죠. 그런 의미에서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분이라고 생각해요.

- 오 신부: 교회의 참 개혁가요 쇄신가로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이 어떤 방식으로 교회를 변화시켰는지 교황을 통해 다시 바라보게 돼요. 프란치스코 교황을 통해서 이 시대 교회가 제대로 방향을 잡겠구나 싶어요. 이를 바탕으로 교회의 방향이 더 의미 있고 복음적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제병영 신부(예수회)

1983년 예수회에 입회해 1994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예수회 한국 진출 50주년 준비위원장, 서강대학교 이사 및 상임이사, 애틀랜타 한국 순교자 천주교회 주임을 역임했으며, 예수회 미션 한국 관구장 대리로 캄보디아 현지에서 봉사했다. 현재는 서강대학교 국제문화교육원 원장으로 재임 중이다.

오상선 신부(작은형제회)

1980년 작은형제회에 입회해 88년 종신서원을 하고 이듬해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수련장, 부관구장, 관구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산청 성심원 원장을 맡고 있다.

정리 이지연 기자 (mary@catimes.kr),사진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