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지도 (9·끝) 제주교구 성김대건해안로 일대

박영호 기자,이창준 제주지사장
입력일 2014-01-07 수정일 2014-01-07 발행일 2014-01-12 제 2878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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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멍 걸으멍 … 제주 바람결 속에 만나는 김대건 성인
2011년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 기념도로 조성 이름 붙여
지역 복음화율 25% … 아름다운 풍광 속 순교자 정기 가득
■ 여정 / 신창성당 → 성김대건해안도로 → 절부암 용수포구 → 용수성지(기념성당·기념관·라파엘호)

멀리 이국적인 풍광 속에서 유난히 뽀얗게 반짝이는 용수성지의 모습. 성김대건 신부는 풍랑에 밀려 바로 이 바닷물을 넘어 저기 포구로 표착했으리라.

하늘이 내린 천혜의 섬 제주도. 아름다운 풍광 만큼이나 역사의 질곡도 함께 안고 있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섬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는 제주에서, 아직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 북적이지 않으면서도 보석 같은 바닷가가 있다.

한국 최초의 성인 사제, 성김대건 신부의 이름을 따 지은 ‘성김대건 해안로’. 6km 남짓한 바닷가는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따라 모퉁이마다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수많은 얼굴의 풍광들을 선사한다.

그 끄트머리에는 김대건 신부가 처음으로 고국 땅에 발을 디딘 곳, 그리고 처음 미사를 봉헌한 곳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유난히 신심이 돈독하고, 사제와 수도자도 많이 배출했다. 가게 이름이 ‘요한’일 정도로 가톨릭적인, 아름다운 마을이 있다.

■ 성김대건해안로와 성김대건길

이번 주의 ‘가톨릭지도’는 제주 서쪽 한경면에 위치한 ‘성김대건해안로’ 일대이다. 1952년 제주교구에서 세 번째로 세워진 고산리 신창성당 2차선 도로 건너편에 세워진 170cm 높이의 표지석에는 ‘성김대건해안로’라고 쓰여 있다. 거기서부터 달려 다시 똑같은 표지석이 세워진 곳까지 6km가 ‘성김대건해안로’이다.

원래 ‘한경해안도로’로 불리던 이 아름다운 해안도로는 2011년 12월 30일, 김대건 신부의 제주 표착을 기념하기 위해서, 표지석 제막식을 갖고 이름을 바꾸었다. 지도에는 ‘신창풍차해안도로’를 찾아도 그 위치를 알 수 있다.

이 도로는 제주교구 도보성지순례 코스 중 ‘빛의 길’인 ‘김대건길’ 12.6km의 딱 절반이기도 하다. ‘빛의 길’인 ‘성김대건길’은 고산성당에서 시작해, 유네스코가 인증한 세계지질공원인 수월봉 해안도로, 차귀도 가는 배를 타는 자구내 포구, 고산리 선사유적, 당산봉을 거쳐 절부암과 용수포구로 이어진다.

성김대건해안도로가 시작되는 고산성당에서 신창성당까지 12km의 한가운데에 용수리포구, 절부암, 용수성지가 자리잡고 있으며, ‘성김대건해안로’는 여기 용수성지로부터 신창성당까지 6km 가량이 이어진다. 용수성지가 자리한 용수포구는 제주 올레길 12코스가 끝나고 13코스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제주교구에서 세 번째로 설립된 신창성당. 관할지역인 신창리 일대는 전국에서 가장 복음화율이 높아, 한때 60~70%의 교세를 나타냈고, 지금도 4명 중 1명은 가톨릭 신자이다.

■ ‘성김대건풍차해안도로’

성김대건해안도로는 시작하자마자 경탄이 이어진다. 적당하게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어디 한 군데 풍광이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하다못해 네비게이션에 표시된 지도까지 아름답다. 물색이야 그렇다치고 까뭇까뭇한 용암석들이 자잘하고 변화무쌍하게 깔린 바닷가는 아기자기하기가 이를데없다.

풍광에 특색을 더해주는 것이 즐비하게 늘어선 풍차들. 돈키호테가 들이닥치던 그런 멋스런 모양의 풍차들은 아니라 조금 멀대 같긴 하지만 크기와 함께 웅-웅 거리며 돌아가는 풍차의 날개는 바람 많은 제주를 일깨워 준다.

특히 이곳의 석양은 전국에서 으뜸이다. 해가 넘어갈 때 조금 멀찍이 떨어져,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날개마다 넘어지는 햇빛을 움겨 쥔 풍차들을 바라보노라면 그 경치가 참으로 일품이다.
‘성김대건해안도로’의 아름다운 풍광은 즐비하게 늘어선 풍차들로 더욱 빛난다. 맑은 물색과 하얀 포말, 검은 색 바위와 풍차 날개는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빼어난 경치를 선사한다.

■ 김대건 신부의 얼이 깃든 용수성지

풍광에 취해 수없이 지체하며 도착해야 하는 해안도로의 끝에는 용수포구가 있다. 해안도로를 거의 마칠 무렵 포구쪽으로 오징어를 널어 말리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 옆으로 자그마한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이 곳은 한국 최초의 신부 김대건이 범선 라파엘호로 1845년 9월 28일에 표착한 바닷가이다. 김신부는 8월 17일 상하이 금가항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아 귀국길에 거센 파도로 반파된 배가 이곳에 표착하자 수선한 후 출항, 10월 12일 충남 강경 땅 황산 포구에 안착했다.”

포구 입구에 서 있는 자그마한 표지석은 이곳이 김대건 신부가 사제 수품 후 처음 표착했고, 첫 미사를 봉헌한 지역임을 일러준다. 짤막한 경위 설명이지만, 순례자들은 이 간단한 설명만으로도 이미 김대건 신부의 고난의 길이 얼마나 혹독한 것이었던가를 피부로 느끼기에 부족하지 않다.

포구 뒤편에는 올레길 12코스와 13코스의 분기점이자, 일종의 열녀비인 제주도 기념물 제9호 절부암이 있고, 약 200m 가량 떨어진 언덕빼기에 용수성지가 있다. 성지 왼편에는 기념성당이, 오른편에는 배모양의 기념관이 있다. 마당 한 켠에는 김 신부가 타고 온 배를 복원한 라파엘호가 놓여 있다.

2008년에 건립된 기념성당의 정면은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은 중국 상하이 금가항 성당을 재현했고, 지붕은 거센 파도, 그리고 그에 맞서 싸우는 라파엘호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그리고 기념관은 이에 앞서 2006년에 라파엘호의 형상을 본따 만들었다.

과학적 추정에 의하면, 김신부는 사제품을 받고 고국을 향하다 풍랑으로 용수리 해안으로 떠밀려왔다. 혹자는 김신부가 표착한 곳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차귀도라고도 하지만 사료로 증명되는 것은 없다. 어쨌든 그는 고국에서의 첫 미사를 여기에서 봉헌했고, 그런 연유로 1999년 9월 19일 제주교구는 용수성지를 선포됐다.

라파엘호는 이보다 훨씬 앞선 1999년, 김대건 신부가 탔던 배를 그대로 복원해 실제로 이 배를 이용한 해상성지순례를 실시한 뒤 신창성당 구내를 거쳐 표착기념관이 건립되면서 용수성지로 옮겨 전시되고 있다.
라파엘호를 타고 바라다본 용수성지. 왼편의 하얀 성당이 성김대건신부 제주 표착 기념성당, 그 옆이 기념관이다.
제주에서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돌하루방. 눈을 감고 유유자적한 모습이 웃음을 주고 해학을 보여준다.

■ 신창마을

김대건 신부의 정기가 도왔을까? 신창성당과 해안도로 일대, 그리고 더 넓게는 한경면에 함께 위치한 고산성당 관할 지역은 복음화율이 25%로 전국 최고이다. 전체인구가 8천 여 명에 불과한 한경면에 성당이 2개, 그 중 신창본당 신자가 851명, 고산성당 신자가 911명, 합해서 1762명이니 대략 그 정도로 추산된다.

용수공소 원재홍(베네딕도) 선교사는 “한때 신창마을은 신자가 80%를 차지하기도 했었다고 전해진다”고 말했다. ‘천주교의 지역화와 지역사회에 미친 영향: 제주도 신창지역 사례를 중심으로’를 2007년 석사논문으로 제출한 제주대학교 김규리는 한때 신자 비율이 60~70%였고, 배출 수도자와 성직자도 신자 수에 비해 많았다고 확인해주고 있다.

배출 성직자가 교구 사제 3명, 수도사제가 3명, 수녀가 무려 15명이다. 제주교구 첫 형제신부인 고승욱 신부(은퇴)와 고승헌 신부도 신창성당 출신이다. 고승욱 신부는 은퇴 후 다시 마을로 돌아와 자그마한 배도 한 척 마련해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

그런 분위기를 말해주듯, 해안도로가 시작되기 조금 앞에는, 30년 동안 이곳에서 가게를 해왔다는 고춘자(데레사·80) 할머니 내외가 운영하는 ‘요한슈퍼’가 있다. 용수성지 가까운 곳의 펜션들 중에도 미리내, 103위 순례자의 집 등 성지의 냄새가 나는 이름들이 눈에 띈다.

놀라운 것은 아무리 깊은 산골이나 작은 섬마을에도 결코 없을 수가 없는 빨간 조명 십자가가 단 한 개도 이 마을에는 없다고 한다. 워낙 가톨릭의 교세가 높아 개신교 예배당이 한군데도 없다.
신창마을에서 30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슈퍼. 지금은 편의점과 대형마트에 밀려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요한’이라는 가게 이름이 낮설지 않은 것은 신창마을이기 때문이다.

박영호 기자,이창준 제주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