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전통 영성의 샘을 찾아서] 제9차 유럽 수도원 순례 참가기] (3·끝) 이탈리아 지역

노춘석(멜라니아·창녕공고 교사),사진 김상희(데레사)
입력일 2014-02-27 수정일 2014-02-27 발행일 2014-03-16 제 2886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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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베로나, 마돈나 델라 코로나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는 마침 열린 교구장 착좌식 미사에 참석할 수 있었다. 인파와 행렬과 깃발과 음악, 소년과 성인 합창단의 전례가 중세영화처럼 장엄하게 펼쳐졌다. 화려한 행사를 뒤로 하고 6시간을 달려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인 이탈리아 베로나에 도착했다. 물살 센 아디제강 오래된 다리를 건너 두오모성당으로 가는 길은 비좁고 집들은 무너질 듯 세월에 낡았다.

웅장한 벽돌색 성당은 1139년 재건한 로마네스크양식과 내부 고딕천장의 옛 모습을 보존하고 종탑은 세 시대를 거쳐 완성, 천장에는 성모승천을 목격한 사람들의 놀라고 긴장한 원근법의 16세기 그림이 있다. 교회 건축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베로나 두오모와 노란 벽과 붉은 지붕의 고풍스런 베로나에 매혹된 순례단은 마돈나 델라 코로나 700고지 성모성지를 향한다. 지도신부님은 ‘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의 김정훈 부제의 마음으로 훌륭한 대자연을 묵상하며 순례하란다.

바람 센 높은 산 동굴에서 성 제노와 베네딕도 수도회 수사들이 1200년대 초 은수생활을 시작하며 절벽을 파 성당을 짓고 15세기에 로도스기사단이 여기 머물며 1432년 로도스에서 제작한 통고의 피에타상을 모신 후 순례와 기적이 이어진다. 1527년 오스만의 점령으로 성당은 허물어지고 빼앗긴 피에타는 17세기에 찾는다. 바로크성당은 1600년대에 완공, 나폴레옹 점령 후 베로나 교구가 관리하여 19세기말 확장한 후 아름답게 꾸민다.
베로나 마돈나 델라 코로나 성지의 통고의 피에타상.

소성당 스무 칸 정도의 고해소에서 순례자들은 죄를 씻고 맑은 공기로 영혼을 채워 통고의 성모님을 만난다. 교황 비오 10세와 복자 요한 바오로 2세가 순례한 이곳은 전대사 성지이다. 당시는 큰길이 없어 계곡의 900계단을 올라야 했다. 르네상스에 많은 영향을 준 지오또의 프레스코화가 있는 작은 방을 거쳐 성모칠고경당 창문으로 저 아래 아득한 계곡과 먼 풍경이 장관이다. 대성당 벽은 바위절벽 그대로이고 흰색 천장은 높고 둥글고 훤하다. 고딕의 뾰족한 첨탑은 천장을 뚫고 올라가는 나무로 숲이 되어 거룩한 하느님이 계시는 곳이 된다.

십자가에서 내린 아들을 안은 성모님을 바라보는 순례단 표정은 깊은 아픔을 함께한다. 상처투성이 어머니께 무엇을 소원하랴? 겨울의 깊은 침묵 속에서 찢어지는 가슴을 어쩌지 못하여 하늘만 쳐다보는 어머니를 두고 은은한 소나무 향기 속에 십자가 길을 바치며 수월하게 내려온 길을 오르자니 숨이 찬 순례자들은 겹겹의 산줄기들을 보며 14처에 새겨진 사실적인 예수님이 땀이 나도록 절절하다. 제노 성인의 믿음과 마돈나의 사랑이 세상으로 전해지는 마돈나 델라 코로나는 멀어진다.

■ 성 베네딕토의 산, 수비아코

오래전부터 수비아코는 신비였다. 파도바의 쁘랄리아수도원, 피렌체, 로마 성 안셀모수도원과 바오로대성당 등을 순례하고 깊은 골짜기 벼랑에서 성 베네딕토가 하느님 사랑에 빠진 기도의 산으로 향한다. 해발 410m 수비아코 마을을 지나자 구불대는 산자락마다 성인의 역사와 자취가 축복처럼 서렸다. 나무 한 그루 예사롭지 않고 산위의 십자가는 수비아코성당을 마주 본다.

수도원 첫 마음 출발지인 수비아코, 하느님 외에는 어떤 것도 소용없다며 한 계단씩 다가가는 깨달음의 길로 험한 절벽을 오른 길, 절벽을 평지로 만든 공동체의 규범 베네딕토 규칙서는 모든 수도원의 모범이 되고 1500년 전통으로 내려온다. 정주생활의 수도회를 창설하고 기도하며 일하라는 가르침을 준 엄률의 성인에게 여동생 스콜라스티카는 사랑의 하느님을 알게 한다. 도토리알을 밟으며 올리브숲을 지나 마지막 좁은 문의 계단길이 끝나자 눈앞에 딱 나타나는 수비아코수도원. 바위벼랑에 달라붙은 수도원은 수도자의 길을 말해준다. 3년 동안 성인이 바위굴에서 수행할 때 저 위에서 빵바구니를 절벽으로 내려준 수사의 일이 궁금한 세상의 우리들.
베네딕토 성인과 여동생 스콜라스티카 무덤 위에 만든 제대.

세 분의 수사가 있는 수도원은 고요하다. 미사를 드리며 부르는 순례단의 노래가 바위벽에 부딪쳐 건너편 산으로 오른다. 성인의 기도가 산을 내려가자 기를 쓰고 올랐을 옛 사람들의 찬가를 오늘은 순례자들이 부른다.

3층으로 된 수도원의 맨 위는 성당, 2층은 동굴성당, 아래층은 작은 베란다와 정원에 이어 수도원이 있다. 제비집 수도원 성당에 시에나 화가들이 프레스코화를 그렸다. 좁고 긴 바닥에는 강렬한 모자이크화가 있고 수난과 부활 그림은 교육용으로 사용하였다. 성인이 유혹을 이기려고 가시밭에 맨몸을 굴리자 가시 없는 장미꽃이 핀다. 1223년 이곳을 찾은 프란치스코도 같은 경험을 한다. 두 성인의 세기적 만남, 천사들이 산을 감싸고 천상의 노래가 가득했을 그날, 프란치스코가 가져온 가시 없는 장미는 없지만 작은 정원에 이 겨울 붉은 장미 몇 송이 피어 있다.
수비아코수도원 2층에 마련된 동굴성당. 베네딕토 성인의 첫 수행장소로 알려진다.

거룩한 동굴성당에서 임의 절대고독 앞에 선 그를 잡고 순례단은 차례로 기도한다. 염원은 달라도 천상을 그리는 마음은 뜨겁고 머물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접는다.

수비아코수도원 전경. 해발 410m 수비아코 마을을 지나 깊은 골짜기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 하늘의 옷감 몬테카시노

수비아코를 떠나 형제적 사랑을 실천하는 공동체를 살기 위해 몬테카시노로 간 성인은 독살의 위협을 받고 완고한 마음을 깨우치며 동굴기도로 돌아가 12개 수도원을 세우고 은둔생활을 마친다.

오후 4시 기도에 맞추기 위해 지그재그 가파른 고개를 오른다. 저녁 안개 엷게 두른 카시노의 사방 산들, 구름은 군데군데 산자락을 둘러 너른 카시노의 그윽함이 펼쳐지는 저녁산정에서 성인이 보았을 풍경. 산꼭대기 수도원은 사라센침략과 지진, 전쟁으로 파괴되고 재건된 여기서 인간의 황폐한 마음도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부가 머문 이곳에서 군종사제는 대공세에 대비해 중요한 것을 바티칸으로 옮기고 몬테카시노는 전쟁의 번제물이 된다. ‘몸은 이곳에, 마음은 고국에, 영혼은 천국에 있다’는 폴란드병사의 묘지를 보며 긴 계단을 올라 들어간 성당, 높은 제대 가대에서 들리는 수도원의 저녁기도는 아득하고 가늘고 높게 제대와 독서대와 금빛 나는 성당에서 천사와 함께 찬미를 드리는 굉장한 시간, 검은 옷의 수사 열 분이 기도를 마치고 가만히 내려온다. 어떤 사념도 없는 기도의 얼굴로 검은 수도복에 묻혀 평생을 봉헌한 노 수사들이 저녁 빛에 경건하다. 성당의 천국그림은 수사들에게는 현재이며 순례자에게는 이상이다.

베네딕토 성인과 여동생의 무덤 위에 만든 제대에서 같은 날 태어나 죽어서도 함께 하며 엄한 오빠를 사랑과 완덕의 길로 이끈 쌍둥이 여동생처럼 사랑의 길이 되고자 순례단은 기도한다. 체코에서 출발하여 믿음의 여정을 지난 격한 감정을 수도원의 아버지가 큰 손으로 어루만진다. 이집트풍의 지하경당에서 순례의 여정은 막바지로 치닫는다.

분홍빛 노을과 짙은 구름이 하늘을 채운 몬테카시노는 예이츠의 시처럼 어우러진다. 금빛 은빛으로 밤과 낮과 저녁의 푸르고 어둡고 캄캄한 하늘의 빛으로 짠 옷감을 베네딕토 성인은 하느님 길에 깔아드렸고 그를 따르는 수많은 수도승들이 오늘도 하늘의 옷감을 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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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춘석(멜라니아·창녕공고 교사),사진 김상희(데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