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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해 · 창간 86주년 기획 - 현대 가톨릭 신학의 흐름] (35) 아시아신학의 흐름과 전망 ③ 아시아의 땅에서 하느님 ‘말씀의 씨앗들’을 찾아내다

박준양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의신학 교수)
입력일 2013-12-10 수정일 2013-12-10 발행일 2013-12-15 제 2874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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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하느님의 ‘생명 암호’를 해독하라
‘빈 무덤’ 체험 통해 이미 뿌려진 복음의 씨앗 발견 ‘사명’
열린 마음 뜨거운 가슴으로 ‘하느님 지혜’ 성장시켜야
아시아 선교 핵심, ‘타종교 대화-복음선포’ 사이 균형·조화
아시아신학을 함에 있어 큰 과제로 당면하게 되는 것은 아시아의 비그리스도교적 종교-문화의 실재 안에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과 신비를 선포하여 복음화를 이룰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는 교황 권고 ‘아시아 교회’(1999)를 통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아시아 대륙의 종교-문화적 현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대륙의 가장 놀라운 특징은 고대 문화와 종교 그리고 고대 전통들의 계승자들인 그 민족들의 다양성입니다. 우리는 인류 가족의 유산과 역사의 본질적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그들의 수많은 문화, 언어, 믿음과 전통들의 서로 혼합되고 아우러진 복합성에, 그리고 아시아 인구의 위압적인 광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6항a)

이러한 아시아 대륙에서는 종교적 가치의 문화화와 생활화가 잘 이루어져 있다. “아시아 민족은 침묵과 명상에 대한 사랑, 소박함, 조화, 초연함, 비폭력, 근면의 정신, 훈련, 검소한 생활, 배움에 대한 목마름, 철학적 탐구와 그들의 종교적이며 문화적인 가치들에 긍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생명 존중, 모든 존재에 대한 연민, 자연과 친밀함, 부모, 연장자와 조상들에 대한 효성, 그리고 몸에 밴 공동체 의식과 같은 가치들을 사랑합니다.”(6항c)

대화와 선포의 교차

이처럼 아시아 대륙의 종교문화에 깊이 뿌리박힌 아시아인들의 삶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세계 종교들이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아시아는 세계의 주요 종교들, 곧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힌두교의 요람입니다. 아시아는 불교, 도교, 유교, 조로아스터교, 자이나교, 시크교, 그리고 신도(神道)와 같은 많은 다른 영적 전통들의 발상지입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또한 다양한 수준으로 구조화된 의례와 형식화된 종교적 가르침에 따라 전통적이거나 종족적인 종교들을 신봉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전통들에 대단히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으며 그들 신봉자들과 진지한 대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종교적 가치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6항b)

그런데 여기에서 요한 바오로 2세가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아시아 종교들과의 진정성 있는 대화를 통해 그 안에 담겨 있는 인간학적-종교적 가치의 그리스도교적 완성을 지향함으로써 복음화를 이룩해야 한다는 선교 방향성의 정립이다.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의 ‘성취론’ 혹은 ‘완성론’(fulfillment theory)적 선교관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선교 교령’ 9항에서 “선교 활동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세상과 그 역사 안에 하느님의 계획이 나타남, 또는 그 ‘공현’과 성취”라고 정의되며, “하느님께서는 선교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명백히 완성하신다”라고 함으로써 이러한 선교관을 잘 드러낸다.

이와 같은 선교 사업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은 타종교들과의 대화와 복음 선포 사이의 균형 및 조화를 이루는 일이다. “교회는 구원 경륜에 비추어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일과 종교 간 대화에 참여하는 일 사이에 어떠한 대립이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둘을 교회의 만민 선교 안에 연결시킬 필요가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 두 요소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지만 서로 구별되어야 합니다.”(요한 바오로 2세의 1990년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 55항) 그렇다면 아시아에서 ‘대화와 선포’의 통합적 선교 사업을 통해 지향하는 바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아시아의 땅에 숨겨진 하느님의 ‘암호’를 발견하고 풀어냄으로써, 그리스도의 빛으로 비추어진 그 뜻과 의미가 밝게 빛나도록 하는 작업이라 말할 수 있다.

아시아는 세계의 주요 종교들, 곧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힌두교의 요람이며 불교, 도교 등 영적 전통들의 발상지이다. 교회는 이러한 전통들에 대단히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으며 그들 신봉자들과 진지한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교황청 일치촉진평의회 사무총장 브라이언 패럴 주교 및 관계자들이 서울 화계사를 방문, 대화의 시간을 갖는 모습.

하느님의 암호를 찾아서

대만 출신의 신학자 송천성(宋泉盛, 1929~)은 「아시아 모태 신학」(분도출판사, 1990, 25~30쪽)에서, 이 세상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의 암호(code)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사실, 하느님의 섭리로 창조된 우주 전체가 각종 암호와 부호로 이루어진 엄청난 신비 덩어리인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신비에로 우리를 인도할 암호를 찾아내고 해독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처럼 숨겨진 암호를 발견해 해석하는 사람 앞에는 무한히 아름다운 하느님의 세계가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그 숨겨진 암호들을 찾아낼 수 있는 우리 영혼의 눈과 자세, 즉 열린 마음(mind)과 뜨거운 가슴(heart)이다. 결국, ‘신학을 하는 우리의 심장’(the heart of our doing theology)에 그 해답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과 우주에 가득한 하느님의 암호를 해독하는 작업은, 초세기의 교부 유스티노(100/110?~165) 성인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이 세상 안에 떨어진 ‘말씀의 씨앗들’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철학자이며 순교자인 유스티노는,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사람이 되신 영원한 말씀(로고스)이며 하느님의 지혜라고 서술한다. 이러한 그리스도는 창조주의 중개자로서 모든 사람에게 ‘씨를 뿌리는 말씀’이시다.

유스티노의 이러한 우주적 그리스도론의 전망에서 바라본다면, ‘아시아신학을 한다’(doing Asian Theology)는 것은 하느님의 ‘암호’를 해독함으로써, 아시아의 땅에 묻혀 있는 하느님 ‘말씀의 씨앗들’을 발견하여 성장시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 대륙에는 아직 채 자라나고 열매 맺지 못한 ‘말씀의 씨앗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비록 교회 안에서 명시적인 그리스도 신앙을 고백하며 자라나지는 못했지만,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아직도 흙 속에 묻혀 있는 “감추어진 말씀의 씨앗을 기꺼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찾아내어”(‘선교 교령’, 11항) 자라나게 하고 마침내 아름다운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는 것은 아시아신학의 매우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유스티노가 모든 이들 안에서 ‘말씀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에 근거하여, 악마들의 기만을 밝혀내고 참된 신을 찾을 것을 권유하였던 그리스도 이전의 철학자들도 어떤 의미에서 이미 그리스도인이었다고 말했다면, 이는 유비적으로 아시아의 여러 종교 전통들에도 적용 가능하다. 아시아의 종교인들이 이성과 양심에 기반하고 자신들의 고유한 믿음에 따라 가르치는 바가 아직 어둡고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근원적으로 볼 때 유일하고 영원한 말씀(로고스)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라면, 결국 그 안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진리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따라서, “그것이 비록 가톨릭 교회에서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여러 가지로 다르더라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진리의 빛을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는 않다”(‘비그리스도교 선언’, 2항)고 말할 수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러한 씨앗들이 각 사람 안에, 그리고 인류의 종교 전통들 안에서 발견됨”(‘교회의 선교 사명’, 56항)을 강조한다. 이 모든 숨겨진 ‘말씀의 씨앗들’이야말로 우리가 다 해독해내야 할 하느님의 암호들이다. 그리고 ‘대화와 선포’를 통해 이 암호들을 풀어내고 숨겨진 의미를 해석하는 작업은 바로 아시아신학이 수행해야 할 주요 과제인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찾아서

이러한 관점에서 아시아를 바라본다면, 이 땅에는 영원한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신비를 암시적으로 드러내는 신호들이 많이 있다. 성경에 나오는 빈 무덤의 옆으로 치워진 돌, 그리고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과 아마포(요한 20,1-10 참조)는 예수님의 부활을 드러내는 암호이다. 이를 통해서,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어둠 속에서도 끝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에 도달하게 된다. 사랑은 작은 실마리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현존을 찾아내는 위대한 힘을 드러낸다. 예수님의 시신을 쌌던 아마포만 무덤 안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서도 그분의 현존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갖게 된다. 그분에 대한 깊은 사랑에서 솟아나는 직관적 인식이 이를 가능케 한다. 사실, 신약 성경은 만인이 보는 앞에서 찬란한 승리의 영광 속에 개선하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거의 보도하지 않는다. 주로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사도들의 복음 선포 내용, 그리고 ‘빈 무덤’의 표상이다. 이는 오늘날 아시아에서 사도들처럼 힘차게 복음을 선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빈 무덤’의 체험을 통해 이미 신비로이 뿌려져 있는 ‘복음의 씨앗’을 발견해야 할 사명을 지닌 우리를 위해 매우 알맞게 주어진 성경 말씀이라 할 수 있다.

아시아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명시적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은 아직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아시아 대륙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에로 우리를 인도하는 수많은 암호와 상징들이 존재한다. 우리에게는 그것들을 발견하고 해독해낼 수 있는 영혼의 눈과 예지, 그리고 열망이 필요하다. 한번 그렇게 발견된 암호와 상징들은 해독 과정을 거쳐 마침내 아시아의 땅에서 체험하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에로 우리를 인도한다. 마치 부활절 새벽 ‘빈 무덤’의 체험처럼 주어지는 그 신비로운 만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송두리째 변화되어 온 영혼과 생명을 다해 아시아의 땅끝까지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고 증언하게 될 것이다.

※주요 참고문헌: 박준양, 「그리스도론, 하느님 아드님의 드라마!」, 생활성서사, 2009, 333~338. 406~407쪽의 내용을 발췌하여 수정, 보완함.

박준양 신부는 1992년 사제로 서품, 로마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교의신학 전공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신학과사상학회 편집위원장 및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위원, FABC 신학위원회 전문신학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박준양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의신학 교수)