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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주일 특집] 당신의 생명은 존중받고 있습니까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4-04-29 수정일 2014-04-29 발행일 2014-05-04 제 2893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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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최고인 사회, 생명 존중 의식은 침몰 중
고도 성장·물질만능주의 … 생명 경시 풍조 만연
생명=하느님 숨결, 존재만으로 최고 존중 받아야
교회·사회 하나된 범국민적 ‘생명 존중 교육’ 중요
세월호 참사는 인간 생명보다 다른 것들을 우선시한 가치 전도의 결과였다. 생명 존중 의식이 확립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객선 세월호 참사는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이 사라진 우리 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다. 사고의 전후 모든 단계에서 생명의 가치가 뒤로 밀려난 것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물질만능주의, 성공주의, 경쟁 위주의 메마른 삶으로 인한 사회병리적인 폐해가 그 이면에 자리 잡고 있다는 현실과 맞닥뜨려 있다.

인간 생명이 수없이 희생 당하는 엄청난 참사가 발발할 때마다 도덕적 가치관과 인간성 회복을 촉구하는 목소리들도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하지만 생명 존중 의식은 사회 구성원 몇몇이 구호처럼 외친다고 해서 쉽사리 구현될 문제는 아니다.

또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가 스스로 인간 생명 존중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사회적 인격은 더욱더 비뚤어져 갈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이른바 ‘재난 상태’에서 영영 벗어나기 어렵다는 말과도 같다.

4일은 한국교회가 인간생명을 임신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존중하고 보호한다는 의지와 실천을 다짐하기 위해 제정한 ‘생명 주일’이다.

생명 주일을 맞아, 세월호 참사로 더욱더 불거진 ‘생명 경시 풍조’의 실태를 되짚고, 생명의 가치를 확산하기 위한 실천방안을 돌아본다.

인간 생명의 위기는 생명에 대한 올바른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는 데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인격의 미성숙

이른바 ‘인재’라고 정의하는 대형 사고들이 사회 전반을 뒤흔들 때마다 어김없이 규제와 제도 개선 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러나 제도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그것을 운영하는 인간의 의식이 올바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유명무실할 따름이다. 실제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전개, 수습과정 전반에서는 무책임함과 부도덕성 등이 난무했다. 특히 승무원 대부분에게선 승객의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기본적인 직업윤리의식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직후부터 나열되고 있는 부실한 안전 점검과 재난 관리 시스템 문제, 안전 불감증 등에 가려진 것은 바로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한 우리 사회 전반이다. 짧은 시간 고도성장을 이루는 동안, 사회 곳곳에서는 생명 경시 풍조가 독버섯처럼 자라났다. 경제적 이익과 성장만을 정신없이 쫓는 사이에 현대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생명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도 잊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관의 전도는 자연스럽게 인간 생명을 돈 뒤에 줄 세우고 있다. 인간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존중하고, 약자들을 우선 보호하는 사회 구조는 이미 찾아보기 어렵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생명 경시 풍조로 인해 발발하는 인간 생명 훼손은 정치·경제·사회·법·의료 등 삶 전반 어디에서든, 언제든 직면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다.

교회는 이러한 사회적 문제점들에 관해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경고해왔다. 한국 주교단은 1995년 제1회 생명의 날 담화를 통해 “순간적 만족과 개인의 편의만을 추구하고 ‘존재’보다 ‘소유’를 더 중시하는 사회 풍조”를 지적하며 “도덕적 양심이 점점 마비되어 인간 생명의 근본 가치를 가볍게 여기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나아가 생명 존중 의식이 제자리를 잡지 못하면, 이른바 일시적이고 우연이라고 주장하는 사고들을 넘어서 총체적인 사회 붕괴로도 이어질 수 있다.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은 공산주의의 몰락 원인을 설명하는 가운데 ‘거짓된 구조들의 붕괴’를 예로 든 바 있다. 이에 관해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총무 이동익 신부는 “인간다운 삶이 부정되는 국가 체제의 존속은 애당초부터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가톨릭대 생명윤리연구소 소장 정재우 신부도 “인간의 생각 구조나 방향은 언제나 인간 생명을 중시하고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현대인들은 생명을 가치서열상 금전보다 하위에 있는 것처럼 취급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비극적인 현상이 나타날 때마다 자기 보호능력이 약한 약자들이 우선 희생됨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 신부는 “인간 생명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가치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그 인식이 사회 구조 안에 자리 잡게 해야 한다”며 “사회 구조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라고 밝혔다.

인간 생명의 참 뜻

‘생명이란 무엇인가?’ 철학자나 생명윤리학자 등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관심을 가져야할 가장 근원적인 질문이다.

사회 각 분야 전문가들은 인간 존엄성이 약화된 현실 이면에는 생명에 관해 올바로 알지 못하는 문제점들이 자리 잡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리스도교 생명관은 ‘인간 생명은 하느님의 숨결이며 선물’로 요약될 수 있다. 교회는 “인간은 하느님께서 불어넣은 숨결과 모상대로 지어내셨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존엄하고 거룩하고, 불가침적이다”라고 말한다. 인간 생명의 가치는 ‘살아있다는 것 때문에, 살아 있는 인간이 누리는 가치’라고도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보편적으로 모든 인간은 특정 행동을 하거나 능력을 갖추고 있어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그 자체만으로 동등하게 존중받는다는 평등사상이 사회 기본을 받쳐야 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 면면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가치 의식이 크게 위협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현대 교회가 이 세상에서 실천하는 사명의 중심에도 언제나 인간이 자리하지만, 교회의 목소리는 선언적 구호나 윤리적이고 학문적인 인식 정도로 치부되기 일쑤다. 요한 바오로 2세 성인도 회칙 ‘생명의 복음’을 통해 “현대 사회에 ‘죽음의 문화’를 출현시킨 강력한 문화적·경제적·정치적 경향들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하느님과 인간 의식을 몰아냈다”며 “세속주의와 물질주의는 하느님을 빼앗아 버렸고, 결국 인간 존엄성과 생명에 대한 존중 의식마저 빼앗아 버렸다”고 토로했다. “인간의 생명을 더 이상 하느님의 빛나는 선물로, 자신의 책임에 맡겨진 따라서 사랑으로 보살피고 존중해야 할 ‘신성한 어떤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가톨릭대 철학과 신승환 교수는 “인간 생명 존중에 관한 교회의 선언이 공명을 얻기 위해서는 그 가르침이 우리 문화의 지평 안에 올바로 수용될 수 있도록, 현대 문화 전반에 대한 반성과 분명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우리가 인간 생명을 바라보는 시선이 비뚤어져 있음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는 말이다.

범국민적인 생명 존중 교육

국민들이 인간성을 회복하고 도덕적 가치관을 올바로 세우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또한 중·장기적으로 이어가야할 과제로는 ‘생명 존중 교육’이 제시된다.

‘생명 존중 교육’의 근본적인 목적은 인간 생명의 의미와 존엄성을 올바로 이해하는데 있다. 특히 우리 사회의 생명 존중 교육은 비정상적인 성장과 비뚤어진 가치관을 바로 잡는 노력의 하나로 우선 제공돼야 한다. 이러한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는다면 이른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상황이 생겨났을 때 여전히 생명의 존엄성이 배제될 수 있다.

가톨릭 생명윤리 교육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로 꼽히는 마리아 루이사 디 피에트로 교수(이탈리아 로마 성심가톨릭대 의대 생명윤리)는 “도덕 교육이란 자율성 교육 혹은 자유를 책임있게 조절하도록 교육하는 일”이라며 “도덕적 성숙이란 각각의 선택을 인도하는 기준이 되는 규범들을 성찰하고 해석하고 내면화하는 능력을 말한다”고 조언한다.

전통적인 대가족 구조 안에서는 가정 안에서 자연스럽게 전수되던 가치관이 단절되고 각종 사회문제들이 복잡다단하게 불거지면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생명 존중 교육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반면 우리 사회 전반을 살펴보면 총체적인 전인교육과 전문적인 생명 윤리 교육 기반이 크게 부족하다. 초·중·고등학교에서 진행하는 의무적인 ‘생명 존중 교육’도 실제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성교육 혹은 성추행과 성폭행 등의 예방을 위한 특강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나마도 일회성 행사로 마련하는 경우가 왕왕 이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라 각계 전문가들은 각 종교와 사회기관들이 공동 네트워크 등을 구축, 범국민적인 생명교육 지원에 나서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범국민적인 ‘생명 윤리 기금’을 조성한다면 생명 존중 교육 프로그램을 확산하고, 교육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에도 힘을 얻을 수 있다. 각 본당과 연계한 지역사회 내 ‘생명 존중 교육’ 과정의 상설화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진교훈 서울대 명예교수는 “생명 존중 교육은 우리가 생명을 부여받은 순간부터 죽기까지 우리 모두에게 부과된 숙명적인 과제”라며 “생명 존중 교육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연구하고 근본적인 교육 혁신을 이룰 때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구현하는 몫은 교회와 사회, 국가 공동체 모두가 연대해 실천해야할 필수과제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각자 생활 속에서 적극 실천할 몫이다. 각계 전문가들 또한 “인간 생명 존중의 가장 큰 장애물은 개개인의 무관심한 태도”라고 경고한다.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