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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의 날 르포]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센터

이우현 기자
입력일 2014-02-04 수정일 2014-02-04 발행일 2014-02-09 제 2881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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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 전하는 ‘아름다운 배웅’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자원봉사자들. 환자와 보호자들의 한가족이 돼 가장 가까이서 아픔을 위로하고, 따뜻한 사랑으로 미소와 희망을 전하는 착한 사마리아인을 닮은 예수님의 일꾼이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별관 6층에는 특별한 병동이 있다. 세상과의 마지막 여정을 보내는 여명(餘命) 6개월 이내의 말기 암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많은 의료진, 원목자들과 더불어 자원봉사자팀은 환자와 보호자들의 한가족이 돼 가장 가까이서 아픔을 위로하고, 따뜻한 사랑으로 미소와 희망을 전하는 예수님의 일꾼이다.

오는 2월 11일 제22차 세계 병자의 날을 앞두고, 병자들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착한 사마리아인이신 예수님의 사랑을 닮아 사는 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자원봉사자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자원봉사자들이 하루 일과를 시작하며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기도이다. 매 일과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환자들을 위한 기도인 것.

“환자들이 이곳에서 죽음만을 떠올리기보다 남은 인생을 하느님께 의탁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도록 기도합니다.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하느님께 대한 열망으로, 영원한 하느님 나라로 향하는 희망을 안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간구하지요.”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자원봉사자들이 하루 일과를 시작하며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기도다.

환자를 위한 미용 봉사를 막 끝낸 자원봉사자팀장 예은주(안젤라·52·의정부교구 원당본당)씨가 바닥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담는 바쁜 손놀림을 뒤로 하고, 잠시 하루 일과를 소개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의 자원봉사자들은 모든 일과 중 여타의 일반 병원, 병동 자원봉사자들보다 세심하고, 책임감 있는 역할이 요구된다. 때문에 온전히 봉사에 임하기 전, 관련 교육과 함께 서류 면접, 3개월간의 인턴 기간 등을 거치게 된다. 정식 자원봉사자가 된 이후에도 매월 교육을 받는다. 생사를 오가는 환자들을 만나는 일이기에 더욱 신경을 쓴다.

“환자들을 만날 때마다 늘 조심스럽고, 또 늘 새로운 분이라는 마음가짐을 갖지요. 저희들은 ‘내일 해드리겠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내일이면 만날 수 없는 환자들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일과 시간이 지난다 해도 최선을 다해 환자분들이 원하시는 바를 채워드리고자 노력합니다. 내 몸이 아프더라도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환자들을 만나면 내 상태를 잊게 되고, 초인적인 힘이 생기니, 신기할 따름이지요.”

■ 당신이 필요로 하는 곳에

“전반적인 부분은 의료진, 사회복지사, 원목자 등이 맡고 있지만 자원봉사자들은 우리가 신경을 미처 쓰지 못하는 세세한 부분까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환자를 위한 모든 부분에서 우리와 함께하고 있지요.”

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팀장 라정란 수녀가 자원봉사자들이 필요한 이유를 찬찬히 설명했다. 이들이 병동의 전천후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

자원봉사자들은 욕창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2시간 마다 환자들의 자세를 바꿔주고, 목욕과 같은 위생 부분에도 신경을 쓴다.

고통으로 경직된 근육을 풀어주는 발 마사지도 자원봉사자들이 담당한다. 예 팀장을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이 퇴원을 앞둔 환자를 위한 머리 감기기와 발마사지에 나섰다. 자원봉사자들은 조그만 자극에도 극심한 고통을 느낄 환자를 생각해 손길 하나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이곳 환자들은 출산의 고통보다 더 큰 아픔을 느낀다고 해요. 그 고통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라고 하더군요. 때문에 더 세심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환자들을 대합니다.”

또한 자원봉사자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환자 보호자들을 위한 따뜻한 점심 한 끼를 직접 대접하고 있다. 환자를 두고 멀리 자리를 뜰 수 없는 환자 보호자들을 위한 작은 배려이기도 하다.

“아침에 오면 담당을 나눠 음식을 만들고, 배식을 합니다. 병원 음식에 물린 환자분들에게 전달해 드리기도 하지요. 다들 맛있다고 말씀해 주세요.”

자원봉사자들이 환자들의 경직된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 발 마사지를 하고 있다.
환자의 머리를 감겨주고 있는 자원봉사자 모습.

■ 늘 함께 있게 하소서

무엇보다 환자들의 곁에서 성가를 불러주고, 기도를 함께 드리는 것 또한 이들의 중요한 몫이다.

임종에 다다른 한 환자의 병실을 찾은 자원봉사자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는 환자의 손을 꼭 잡고, 나지막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환자가 좋아하는 성가를 불러주고, 기도를 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지금껏 어머님이 살아온 인생은 사랑 받기에 충분한 삶이예요. 지금 남아있는 시간도 은총의 시간으로 삼고, 사랑을 나누며 보내시면 돼요. 더욱이 어머님께는 이렇게 곁을 지키는 예쁜 딸이 옆에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시겠어요. 물론 몸은 아프고 힘들지만,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복된 시간인지 아시지요?”

자원봉사자들의 따스한 한마디에 기력이 다해 잠들어 있는 환자의 얼굴에서도 옅은 미소가 번져간다. 우울할 것만 같은 호스피스 병동이 자원봉사자들이 나누는 온기로 가득 찬다.

자원봉사자의 존재는 환자는 물론, 보호자들에게도 마음의 위안이 된다. 환자를 돌보느라 소진돼버린 보호자들의 심신에 격려와 위로를 전한다.

라 수녀는 “나도 수도자로서 봉헌의 삶을 살고 있지만, 환자들을 향한 자원봉사자들의 성실함과 노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며 “정말 이곳은 총체적인 봉사활동이 필요한 곳이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이 많은데다, 자기 일로 바쁜 상황임에도 봉사의 끈을 놓지 않고 오랜 시간, 아무런 대가없이 기쁘게, 또 열심히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이 대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자원봉사자들은 환자들의 임종 시에도 장지 수행에 따라 나선다. 함께 했던 환자들을 위한 마지막 배웅이다. 일주일에 두 번(월, 목요일/화, 금요일) 오전, 오후 조로 나누거나, 하루 한 번(수/토/일요일) 하루 종일 일하면서도 환자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키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 밖에도 자원봉사자들은 사별 가족을 위한 위로 모임에 참여하거나, 후원회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호스피스 교육 보조 등의 행정적 업무도 함께하고 있다. 이처럼 자원봉사자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부분은 수없이 많지만, 자원봉사자 수의 부족으로 한계를 느낄 때는 안타까움이 크다.

“한 인간을 돌보기 위해서는 전인적인 접근과 많은 요구사항을 만나게 되지요. 환자들이 삶을 잘 마무리 하도록 돕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봉사자들의 수가 부족해 온전히 채워줄 수 없을 때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더 많은 분들이 마지막 여정을 떠나는 이곳 환자들을 위한 아름다운 배웅의 길에 동참해 주셨으면 합니다.”

임종을 앞둔 환자를 위해 성가를 불러주고, 기도를 함께 드리는 일 역시 봉사자들의 중요한 몫이다.

이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