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교황 방한, 응답하라 2014 한국교회 -특별기획을 시작하며-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4-06-10 수정일 2014-06-10 발행일 2014-06-15 제 2899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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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 보수 넘어선 열린 생각 전제될 때 ‘복음의 기쁨’도 넘쳐
■ 글 싣는 순서

1. 한국교회, 쇄신의 전제들

2. 사제, 왕인가 종인가?

3. 세상의 복음화 또는 교회의 세속화

4. 세관이 아니다 여기는 아버지의 집이다

5. 가난한 사람들, 교회가 편안하십니까?

6. 충실한 평신도들은 여전히 부족하다

7. 나를 성당 안에 가두지 말라

8. 어떻게 순교하시겠습니까?

9. 하나 되게 하소서

쇄신의 교황 프란치스코의 8월 14~18일 한국 방문은 2014년 한국교회에 변화와 쇄신을 요청한다. 이미 쇄신의 메시지는 전해졌고, 한국교회의 응답이 남았을 뿐이다.

가톨릭신문은 교황 방한에 대한 응답의 의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한국교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는 한국교회가 분명하게 쇄신을 열망하고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주었으며, 성직자의 쇄신을 핵심으로 하는 쇄신의 영역까지도 제시했다.(가톨릭신문 6월 8일자 ‘커버스토리’ 10·11면 참조)

가톨릭신문은 이제 교황 프란치스코가 한국에 도착하는 8월 중순까지 총 9회에 걸쳐, 지난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쇄신의 열망을 바탕으로 삼아, 긴급하게 쇄신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던 영역과 주제들을 그 우선순위에 따라 더 깊이 성찰하고자 한다.

쇄신의 열망은 확인됐다. 쇄신에 대한 기대와 바람은 필요성에 대한 인식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미흡하나마 여전히 높다. 이제는 쇄신 의지를 다져야 할 때이다. 설문조사에서 나타났듯이, 쇄신의 영역은 광범위하다. 그 영역들을 하나씩 짚어보는 일은 이제부터 할 일이다. 다만 이에 앞서, 유념해야 할 몇 가지 전제 조건 혹은 사전 작업들이 있다. 교회 쇄신 논의의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입장의 차이를 가질 수 없는 기본 전제와 과제들은 분명히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공감하고 동의해야만 쇄신의 논의가 실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1.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적용하는 신학 작업이 중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후 일관되게 교회의 쇄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 이는 성령께서 교황을 통해서 우리에게 쇄신을 요구하는 것이며, 우리는 결국 교회 쇄신이라는 성령의 요구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전교구 김유정 신부(대전가톨릭대 교수)는 쇄신의 요청이 성령의 부르심이라고 해석하면서, 「복음의 기쁨」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 교회 쇄신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한국교회는 이러한 방향을 제대로 감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복음의 기쁨」은 한글 번역본 초판 5천부의 예약이 발매 전에 완료됐고, 발행 2주만에 2만부, 3개월이 채 안돼 4만부가 판매됐다. 기존 교황 문헌들이 평균 3000~4000부였던 것을 고려하면 폭발적이었다. 관심은 높은 판매고에 그치지 않는다. 주교회의가 통독을 권고했고, 남녀 수도회들은 이를 주제로 피정과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방한 발표로 관심은 더 높아졌다. 강연과 함께, 교황 방한 준비위원회, 가톨릭 대학과 사목연구소들, 각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등이 학술 심포지엄들을 속속 개최했고 개신교 학계에서도 관심을 보여, 합동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관심에 대한 평가를 유보한다. 곽승룡 신부(대전가톨릭대 총장)는 “본당 사목 현장에서는 관심이 얼마나 있는지 의문”이라며 “교황에 대한 높은 관심이 권고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감이 있고, 무엇보다 그 실제 내용에 대해서는 관심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기쁨」을 매개로 교황의 가르침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은 의미 있는 현상으로 보이고, 곽 신부가 지적한대로 “단발성으로 읽고 공부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읽고 나누고 한국교회 현실과 상황에 적용하는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2. 지양할 것은 아전인수의 해석, 지향할 것은 진보-보수 넘어서는 복음적 태도

교황의 가르침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더 절실한 것은 그것이 올바르게 전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사제의 정치 참여에 대한 논란을 둘러싸고, 교황의 발언이나 교회법, 교리서까지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관심을 금지한다고, 일부 보수 언론이 뻔뻔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그 주장에 따르면, 평신도의 사회적 불의에 대한 관심은 의무이지만, 사제는 관심 조차 가져서는 안된다는 어이없는 결론에 이른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교황의 가르침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해야 하지만, 특히 신학자들과 교회 장상들의 선명한 입장 표명은 필수적이다. 논쟁점에 대한 신학자들의 무책임한 침묵이나, 교회 장상들의 애매한 발언은 분명한 가르침을 희미하게 만든다. 아전인수의 해석과 그것을 강화하는 무책임은 쇄신의 요청 앞에서 특별히 지양해야 할 것들이다.

반면 입장의 선명함이 진보와 보수의 잣대로서만 기능하는 것 역시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일반 언론들은 교황의 노선에 대해서 정치적 진보로 평가하기를 즐긴다. 하지만 과연 교황을 이념적으로 진보로 분류할 수 있을까? 좀 더 장황한 논거가 필요하겠지만, 교황은 진보와 보수의 잣대를 넘어선다. 「복음의 기쁨」 안에서 발견되는 진보적 입장들의 표명 역시 그 근거는 이념이 아니라 복음에 뿌리를 둔다. 결국 교회 안의 이른바 진보-보수의 긴장과 갈등을 풀 실마리 역시 교황에게서 발견된다.

혹자는 말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노선은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만, 동시에 진보 진영에도 긴장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보수가 복음적 권고에 의해서 불편함을 느낀다면, 진보 역시 복음이 자신의 자칫 세속적 접근법에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결국 복음적 가르침, 그리고 거기에 바탕한 교황의 입장은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는 복음적 태도로 봐야 하며, 진보-보수의 긴장과 갈등 역시 복음적 태도를 갖춤으로써 해소될 수 있다고 믿어진다.

3. 진보와 보수를 포함해 모든 입장이 공적인 토론의 장에 함께해야 한다

현재 교회 안에는 진보와 보수의 입장을 지닌 ‘진영’이 존재한다. 그것이 ‘분열’이든 ‘다양성’이든 상이한 의견들이 공존하는 것은 명백하다. 정당성 논쟁은 일단 논외로 할 때, 두 진영이 존재한다는 사실보다 더 명백한 것은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말 부산에서 열린 우리신학연구소 20주년 지역 순회 행사는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이하 대수천) 인사의 참석이 예정됐었다. 행사 며칠 전 불참 의사를 밝힘으로써 아쉬움을 남겼지만, ‘평신도의 자화상’을 주제로 ‘대화’를 나눠보려던 취지만은 의미가 있었다.

정치적 의미가 큰 이슈들을 두고, 정의평화위원회, 정의구현사제단,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그리고 대수천 등으로 상징되는 두 진영은 최근 몇 년 동안 끊임없이 부딪혀 왔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해 전국 사제들의 시국 선언을 둘러싸고, 또 강정과 밀양을 둘러싸고 성명과 구호로 부대꼈다. 이러한 입장의 차이는 교회 장상들, 주교들과 사제들 사이에서도 드러났다. 그러면 소통은? 없었다.

그렇다면, 애초에 소통은 불가한 것으로 포기하는 것이 옳은가? 가능성을 단정하는 것은 어렵지만, 적어도 이들이 함께 공적인 토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함께할 생각이 없다면 자기 주장을 접는 것이 마땅하다. 쇄신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가야 할 대화와 토론의 광장에서,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4. 교회 당국과 장상들이 구조적·제도적 차원에서 쇄신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

이 공적인 토론의 장에는 교회 당국과 장상들의 관심과 지원, 참여가 요구된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복음의 기쁨」 여러 곳에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저는 모든 공동체가 사목적 선교적 쇄신의 길로 나아가도록 필요한 노력을 다하기를 바랍니다.”(25항)

“교회는 쇄신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기 성찰을 통하여 교회의 지체들로 말미암은 결함들을 지적하고 단죄함으로써 그것들을 바로잡고자 과감하고 열정적으로 싸워 나가야 합니다.”(26항)

나아가 교황은 스스로 먼저 쇄신을 실천하겠다고 선언한다.

”제가 다른 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저도 실천하여야 하므로, 저 또한 교황직의 쇄신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저의 의무는 … 저의 직무 수행을 도와줄 수 있는 여러 제안들에 늘 열려 있는 것입니다.”(32항)

그래서 “우리는 늘 이렇게 해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버려야 할 ‘안이한 태도’라고 질책한다.

결국 “개인만이 아니라 교회 전체에 관한” 것인 쇄신은 누구보다도 먼저 교회 장상과 주교들이 관심을 갖고 추진해야 할 책무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5. 성속이원론은 반드시 포기돼야 한다

하지만 이 대화와 토론에도 조건은 있다. 세상과 교회는 분리돼 있다는 성속이원론적 사고는 결단코 포기되어야 한다.

김유정 신부는 사회교리에 대한 인식 부족이 긴급한 쇄신 과제임을 지적하고, 성과 속의 구분이 깊은 관련성이 있다고 말한다. 김 신부는 “「복음의 기쁨」에는 ‘종교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있는 것만은 아니다’라는 구절이 있다”고 지적한 뒤, ‘종말론적 영성’과 ‘육화적 영성’이 분리되지 않듯이, 신앙과 세상이 연관된다고 말한다. 노길명 교수(고려대 명예교수)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신의 권고와 삶을 통해 강조하는 것은 교회가 세상과 함께해야 하고 세상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염 전 주교황청 대사는 성속이원론의 부작용이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들의 뿌리라고까지 말한다. 그는 “사회교리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는데 있어서 그 최종적 장애물은 성과 속, 영과 육을 가르는 이원론”이라며 “트렌트공의회 이후 500년 동안 종교와 신앙 생활을 지배했던 이원론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주의적 신앙, 사회적 관심이 심각하게 결여된 자기 중심적 신앙의 행태 역시 성속이원론의 부작용이 아닐 수 없다.

가톨릭신문은 교회 쇄신을 향한 이 성찰의 과정에 독자 여러분들이 교회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허심탄회한 비판과 의견으로 동참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상기 주제들과 관련해 한국교회의 쇄신 여정에 의견을 보태고 싶으신 분들은 편지와 전자메일을 통해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보내주신 의견은 앞으로 이어질 특별기획의 구성에 충실하게 참조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주소: 서울특별시 성동구 홍익동 398-2 (도로명주소: 성동구 무학로 16) 가톨릭신문사 취재부, (우) 133-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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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