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함께 걷자 믿음의 길] (14) 주님의 은혜로운 해 ‘희년’

정리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4-03-04 수정일 2014-03-04 발행일 2014-03-09 제 2885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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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 본뜻은 ‘하느님·전 인류와의 일치’
시대를 흐르며 정신적 차원으로 전승된 구약의 희년은, 메시아이신 나자렛 예수님 안에서 온전히 실현됐고 이후에는 교회 안에서 계승됐다. 그러나 교회의 희년은 단순히 기념적 차원에서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나눔으로 더욱 높고 완전하게 드러나야 한다. 따라서 거룩한 교회는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희년에 대한 옛 관습을 물려받고, 근본정신을 시대에 맞게 재해석해 새로운 복음화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 희년의 기원과 근본정신

희년의 기원은 구약시대의 희년 곧 ‘사면 또는 해방의 해’에서 찾을 수 있다. 레위기에 따르면 오십 년째가 되는 해는 ‘거룩한 해’로 선언돼, 그 해에는 나라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했다.

매 일곱째 해는 안식년이며,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낸 다음해 곧 50년 되는 해가 ‘희년’이다. 이집트 탈출에서 얻은 해방과 가나안 정복으로 얻은 재산의 궁극적 소유권이 하느님에게 있음을 이스라엘 백성이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희년의 근본사상이다.

한편 희년은 ‘해방의 해’로 간주됐다는 점이 안식년과 구별된다. 이사야서는 희년의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을 부각시킨다. 자유를 되찾아주는 해방과 원래의 온전한 상태로 되돌리는 회복이 그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희년

하느님 나라와 희년의 결합은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하느님께서 결정적으로 인간 역사에 개입해 들어오신다는 종말론적인 전망과 하느님의 은혜로운 개입에 인간이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에 대한 윤리적 요구를 제시한다.

결국 구약의 희년 정신과 메시지는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 안에서 최종적으로 실현됐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혼신의 힘을 기울여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로 희년의 메시지 전체가 수렴된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그처럼 증언하셨을 뿐 아니라 당신 스스로 그 증언의 내용이셨다. 이웃을 풀어주고 그 소유와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사랑으로 다 내어주는 것을 당신 삶과 죽음의 의의로 삼으셨던 것이다.

■ 교회가 희년을 기념하는 희년의 본뜻

2000년의 역사를 지닌 교회는 1300년부터 희년 혹은 성년을 기념했다. 교회의 첫 희년을 기념한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매 세기 초에 희년을 거행하기 원했으나 이후 구약의 희년처럼 50년마다 거행하도록 정했다.

현재 희년은 25년마다 정기적으로 기념하며, 교회의 특별한 요청과 필요성이 있을 시에는 ‘특별 희년’을 지내기도 한다.

희년은 죄와 그에 따르는 벌을 사해주는 용서의 해, 대립된 집단 사이에 화해가 이뤄지는 해, 다양한 회개와 성사적, 성사 회적 참회의 해로서, 공동체 모두가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는 해이며,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와 만나는 해이다. 하느님과 일치 그리고 전 인류와 일치를 이루는 것이 교회가 실천해야 할 희년의 본뜻이라고 할 수 있다.

■ 희년을 구성하는 요소

교회 희년의 신학적인 핵심은 전대사를 부여함으로써 그동안 지은 죄로 인한 잠벌을 사해주고 영적 선물을 충만히 받게 하는 것이었다.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교서 ‘제삼천년기’에서 희년을 준비하는데 필요한 요소로 특별히 다음 세가지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첫째 용서와 회개다. 용서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인해 그분으로부터 거저 받는다는 것이 신학적 핵심이다. 이 같은 용서는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공로와 밀접히 연결돼 있다.

둘째는 순례다. 순례는 거룩한 것과의 만남인 동시에, 공간과 사회 그리고 심리적인 현 상태를 벗어나는 것이다. 인간은 순례를 통해 일상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되찾고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는 체험을 한다.

세 번째는 대사를 얻게 함이다. 실제로 대사가 목표로 하는 것은 어느 신자의 잠벌을 면제 받도록 하는 것뿐만 아니라, 신앙을 돈독히 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신앙을 실천케 함이다.

믿음의 길 154~163p.

정리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