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송창현 신부의 생태영성으로 보는 샬롬과 살림의 성경읽기 (91·끝) 사회 - 경제적 정의

송창현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입력일 2014-04-22 수정일 2014-04-22 발행일 2014-04-27 제 2892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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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말씀하신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루카 16,19-31)는 기원후 1세기 팔레스티나의 사회-경제적 실상을 반영한다. 이 비유에서 부자와 가난한 라자로는 극명하게 대조적으로 소개된다. 부자의 나날은 풍족하고 안락할 뿐 아니라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이었다. 부자는 화사하고 값진 옷을 입고 살았다. 그러나 가난한 라자로는 화려한 옷이 아닌 종기가 그의 몸을 덮고 있었다. 부자의 삶은 풍족하고 모자람이 없었으나 라자로의 삶은 부족하고 궁핍하였다. 라자로는 배가 고팠고 질병으로 고통 받았으며 부자 집 대문 앞에 누워 있었다. 라자로는 당시의 사회-경제적 체제로부터 내쫓긴 가난한 이들을 대표한다. 그는 극단적인 가난, 배고픔, 영양 부족, 질병, 죽음에로 내몰렸다. 이와 같이 부자와 라자로는 예수님 당시의 사회-경제적 동전의 양면을 대변한다. 그런데 예수님의 비유 말씀이 진행되면서 부자는 결국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라자로는 긍정적으로 소개된다. 예수님은 이 비유 말씀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였을까? 과연 부자는 무엇을 잘못하였던 것일까?

우리는 가난한 라자로가 누워 있었던 부자 집의 대문에 주목하고자 한다. 부자 집의 대문은 그 집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재산을 보호하는 수단이었다. 즉 대문은 가난한 이들로부터 부자를 지켜주는 역할을 하였다. 동시에 집의 대문은 집 바깥의 세계와 그곳에 존재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위한 통로였다. 집 안의 사람은 대문을 통해 바깥 세계와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만남은 집의 대문이 열려 있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만일 집의 대문이 닫혀 있다면 집 안과 밖의 만남과 나눔은 불가능하게 된다.

오늘 비유에 등장하는 부자의 잘못은 그 집 대문 앞에 누워 있던 가난한 라자로를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부자는 집의 대문을 굳게 닫아놓고 있었다. 굳게 닫혀진 대문 안에서 부자는 안락하고 풍족한 삶을 향유하고 있었다. 결국 부자가 소홀히 한 것(omission)은 집의 대문을 활짝 열고, 대문 바깥의 다른 사람, 너를 만나지 못한 것이었다. 굳게 닫혀진 대문 바로 앞에 쓰러져 있던 가난한 사람을 만나는 것에 소홀히 한 것, 그것이 바로 부자의 잘못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의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당시의 지배 체제에 대한 도전인 동시에 새로운 사회-경제적 정의(socioeconomic justice)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결국 예수님은 지배 체제의 폭력에 의해 비참한 죽임을 당하시지만, 그분의 부활은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복음적 가치의 승리를 의미한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만나는 부자의 모습에서 오늘의 그리스도인과 교회 공동체는 불편함을 느낀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문을 굳게 닫고 집 안에서 평온하고 안락하게 살아가는 신앙인과 교회의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홀히 한 것, 빠트린 것, 게을리 한 것은 바로 우리의 집 대문 앞에 누워 있는 가난한 이들을 발견하고 만나는 일, 가난한 이들과 함께 공감하고, 그들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기(compassion), 그래서 마침내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preferential option for the poor)이지 않겠는가? 얼마나 뿌리 깊은 이기심과 탐욕이, 그리고 얼마나 많은 현실적인 핑계와 잘못된 신학이 우리가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을 가로 막는 굳게 닫힌 집 대문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의 비전(vision)은 오늘의 그리스도인을 사회-경제적 정의를 위한 행동에로, 곧 가난한 이들을 위한 돌봄(care), 환대(hospitality), 함께 아파하기(compassion), 관대함(generosity), 관용(tolerance), 사회적 연대(social solidarity)와 상호 책임성(mutual responsibility)의 실천에로 초대한다.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학위(S.S.D.)를 취득했다.

이번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지금까지 집필해 주신 송창현 신부님과 애독해 주신 독자께 감사드립니다.

송창현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